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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전/페데리코 펠리니 회고전

돌아오지 않는 순수함에 대한 갈망

[영화읽기] 페데리코 펠리니의 <광대들>


<광대들>(1970)은 1970년에 제작된 TV용 영화로 광대와 서커스에 관한 매혹을 다룬다. 본래 60분 길이의 크리스마스 특집 프로그램이었던 <광대들>은 이탈리아 방송국 RAI의 동의를 얻어 방송 이튿날인 12월 26일에 연장된 버전으로 극장에서 개봉했다.

이 영화는 광대정신에 대한 펠리니의 개인적인 에세이로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활용해서 그의 공상과 실제 기억들을 직조한다. <광대들>은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펠리니는 먼저 서커스단이 집 근처에 도착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을 회상하며 서커스의 신비한 매력과 광대들의 기이한 신체가 주는 두려움을 고백한다. 뒤이어 서커스 광대의 역사와 그들의 현 상황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결정한 펠리니가 소수의 스텝과 함께 위대한 광대들의 자취를 쫒는 여정이 이어진다. 서커스 연구자가 주선한 모임에 참석하지만 관계자의 기억은 불완전하고 광대들의 공연을 기록한 8mm 필름이 프로젝터에서 녹아버리는 등 펠리니의 작업은 난항을 거듭한다. 이 과정에서 펠리니는 광대와 서커스의 세계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가 무대에 올린 가짜 장례식이 소란스럽고 무질서한 축하 공연으로 바뀌는 것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난다.

<광대들>은 다큐멘터리의 전통적인 구조를 따르면서도 전형적인 펠리니 영화의 스타일을 고수한다. 펠리니의 영화에서 인물들은 종종 비정상적이고 기형적인 상태로 나타나는데, <광대들>은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기형인간으로 가득한 거대한 쇼를 제공한다. 유리병에 든 샴쌍둥이의 태아, 살아있는 금붕어를 먹는 여자, 쇠꼬챙이에 구워지는 난쟁이, 거인 같은 육중한 여자 레슬러, 그리고 도끼와 망치로 서로를 반복해서 때리는 그로테스크한 광대들. 펠리니는 이들의 기괴한 신체와 괴상한 몸짓을 조롱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는 사라진 순수한 시대의 상징으로 그들을 찬양한다. 이탈리아 극작가 다리오 포(Dario Fo)가 아이 같은 천진한 감성을 광대와 동일시했던 것처럼, 광대의 순수함에 매료당한 펠리니는 광대를 위한 공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냉소적이고 불순한 세계를 한탄한다. 물론 펠리니 특유의 과장되고 불경하며 저속한 유머를 사용해서 말이다. 질서정연하고 평화로운 사회에 대한 일종의 풍자였던 펠리니의 광대들은 후기 영화에서는 돌아오지 않는 순수함에 대한 갈망을 표상한다. <광대들> 역시 광대의 이미지를 통해 지나간 삶의 방식을 애도하고 있다. (최인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