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회고전/페데리코 펠리니 회고전

네오리얼리즘과 페데리코 펠리니

[영화사강좌2] 홍성남 영화평론가가 말하는 펠리니의 초기영화들

페데리코 펠리니 회고전이 한창인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펠리니의 작품세계를 보다 폭넓게 살펴볼 수 있는 '펠리니의 달콤한 영화읽기'란 영화사강좌가 열리고 있다. 지난 18일 저녁 8시 그 두번째 시간에는 홍성남 영화평론가가 '네오리얼리즘과 페데리코 펠리니'란 제목으로 펠리니 초기영화에 대한 열띤 강연을 펼쳤다. 무려 3시간 가까이 진행된 강연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홍성남(영화평론가):
오늘 강의에서는 우선, <달콤한 인생>까지의 펠리니 영화의 중요한 논점들, 네오리얼리즘과의 관계, 펠리니가 네오리얼리즘을 보는 관점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음으로 <달콤한 인생>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또 전반적인 영화사나 펠리니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어떻게 봐야 할 지를 얘기하고자 합니다.

<달콤한 인생>과 <8과 2분의 1>이후의 영화들을 먼저 보게 되면 펠리니가 네오리얼리즘과 관계가 없고, 꿈과 환상을 영화로 멋지게 구현한 감독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펠리니는 네오리얼리즘의 대표적인 감독인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무방비도시>와 <파이자>에서 조감독으로 활동하고 시나리오도 썼습니다. 로셀리니 감독은 미리 짜여진 각본대로 영화를 찍는 것이 아니라 로케이션 촬영현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제약들과 영향들을 적극 수용하고 상호작용을 하면서 개방적으로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펠리니는 여기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스스로도 얘기합니다. 한편으로 펠리니는 50년대 이후의 할리우드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던 이탈리아 영화사들에서 작업하면서 이 시스템의 이점을 최대한 누린 감독이기도 합니다. 펠리니는 예술적 야심을 구현하기 위해 자신의 작품에 대해 예술적 통제력을 발휘하고자 했습니다. 스튜디오 안에서 현실과 굉장히 가깝게 세트를 만들어 놓고, 공간과 연기하는 배우들을 통제했습니다. 펠리니의 영화작업은 중반 이후로 가면, 한편으로는 규정된 시나리오나 이야기, 그리고 시공간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커다란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면서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서 자기 세계를 만들어내고자 했습니다. 이 두 가지가 변증법적으로 결합한 것이 펠리니의 영화제작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걸작으로 평가받는 <길>은 개봉 당시 귀도 아리스타르코라는 당대 이탈리아의 유명한 맑시스트 비평가로부터 비판받은바 있습니다. 이 비평가는 네오리얼리즘의 위기와 관련해서 두 가지 시나리오를 내놨습니다. 같은 해에 개봉한 루키노 비스콘티의 <센소>는 리얼리즘이 역사 속으로 보다 진실하게 들어간 사례라고 말했습니다. <센소>는 에밀 졸라식의 자연주의로부터 발자크식의 리얼리즘으로 발전하면서 네오리얼리즘을 보다 풍요롭게 꽃피우고 있다고 보았던 반면, 네오리얼리즘이 위기를 맞아 하강이나 추락을 하게 될 경우, 그 시나리오의 악한은 펠리니가 될 것이며, 이 때 예로 든 영화가 <길>이었습니다. <길>의 외양은 네오리얼리즘적인 영화 같지만, 판타지나 기억, 종교적인 믿음 쪽으로 퇴행하는 영화라고 비판했던 것입니다. 펠리니는 이 비평가와 자신의 네오리얼리즘의 시각은 다르다면서 반박했습니다.

<길>을 네오리얼리즘적인 영화인 비토리아 데시카의 <자전거 도둑>과 비교해서 말씀드리자면 일단 두 영화 다 표면적으로는 로드무비에 가깝습니다. <자전거 도둑>은 주인공이 잃어버린 자전거를 찾는 과정에서 단순히 거리만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당시 로마의 많은 제도들을 접하게 됩니다. 그 당시 사회에 대한 분석이 있는 것입니다. <길>은 사회적인 분석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또한 <자전거 도둑>은 당대 로마라고 하는 분명한 시공간 개념이 있는 반면, <길>은 이 점이 불분명합니다. 그 시대의 전형적인 인물을 보여주는 것이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길>에서 보이는 인물은 계급, 사회, 역사 속의 전형적인 인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자전거 도둑>은 현실에 있었던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반면 <길>의 인물은 이탈리아의 유명한 포크드라마인 <꼬메디아 델라르떼>에서 끌어왔습니다. 인물의 캐릭터는 미리 설정되어 있고, 영화 속에서 진화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잠파노는 야수, 젤소미나는 사랑, IL MATO(the Fool)는 상상력, 교육, 계시로 볼 수 있습니다. 펠리니에게 중요한 것은 인물의 사회적 현실을 담는 것보다 인물의 영혼을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리얼리즘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려 했다면 펠리니는 사물을 투과해서 그 안을 보는 것을 중요시했습니다.

<카비리아의 밤>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동일한 상황이 반복됩니다. 펠리니의 많은 영화들, 특히 초창기 영화들은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일종의 대구를 이루는 순환구조입니다. <길>이나 <달콤한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카비리아의 밤>은 처음-중간-끝이라는 관습적인 드라마 구조가 없습니다. 대신에 느슨한 에피소드들이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카비리아라고 하는 인물의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들로 연결되었는데, 그 안에서도 리듬이 보입니다. 첫 장면에서 카비리아가 희망을 갖고 있었다가 그것이 무참히 깨지는 과정이 마지막 장면에서는 강도가 세지면서 반복됩니다. 카비리아가 환상을 가졌다가 그 환상이 깨짐으로써 환멸을 느끼게 되는 구조들이 매 에피소드에서 이어집니다. <카비리아의 밤>에서는 네오리얼리즘적인 공간과 환타지적인 공간이 병치되는데 비해서 <달콤한 인생>에서는 네오리얼리즘적인 공간은 뒤로 물러나고 상류층의 공간이 전면에 오게 됩니다. <카비리아의 밤>은 펠리니의 영화적인 이동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카비리아는 자신에게 결혼의 희망을 품게 했던 사람에게서 무참하게 배반을 당하게 됩니다. 땅에 엎드려서 통곡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보통의 리얼리즘 영화라면 비참한 상황을 보여주면서 영화가 끝났을 텐데, 아주 짧은 에필로그가 이어집니다. 카비리아는 어두운 공간에 누워 있다가 길 밖으로 나와서 노래를 부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행렬을 보게 됩니다. 절망에 빠져 있던 카비리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야겠다”라고 하는 듯한 태도로 미소를 짓고, 카비리아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면서 영화가 끝이 납니다. 처음에 영화 속에서 나오던 음악은 영화음악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것은 영화 감독이 신처럼 되어 카비리아에게 은총을 내리는 장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의 은총으로 보든 영화 감독이 영화 속 인물에게 내리는 은총이라고 보든, 이 장면은 자연스럽지 않고 인공적으로 느껴집니다. 그 장면을 마치면서 펠리니의 영화세계는 네오리얼리즘과 단절을 하고, <달콤한 인생>의 세계로 오게 됩니다. <달콤한 인생>은 같은 해 개봉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정사>와 함께 이탈리아 영화의 예술적인 위신을 고양시킨 영화이자, 현대영화의 새로운 장을 연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달콤한 인생>은 대중문화적으로, 또 라이프스타일의 측면에 있어서도 굉장한 반향을 일으킨 영화입니다. 우리는 방탕하고 과도하고 스펙타클하고 사치스러운 영화스타일을 두고 ‘펠리니적인’이라는 용어를 쓰는데, 그 시초가 된 영화도 역시 <달콤한 인생>입니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함의들, 불경하게 여겨지는 이미지들도 논란이 되었습니다. 예수상이 현대 문명의 이기인 헬리콥터에 의해서 끌려가는 장면, 영화 곳곳에서 상류층 사람들을 다루는 태도때문에 당시의 보수주의자들이나 기독교, 카톨릭 관련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거의 포르노그래피다”라고 비판받았습니다. <달콤한 인생>도 에피소드들이 계속 이어지는 구조로 이루어졌고, 각각의 에피소드는 자족적인 세계를 보여줍니다. 에피소드들마다 상승과 하강, 쾌락과 피로, 환락의 밤과 새벽 등 리듬이 있습니다. <달콤한 인생>에 나오는 인물들의 삶을 바라보는 펠리니의 시선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실례가 영화 속 실비아(아니타 에크버그)를 바라보는 펠리니의 시선입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가진 환상을 충족시켜준 인물이 아니타 에크버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니타 에크버그는 연기를 하는 배우라기보다는 자기 육체를 이용하는 하나의 이미지일 뿐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펠리니가 아니타를 바라보는 시선은 백치같은 여자에 대한 경멸적인 시선이 아닙니다. 펠리니는 유명한 트레비 분수의 장면을 찍으면서 구경 온 관중들에게 “이 여자같은 아름다운 여자를 어디서 본 적 있습니까? 나는 어떤 서커스에서도 보여주지 못했었던 화려한 장면을 보여줄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한편 아니타 에크버그는 영화에 등장하는 펠리니적인 여성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아니타 에크버그야말로 펠리니 영화의 에센스가 되는 존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펠리니적인 여성은 그 이미지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여성에게 우리의 어떤 바람이 투사됐나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한편, 펠리니는 이데올로기, 도덕이나 종교적 가치, 전통적인 관습 등이 붕괴하는 시대를 비판적으로만 보지는 않았습니다. <달콤한 인생>의 주인공 마르첼로처럼, 그런 세계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런 상황을 즐기는 듯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파졸리니는 펠리니가 판관이 되어 옳고 그름을 보여주지 않고, 그 세계에 거리를 두지 못한 채 자신이 거기에 빠져들어간 공모자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한편, 펠리니는 <달콤한 인생>을 재밌으면서도 약각은 심각한 코미디로 그려냈습니다. 코미디적인 감수성은 펠리니의 많은 영화 속에 드러나는 굉장히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8과 1/2>도 창작자의 고뇌가 느껴지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코믹한 측면이 많습니다. 실제로 펠리니는 이 영화를 찍을 때 카메라에 “지금 나는 코미디 영화를 찍고 있다”라는 문구를 붙여놨다고 합니다. <달콤한 인생>은 펠리니의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시작으로 펠리니는 뤼미에르적인 측면을 벗어나서 조금 더 멜리에스적인 세계로 도약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리: 김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