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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나루세 미키오 특별전 2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 조금 다른, 나루세 미키오의 '가족 영화'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


조금 다른, 나루세 미키오의 ‘가족 영화’



나루세 미키오 成瀨巳喜男는 1930년 <찬바라 부부 チャンバラ夫婦>로 데뷔하여, 1967년 <흐트러진 구름 れ雲>으로 감독 경력을 마칠 때까지 도합 89편의 적지 않은 영화를 찍었다. 1971년, 도쿄필름센터에서 첫 번째 회고전이 열리긴 했으나 별다른 주목을 얻지는 못했다. 이런 냉담한 반응에 대해 오 복 Audie Bock은 몇 가지 이유를 내놓고 있는데, 우선 1969년에 세상을 떠난 이 감독의 전성기가 30년대 전반과 50년대 후반 두 시기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50년대 후반 이후 점차 사람들의 관심사로부터 멀어져 갔고, 대부분의 영화평론가들이 남성이었기에 그의 영화에서 그려지는 ‘여성적 시점’에 별다른 호감을 보이지 않았으며, 나루세 미키오 자신이 감독으로서의 자의식을 표명하는 어떤 적극적 언사도 남기지 않았기에 그랬다는 분석이다.

오디 복의 분석은 어째서 나루세 미키오가 동년배인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 구로사와 아키라보다 훨씬 뒤늦게야 겨우 인가 認可를 얻을 수 있었는가에 대한 한 가지 설명을 제공해 줌과 동시에 나루세 미키오를 둘러싼 한 가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평생에 걸친 영화 경력을 메이저 영화사 안에서 보낸 얌전하고 고분고분한 스튜디오 시대의 영화감독이라는 이미지다.


일찍이 야마네 사다오가 『감정의 리듬-2차 세계대전 이전과 전시 중의 나루세 미키오에 대하여』에서 지적한, “메이저 영화사에 소속되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흥행의 로테이션에 입각해 상품으로서 영화를 제조하는 것”이란 언급을 떠올려 볼 때, 특히 50년대의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들은 이 “메이저 영화사에 소속되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좋은 사례가 된다. 나루세 미키오가 ‘슬럼프’에서 벗어난 표지라며 종종 언급되는 1951년 작품 <밥 めし>은 당초 감독으로 내정되어 있던 치바 야스키 千葉泰樹가 병으로 하차한 것을 계기로 영화사측에서 그에게 분배한 기획이었고, 1960년 작품 <가을이 오다 秋立ちぬ>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 惡ほどよく>의 보조적 위치에 놓여 동시개봉 작품으로서 세상에 선을 보였다. 나루세 미키오는 한정된 예산의 범위 안에서 낭비 없이 정해진 제작 기한 내에 영화를 만들어내는 감독으로 회사의 신뢰를 받았고, 미술의 추코 사토시 中古智, 촬영의 타마이 마사오 玉井正夫, 조명의 이시이 쵸시로 石井長四郞, 녹음기사 시모나가 히사시 下永尙로 이루어진 ‘나루세 팀’은 1954년 도호 東寶의 대작영화 <고지라 ゴジラ>의 스태프로 호흡을 맞췄다. 회사에서 정해준 기획에 맞추어 감독, 각본가, 스태프, 배우들의 분업으로 이루어지는 영화 제작 과정의 한 구성요소로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해온 것이다.




1951년 다이에이 大映의 <노루귀 雪割草>와 <사이죠가의 향연 西城家饗宴>, 쇼치쿠 松竹의 <즐거운 우리집 我>을 시작으로 ‘홈 드라마’라는 장르가 시작되었고, 1949년부터 1958년까지 배우 미마스 아이코 三益愛子를 내세운 다이에이의 ‘어머니 영화 母もの’가 일세를 풍미했다. 다이에이의 ‘어머니 영화’들은 비록 평론가들로부터는 별다른 반응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으나, 제작과 배급이 일체화한 당시 이런 영화들이 지방의 계열극장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무시 못 할 정도였기에 계속 만들어졌다. 수도권과 지방의 차이랄 수도 있으며, 비교적 적은 비용을 들여 만드는 프로그램 영화가 아무런 리스크 없이 대작영화만큼의 수익을 올려주었기에 영화사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마침 시대는 전쟁으로 인한 가족의 결원을 메우고 가족끼리의 협력을 통해 안정된 생활 공간을 회복하고자 한 전후부흥기였으니 가족이라는 가치가 더할 나위 없이 중시되고 상찬되던 때였다. 어머니 영화’가 처음 등장한 1949년이 심의기관 영륜 映倫이 탄생한 해이자, GHQ가 ‘신성한 가족의 가치를 훼손하지 말 것’을 주의사항으로 지시한 때였음을 떠올릴 때, 50년대를 통틀어 가족을 테마로 한 영화들이 다수 만들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며, 나루세 미키오가 속해 있던 도호에서 그가 찍은 ‘부부 삼부작’ 그리고 일련의 가족을 테마로 한 작품들 또한 이러한 자장 안에 놓였다 할 것이다.


1952년 작품 <엄마 おかあさん>에서 마사코(다나카 기누요)는 기무라(가토 다이스케)에게 볶은 콩 한 접시와 마실 것을 대접한다. 방과 세탁소를 가르는 툇마루에 기무라가 앉아 있고, 쟁반이 문지방 가까이에 놓여 있다. 볶은 콩은 마사코의 죽은 남편이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간식이었기에, 이 장면을 목도한 딸 토시코(가가와 쿄코)는 어머니가 혹여 기무라와 재혼하지 않을까 걱정에 휩싸인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마사코와 기무라 간의 대화를 리버스숏 대신, 짙은 색의 문지방이 둘 사이에 선을 긋고 있는 투숏으로 보여줌으로써 이 두 남녀가 결코 맺어질 수 없다며 딸을 안심시킨다. 재혼을 포기하고 가족에게 헌신하는 어머니를 거듭 그림으로써, ‘모성과 여성성이 양립할 수 없음’을 강조한 다이에이의 ‘어머니 영화’들에 도호의 ‘어머니 영화’가 이렇게 합류한다. 그러나 마지막에 딸이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엄마, 행복한가요? 저는 그게 걱정입니다.”라고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작은 균열이 인다. 물론 이 대사는 나루세 미키오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초등학생의 작문대회 수상작을 영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여성 각본가 미즈키 요코 水木洋子가 더한 이의 제기라 해야 할 것이나, 가족을 그리는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를 그저 50년대의 ‘홈 드라마’라고 일축하기 어려운 균열들이 군데군데 더해지고 있음을 간과할 수는 없다.

“불모不毛의 집”


수잔느 셰어만은 『나루세 영화의 가족들』이란 글에서, 나루세 미키오의 필모그라피를 총괄하여 이른바 나루세의 가족 영화 44편 중 아이가 없는 부부 혹은 부부 중심 영화가 16편에 이른다고 정리했다. 이 리스트에 <야성의 여인 あらくれ>과 같은 영화가 빠져 있어, 정확한 수치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수잔느 셰어만이 대부분의 작품에서 아이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라고 언급한 것처럼 나루세 영화에서는 아이, 더 나아가서 임신과 출산이라는 사건이 철저히 회피된다.


<산의 소리>


<야성의 여인>(1957)에서는 만삭의 오시마(다카미네 히데코)를 남편이 계단에서 밀어버림으로써 낙태가 행해지고, <산의 소리 山音>(1954)에서는 기쿠코(하라 세츠코)가 아이를 지움으로써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을 그만둔다. 이 두 영화에서 낙태는 주인공이 혼인으로 맺어진 가족 관계를 떠나게 하는 계기가 되는데, 나카키타 치에코 中北千枝子가 나루세의 영화들에서 맡고 있는 대조적인 역할과 더불어 ‘아이’가 갖는 어떤 중요성이 강조된다. ‘아이를 업고 있는 여자’로 나카키타 치에코는 나루세의 영화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딸, 시누이, 침입자의 역할을 한다. <산의 소리>에서는 아이가 둘이나 있기에, 올케인 기쿠코와 같은 선택을 할 수도 없이 사이 나쁜 남편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시누이가 되었고, <번개 稻妻>(1952)에서는 둘째 언니의 죽은 남편이 몰래 둔 내연의 여인이었으나 아이 때문에 기요코(다카미네 히데코)의 가족과 관계를 맺게 된다. <밥>에서는 미치요(하라 세츠코)가 아이를 데리고 노점에 선 나카키타 치에코의 모습을 봄으로써, 집으로 돌아가게 한다.

50년대의 다른 ‘홈 드라마’ 영화들이 아이를 매개로 바깥에서 일을 하는 남편/아버지와 안에서 가정을 보살피는 아내/어머니의 충실한 생활을 그리며, 쪼개질 수 없는 한 단위로서의 가족을 그렸다면, 나루세의 영화들에서는 아이가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이 단위의 결합력을 약화시킨다. 그렇기에 나루세의 남과 여는 언제까지나 서로가 서로에게 타인으로 존재하게 되며, 후지이 진시가 『집으로부터 저항으로 나루세 미키오의 여성영화』에서 지적했듯 나루세의 영화에서 불모의 집타자와 함께 살아가는 기술을 둘러싼 윤리적인 성찰이 행해지는 장이 된다. 1962년 작품 <여자의 자리 女座>에서 미망인 다카미네 히데코가 아들을 잃고, 한 가족의 완전한 타인이 되고 나서 그 집을 떠나 시부모와 다시 다른 보금자리에서 동거를 택하는 결말은 그렇기에 혈연이 아니라 개개인의 선택에 의해 맺어진 공동체로서의 가족의 가능성을 보게 한다.

침입과 도주


<밥>


  <방랑기>


아이가 없기에, 부부는 언제 헤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다. 거꾸로 말하자면, 아이가 없기에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된 것이지만, <아내 妻>(1953)에서 미네코(다카미네 미에코)가 “지금 이 집을 나가면 대체 어디로 가야 할까”라고 근심하는 데서 보듯 떠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집으로 돌아온 <밥>의 미치요가 머지않아 맞닥뜨릴 고민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미치요의 가출과 돌아옴이 결국 <아내>에서의 미네코를 예견한다고 말해버리기 전에 이 갈 곳 없는 이들로 하여금 떠날 결심을 하게끔 하는 계기가 마련된다. 침입과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자연히 일어나는 도주가 그것이다.

<방랑기 放浪記>(1961)에서 후쿠치와 후미코가 자리를 비운 사이, 문단의 동료들이 빈 집에 들어와 후쿠치의 험담을 시작한다. 집주인인 후쿠치마저 뜰을 서성거리며 집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장면이 이어지는데, ‘점거’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런 당돌한 침입이 그 공간의 본디 거주자들로 하여금 ‘있을 곳을 없게’ 하고 급기야 떠나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도쿄에서 오사카로 찾아온 사토코가 이층 공간을 차지하고, 미치요의 수건까지 써버림으로써 <밥>의 미치요는 있을 곳을 잃는다. 남편을 잃은 둘째 언니가 가게를 정리하여 이층 방으로 들어오고, 내키지 않는 맞선 상대 츠나키치가 빈번히 불쑥 찾아옴으로써 기요코(다카미네 히데코)는 “있을 데가 없다”고 한숨을 쉬게 된다. 나카키타 치에코는 <번개>에서도 <산의 소리>에서도 아이를 업고 집 안으로 성큼 들어섬으로써 파문을 일으킨다.

상쾌한 개방성


<방랑기>에서 문단의 동료들이 아무런 거리낌없이 방 안에 들어와버린 것처럼, 나루세의 영화에서 침입은 불가항력적인 위협이 되어 주인공들을 내몬다. 이런 침입과 도주는 나루세 영화의 공간들이 가게와 생활공간을 겸한 곳으로 설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가능한 것이기도 하지만, 안팎을 교대로 보여주는 카메라, 같은 공기와 소리로 포위됨으로써 안팎이 연결되는 공간으로 인해 용이해지는 것이기도 하다.

“태양 광선과 생명이 깃든 대기의 흐름이 그대로 실내로 흘러들어오는 느낌이 나루세 감독이 요구하는 세트의 첫 번째 조건입니다”라고 하스미 시게히코와의 인터뷰에서 추코 사토시가 말한 것처럼, 나루세의 공간은 시종일관 상쾌한 개방성을 느끼게 하는 열린 공간이다. 이는 나루세의 영화들에서 열린 이층 창문 혹은 현관을 통해 바깥이 내다보이거나 안이 들여다보이고, 배달부가 계단을 오르내리며 음식을 나르는 장면 등에 의한 시선의 개방성을 통해 언제나 ‘바깥’이 상상되며, 눈에 보이지 않는 대기를 투과해 들려오는 소리에 의해 서로 다른 공간들이 연결된 결과다. 이러한 시선과 소리의 개방성은 나루세의 주인공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위협이 됨과 동시에 그들에게 다른 가능성을 상상해 볼 수 있도록 부추기는 작용을 한다. <밤마다 꾸는 꿈 夜ごとの夢>(1933)이나 <소문난 처녀 噂娘>(1935)에서 열린 창문을 통해 들여다보임을 당함으로써, 주인공들은 도마 위에 올라 수모를 겪게 될 것이고, <여인애수 女人哀愁>(1937)의 남동생은 장지문 사이로 들려오는 목소리들로 인해 누나가 시가에서 학대를 당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런 개방성은 이미 주인공들 또한 익히 알고 있는 것이어서 <초롱불 노래 歌行燈>(1943)에서 주인공은 노래 대결을 청하면서 자신의 목소리가 담을 넘어 아버지에게 들릴 것을 두려워하며 노래 부르기를 거절하고, <오쿠니와 고헤이 五平>(1952)의 오쿠니는 필사적으로 장지문들을 닫으며 사람들의 눈을 피하고자 한다.


<초롱불 노래>


이렇듯 나루세 영화의 공간에서 이런 개방성은 앞서 말한 침입자들이 그랬듯, 불가항력적으로 작용하며 급기야는 안과 밖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기에 이른다. <만국 晩菊>(1953)의 빗소리는 도쿄를 감싸며, 긴(스기무라 하루코)과 긴의 옛 게이샤 동료들의 잠 못 이루는 밤을 함께 보여주고, <산의 소리>의 빗소리는 촛불을 손에 든 기쿠코와 신고(야마무라 소)가 벽을 사이에 두고 같은 곳, 천장을 근심스레 올려다보게 한다. 홀연히 들려오는 소리가 벽이나 다른 동네를 뛰어넘어 서로 다른 공간에 위치한 이들을 나란히 놓는 데서 오는 위화감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공간은 안에서 바깥을 상상할 수 있게끔 하는 가능성을 열어두게 되며, <번개>의 기요코와 어머니 사이의 갈등이 극에 달한 순간 들려오는 이웃집의 피아노 소리는 돈오 頓悟의 순간으로 화하는 것이다.

‘비스타vista’, 탁 트인 전망


하야시 후미코 林芙美子의 원작 소설 『번개』에서 세이코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주제에 끈끈하게 엮인 가족에 진저리를 치며 독립을 감행하고 대학 진학을 꿈꾼다. 그러나 결말부에서 언청이로 자신을 낳은 어머니를 향해, 남들처럼 결혼도 못하게, 누가 나를 낳았냐구!라고 원망을 퍼부음으로써, 결국 혈연의 속박을 벗어나지 못한 채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지 못한다. 소설 작품을 영화화하는 문예영화 기획에서 감독인 나루세 미키오가 얼마만 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보험금을 둘러싸고 시작된 진흙탕 싸움과 자매들 간에 츠나키치를 두고 벌어진 치정극을 피해 독립을 감행한 소설의 세이코와 달리 영화 속의 기요코가 바깥에 대한 동경으로 집을 떠났음은 분명하다. 2층의 하숙생의 방을 찾아간 기요코의 시선을 따라 책장, 벽에 걸린 그림, 축음기가 화면을 채우고, 이 화면이 독립하여 이사간 방에서 언니를 향해 말하는 커다란 책장을 사서 좋아하는 책으로 가득 채우고 싶어라는 대사로 이어지며, 2층의 하숙생의 방, 기요코의 이사, 어머니와의 다툼 장면이 동일한 테마의 음악으로 연결되는 구성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런 장면과 대사, 음악을 통해 기요코는 자신을 위해, 즉 자기만의 방과 책장이 갖고 싶어 집을 떠나는 여자가 된다. 나루세 미키오는 기요코와 어머니의 다툼 장면에 피아노 음악을 흘려 넣으면서 힐끔 텅 빈 이웃집 테라스를 보게 했다. 자신의 를 원망하던 기요코의 귀에 음악이 들려오고, 이 음악을 따라 창 밖을 다시 바라보게 함으로써, 집을 떠나 자신이 찾고자 했던 또 다른 가능성을 상기하게 하는 것이다.


<아내>


가족의 재생산을 통한 혈연의 얽힘으로부터 자유로이, 불청객들을 환대하지 않고, 늘 바깥이 존재함을 잊지 않고 바깥의 소리에 귀 기울인 결과 드디어 자신의 공간을 찾아내게 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들 주인공들에게 나루세 미키오는 탁 트인 전망을 선물처럼 선사한다. 비스타의 뜻을 시아버지에게 설명하며 웃음 짓는 <산의 소리>의 기쿠코, 멀리 번개 치는 하늘이 바라다보이는 창이 있는 방 안의 기요코는 이 선물의 수혜자라 할 것이며, 어쩌면 <아내>의 미네코는 현관을 지나 굽어든 방 안에 있었기에 이런 전망을 볼 수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1937년, 나루세 미키오는 자신이 원작과 각본을 맡아 <여인애수>라는 영화를 연출한 적이 있었다. 순종적인 며느리로서 학대를 감내하다, 자신의 의지로 집을 떠나버리는 며느리 히로코(이리에 다카코)는 옥상에 올라 탁 트인 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나루세 미키오의 집을 떠나는 여자들에 대한 관심이 훨씬 오래 전부터 지속된 것이었음을 알게 하며, 50년대 홈 드라마의 자장 안에서 그가 일관된 의지를 지켜왔음을 증거하는 한 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홍지영 푸단대 연극영화학 석사 과정


참고 자료

中古智ㆍ蓮實重彦, 『成瀨巳喜男の設計』, 筑摩書房, 1999.

藤井仁子, 「家から抵抗へ 成瀨巳喜男の『女性映畵』」, 『CineMagaziNet!』3號, 1999.

야마네 사다오山根貞男, 박창학 옮김, 「감정의 리듬2차 세계대전 이전 및 전시 중의 나루세 미키오에 대하여」, 『나루세 미키오』 한나래 시네마 시리즈 21, 한나래, 2002.

スザンネㆍシェアマンSusanne Schermann, 「成瀨映畵の家族たち」,『家族の肖像–ホムドラマとメロドラマ』, 森話社, 2007.

板倉史明, 「大映『母もの』のジャンル生成とスタジオㆍシステム」,『家族の肖像–ホムドラマとメロドラマ』, 森話社, 2007.

奧蒂ㆍ波克Audie Bock, 張漢輝 옮김, 日本電影大師Japanese Film Directors, 復旦大學出版社,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