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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소식

[김영진의 영화랑] 부산 시네마테크가 부러운 이유

지난 15일 서울 낙원동 소재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2010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열렸다. 서울아트시네마는 고전영화를 전문으로 트는 서울 유일의 시네마테크 역할을 하는 곳이다. 영화감독과 배우, 평론가들이 이 극장을 후원하는 친구들로 나서 자신들이 추천하는 영화를 극장에서 틀고 관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이 극장의 겉은 화려하지만 속사정은 부실하기 그지 없다. 시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데다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매년 2억여 원의 운영자금을 지원받아왔던 것이 올해부터는 끊길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자발적으로 이 극장을 운영하는 몇몇 상근스태프는 영화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최저생계비 정도에 불과한 수당을 받으며 살아간다..

이날 열린 친구들 영화제 개막식에서 몇몇 귀빈들이 축사를 했는데 맨 마지막에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단상에 올랐다. 그때까지 조희문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이두용, 배창호, 이명세 감독 등이 생존 위기에 처한 서울시네마테크의 미래에 관해 격려사를 쏟아낸 직후였다. 김동호 위원장은 "부산에는 시네마테크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두레라움이 완공되면 더 좋은 시설에서 시네마테크가 자리를 잡고 관객을 맞을 것입니다. 이곳에 계시는 분들도 혹시 서울에서 시네마테크가 없어지면 부산에 오셔서 고전영화를 감상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농담처럼 말했으나 흘려들을 얘기는 아니었다. 객석에는 씁쓸한 웃음이 퍼져나갔다.

각 도시에 도서관이나 미술관이 없는 곳이 없듯이 시네마테크도 미래의 영화인들과 시민들을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공간이다. 우리 현실에서는 왜 이렇게 있어야할 것을 갖추는데 많은 장애가 가로막고 있는지 모르겠다. 혹자는 DVD나 컴퓨터 다운로드로 영상을 볼 수 있는 21세기에 극장 스크린으로 꼭 고전영화를 봐야하느냐고 묻는다.

정부 관료들도 이런 말을 하는데 이는 미술서적에서 유명회화를 볼 수 있는데 꼭 원본그림을 전시하는 미술관이 있어야 하느냐고 묻는 것과 똑같이 무식한 소리다. 테크놀로지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지만 고전영화를 만들었던 과거의 감독들은 자신들의 영화가 극장 스크린이 아닌 다른 곳에서 상영되는 걸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영화를 만들었다.

스크린에 어울리는 매체로서의 영화의 본령이 살아있는 작품을 만들었던 것이다. 새로운 것은 오래된 것을 알지 못하면 나오지 못한다. 전통의 축적이 아방가르드의 도발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것은 상식이다. 축적된 것을 갖추지 못한 예술은 생명력이 길지 않다.

한국영화가 도약했다고 하지만 늘 아슬아슬한 느낌을 주는 이유도 거기 있다. 우리는 아직 전통을 보존할 만한 여유와 상식을 갖추지 못했다. 부산이라도 시네마테크를 소중히 지켜줬으면 좋겠다. / 김영진 영화평론가

[출처] 부산일보 2010년 2월 3일자 (http://news20.busan.com/news/newsController.jsp?subSectionId=1010120000&newsId=2010012600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