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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소식

관객들이 직접 나선 "시네마테크 지키기"운동

영진위에 공모제 반대 서명지 전달해 …  후원운동도 조직

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 조희문, 이하 '영진위')가 미디어센터와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시네마테크 전용관마저 공모제로 전환될 것을 우려하는 서울아트시네마의 관객들이 직접 행동에 나섰다.

서울아트시네마의 관객들 10여 명은 오늘(5일) 영진위 조희문 위원장을 방문해 처음 시네마테크 전용관 공모제에 관한 논란이 시작된 작년 2월부터 1년간 받았던 관객들의 서명지를 전달했다. '공모제에 반대한다, 공모제를 철회하라'는 요구를 담은 이 서명지에는 1,367명의 서명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 조희문 영진위 위원장이 서울아트시네마 관객들이 전달한 서명지를 받고 질문에 답하고 있다. ⓒ프레시안

위원장실 앞에 직접 나와 관객 서명지를 받은 조희문 위원장은 "관객 입장이라면 걱정할 것이 없다. 영진위가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사업 자체는 계속할 것인 만큼, 공모제를 통해 운영 주체가 바뀐다 하더라도 영화는 계속 안정적으로 상영될 것이다. 관객 역시 안정적으로 영화를 보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관객들은 "공모제로 전환한다면서 어떻게 안정적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느냐" "우리 극장이 없어질 수도 있는데 뭐가 안정적이라는 거냐"며 반문했지만, 조위원장은 "안정적으로 안 된다는 보장은 또 어디 있느냐. 아직 닥치지 않은 일을 미리 가불하듯 걱정할 필요는 없다"면서, "공모제에 대한 이견이라면 이미 관객의 입장을 벗어난 것이므로 이 자리에서 듣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한 시네마테크 공모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이나 공모 시기 등에 대해서는 "관객의 입장을 벗어난 질문이므로 대답하지 않겠다"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관객은 그저 영화만 보면 된다고?

조희문 위원장의 말에 영진위를 방문했던 관객들은 "관객들을 그저 수동적으로 영화만 보는 존재로만 여기고 있다. 시네마테크 전용관이라는 곳에 대한 성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발언"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서명지 전달 방문에 함께 나선 박영석 씨(31세)는 조희문 위원장의 말에 대해 "어이없다. 시네마테크는 다른 일반 극장들과 달리 커뮤니티의 성격과 교육의 목적이 함께 있는 곳인데도 이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듯하다"고 반응했다. 강민영 씨(26) 역시 "시네마테크의 1년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전혀 모르는 발언이다. 멀티플렉스 A 대신 B에 가면 되지 않느냐는 말과 뭐가 다르냐"고 말했다.

'조희문 위원장에게 시네마테크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것 같다'는 서울아트시네마 관객들의 공통된 반발은 이미 지난날 15일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개막식에서부터 이미 표면화됐다. 당시 조희문 위원장이 축사를 하면서 "DVD도 발달한 이런 시대에 고전 영화를 보러 여기 온 분들이 좀 답답하기도 하다. 영화를 보러 온 건지 친구들을 보러 온 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가 빈축을 샀기 때문. 오늘 영진위를 방문했던 이들 사이에서 개막식 때의 그 일화가 다시 회자된 것도 당연한 반응이다.

관객들, 극장 지키기에 자발적으로 나서

서울아트시네마를 지키기 위한 관객들의 활동은 이미 지난 달 29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네이버에 있는 서울아트시네마의 공식 카페에서 한 회원이 "우리 회원만 5천 명이 넘는데, 이들이 각자 만 원씩만 후원해도 벌써 5천만 원이다"라며 제안을 한 것. 서울아트시네마의 관객 중 이번 친구들영화제에 자발적으로 자원활동을 지원해 꾸려진 웹데일리 팀과 관객에디터 팀이 활동의 주축이 됐지만, '그냥 일반 관객'들의 참여와 호응도 뜨겁다.

▲ 서울아트시네마의 관객들은 미디어센터와 독립영화전용관에 이어 시네마테크 전용관에 대해서도 공모제가 시행될 조짐이 보이자 직접 자발적으로 나서서 '시네마테크 지키기' 운동을 조직했다. 이들은 서명지를 모으고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열리는 극장 로비 한켠에 부스를 차려 후원금을 모금하는 한편, 언론 및 관객들에게 공모제 부당성을 호소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프레시안

이들은 29일 <트로츠키 암살> 상영 때를 시작으로, 번갈아가며 순서를 정해 평일에는 마지막 회차에, 주말에는 전 상영 회차에 영화상영 직전 무대에 나와 상영작을 소개하는 한편 서울아트시네마가 처한 상황을 알리며 관객후원을 호소하고 있다. 30일부터는 서울아트시네마 로비 한 켠에 부스를 차리고 직접 후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불과 6일간 모금된 액수는 약 650만 원. 하루 평균 100만원 이상씩 모금된 셈이다. CMS 후원에 가입한 이들이 앞으로 1년간 낼 후원금까지 고려해 계산하면 약 1,933만원 가량이 약정된 상태다. 오늘(5일) 마지막 상영이 봉준호 감독의 씨네토크가 있는 <서바이벌 상영>인데다 일찌감치 매진이 된 상황인 만큼, 이들은 오늘 모금액에 대한 상당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29일 <트로츠키 암살> 당시 처음으로 무대에 나가 관객후원을 호소했던 장지혜 씨(28) 역시 웹데일리팀의 일원으로, 후원모금 활동에 나선 이들 모두가 공인하는 '부스 붙박이 지킴이'이다. 장지혜 씨는 "얼떨결에 시작하면서 그 전에는 그저 우울하기만 했지만, 이 활동을 하면서 막연함이나 불안감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관객 입장에서 서로 아이디어를 내고 스스로 활동을 조직하는 걸 보고 함께 하면서 뭔가를 함께 만들어 간다는 흥분으로 힘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이 공간에 대한 나의 애정을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고, 또 작으나마 보탬이 되니 뿌듯하다"는 것. 이는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바다. 박영석 씨도 "시작할 때는 초상집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서로에게 에너지를 많이 주고받으며 힘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관객도 시네마테크 운영의 주체, 시네마테크는 관객이 공모한다"

오늘 영진위 방문에 함께 한 정미영 씨(38세)는 회사에 휴가까지 내고 친구들영화제에 참석하고 있는 서울아트시네마의 열성 관객이다. 웹데일리 팀이나 관객에디터 팀에도 참여하지 않은, '순수관객 중에서도 순수관객'이라고 자신을 밝힌 그는 "내 생계를 쉬면서까지 서울아트시네마를 걱정하게 만든 곳이 영진위다. 그런데 영진위 위원장은 관객이면 그저 영화나 보라고 한다. 왜 사서 걱정을 하냐고 하지만, 영진위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지 않느냐"며 조희문 위원장의 말을 비판했다.

▲ ⓒ프레시안

이번 친구들영화제를 기회로 처음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는 김재욱 씨는 고등학교 1학년생. <트로츠키 암살>을 보러왔다가 관객 발언을 듣고 곧바로 활동에 스스로 '낚인' 케이스다. 그는 "서울아트시네마란 공간이 여느 일반 극장과는 달리 관객이 직접 운영의 또 다른 주체가 되면서 유대감을 강한 것 같다. 이런 소중한 곳이 자본의 논리와 영화정책 때문에 없어진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조위원장님이 요즘 관객들, 특히 이곳의 관객들에 대해 대단히 오해하고 계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나같은 학생의 입장에서 이곳은 영화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교육과 학습의 공간이기도 한다. 이런 경험은 다른 극장에 가서는 쉽게 할 수 없다. 이곳은 서울에서 유일한 곳이 아닌가"라며 서울아트시네마에 대한 근심을 나타냈다.

현재 영진위는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공모제에 대해서는 아직 공식적인 발표를 하지 않은 상태다. 일각에서는 "최근 미디어센터와 독립영화전용관에 대한 공모제 결과 때문에 논란과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만큼, 영진위가 시네마테크 전용관마저 성급히 공모제를 시행해 파문을 자초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을 조심스레 내놓고 있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두 곳의 사업자 선정을 놓고도 공정했다며 우기고 있는데, 시네마테크라고 무사하겠느냐"는 비관적인 전망도 적지 않게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2009년 문방위의 국정감사 결과보고서에 '시네마테크 전용관 공모제 전환을 신중히 검토'하라는 내용이 선택됐고 이달 내에 임시국회도 열리는 만큼, 시네마테크를 둘러싼 영진위의 향후 입장에 대해 영화계 안팎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 김숙현 기자 (프레시안무비)

[출처] 프레시안무비 2010년 2월 5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