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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

"공간이 주는 영감을 영상 고유의 언어로 풀어내고 싶었다"

[시네토크] 김동주 감독의 ‘빗자루, 금붕어 되다’

지난 4월 2일, <빗자루, 금붕어 되다>의 상영 후 영화를 연출한 김동주 감독과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이날 김동주 감독은 영화만큼이나 진지한 자세로, 영화를 연출할 때 했던 스타일적 고민들과 감독으로서의 소신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이런 영화는 설명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하고, 본 사람들이 느끼는 바에 따라 영화가 달리 이해될 것 같기도 하다. 굉장히 독특한 영화다. 서로 다른 것들이 결합되어 있는 방식이 흥미롭다. 초현실주의의 데페이즈망처럼 하나가 다른 하나를 치환한다던가, 이질적인 것들이 결합하는 느낌이 든다. 처음에 영화를 구상할 때 어떤 지점을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김동주(영화감독): 고등학교 동기가 고시원을 오픈했다고 해서 찾아가 본 적이 있다. 사오년 전 일이다. 신림동 지역은 아니고 도심지에 있는 곳이었다. 고시원이라는 곳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보고 느끼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시원에 대한 영화를 하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는 고시원이 매우 많고,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살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사회의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그리고 싶었다. 공간이 주는 어떤 느낌, 영감 같은 게 있었다. 스타일 측면에서 욕심이 있어서, 공간에 대해서 실험적인 시도를 해보려 했다.

김성욱:
영화감독 중에는 영화 속에 카메라가 비추는 세계만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과 외부적인 세계의 여지를 남겨놓는 감독들이 있다. 김동주 감독의 경우는 스타일적으로만 보면 전자인 것 같다. 고정된 카메라에 의해서만 비춰지고 화면 안의 세계만이 존재하며, 그 바깥의 영역이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고시원이라는 닫힌 공간의 특성도 있지만, 카메라가 공간을 비추는 방식 자체가 닫힌 체계를 가지고 있다.
김동주: 일단은 주인공이 살아가는 일상의 범위가 굉장히 단순한 것에 착상을 맞췄다. 사람이 극도로 궁핍하다 보면 행동반경이 굉장히 단조롭고 한계가 있지 않나. 시나리오를 쓸 때 고시원에서 잠깐 살아봤는데, 거기 분들하고 이야기하면서 그런 걸 느꼈다. 이 사람의 일상의 범위를 공간적으로 함축하고 단순화해서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핸드헬드를 사용해서 공간을 자유롭고 열린 상태로 표현할 수도 있었지만, 이 사람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모든 곳에 초점이 맞는 공간의 느낌과 편집되지 않은 실제시간을 보여주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카메라가 고정되어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것은 끝까지 그 스타일대로 해보자는 원칙을 정해서 밀고 나가본 것이다. 카메라 앵글을 아이레벨 보다는 약간 틀었는데, 이런 느낌이 뭔가 좀 신선하고 주관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김성욱:
카메라가 고정되어 저 멀리 있는 배경까지 왜곡된 화면에 담겨지는데, 소리의 거리감은 거의 없다. 모니터를 흥정하는 장면을 보면 인물들이 후경으로 움직였지만, 소리의 크기는 차이가 없다.
김동주: 소리도 거리에 따라 조절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되면 이 영화의 기본적인 내러티브 정보를 줄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 선택을 했다. 중요한 장면이 시각적으로 멀리 있는 것만도 모호한데 소리까지 작으면 너무 정보가 없고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의 정보를 주기 위해서 소리를 잘 들리도록 담아냈다.

김성욱: 이 영화에서 다른 장면들은 컷과 컷이 직접 연결되는데, 여자를 골목에서 벽돌로 때리는 순간과 산에서 시체를 묻는 장면에서는 페이드 아웃을 사용했다. 그리고 살인 이전과 이후의 표현 방식이 달라졌다는 느낌이 든다. 여자를 죽인 후의 에피소드는 환상 같기도 하다.
김동주: 살인사건까지는 우리가 보는 일반적인 영화의 리듬을 따라서 전개가 되는데, 살인사건 이후는 갑자기 시간적 비약을 하는 등의 변화를 줬다. 그 다음부터는 주인공의 내면과 심리, 욕망에 더 무게를 두고 싶었다. 카메라도 변화를 주는 게 어떨까도 생각했는데 그렇게 되면 영화가 너무 구분되는 것 같아 그냥 카메라랑 시점이나 숏의 느낌은 그대로 가면서 인물의 내면으로 좀 들어가 보자고 했다.

관객1: 장필은 사회 속에 매몰된 수동적인 사람 같지만, 사실은 굉장히 능동적이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연히 얻은 돈으로 여자를 사서 성욕을 해결한다거나. 자위한 정액을 물고기에게 준다거나.
김동주: 사실 장필은 수동적으로 돈 없이 사는 사람이며, 그 주인공을 쫒아가 보자는 설정이다. 우발적인 살인이라는 게 흔히 일어나는 사건은 아니다. 그것은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그 이후에 굉장히 그 사람의 내면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생각으로 설정한 것이다. 사실적인 것 보단 좀 더 독특하고 일관성에서 벗어나는 심리적인 측면에 집중하고자 했다.

관객2:
장필은 초반부터 계속 약탈을 당하는 입장이다. 모니터 사기를 당하는 등 막다른 길목까지 갔을 때,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것을 의도적으로 약탈한다. 단순히 우발적인 적의에 의해서만 했다기보다는 그 여자의 지갑 속의 돈도 작용했다고 봤다. 그 붉은 지갑이 이후로도 모텔에서 여성이 볼 때와 차에서 몰래 훔칠 때 다시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에 같은 골목에서 다시 그 지갑을 약탈당한다. 그 지갑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셨는지?
김동주: 사실은 그 보다 앞에서 목각을 사는 여자 장면에서도 그 지갑을 썼다. 여성도 같은 인물로 하고. 이를 통해 지갑이 흘러가는 순환의 구조, 변해가는 것들을 보여주려 했다. 정상적으로 인간적인 측면이 배제된 거래 관계의 지갑과 그 지갑이 스스로 뺏고 뺏기는 과정, 다양한 돈의 흐름을 그 지갑을 통해서 좀 인상적으로 보여지길 바랐다. 여성 캐릭터들을 같은 배우가 맡았는데, 그 여성이 다양한 역할을 함으로 인해 영화에 색다른 측면이 드러날 수도 있다 생각했다.

김성욱: 있는 걸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영화라기보다는, 어떤 예술 작가의 구상에 따라서 배치된 작품으로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이 남자에게 모든 여자는 결국 하나인 게 아닌가 싶다.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카메라에 의해 비춰지는 것들은 모두 현실성을 갖는다. 영화 장면이 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별적인 장면들이 서로 이질적인 시적 언어로 치환되고 대치되고, 반복과 대구와 치환의 느낌이 있다. 시나리오 단계에서도 이런 식의 구성과 설정을 하셨는지, 촬영을 하면서 변경된 부분이 있는지?
김동주: 90% 이상은 시나리오 단계에서 결정했다. 미리 설정하지 않았던 것은 여성과 골목을 동일 인물과 공간으로 하지 않았던 정도다. 이 영화에는 찍어 놓고 안 쓴 컷이 하나 밖에 없다. 편집도 거의 할 일이 없이 그냥 붙여놓으면 끝이었다. 아주 효율적으로 작업했다. 워낙 저예산이기도 했고 직접 제작도 하다보니까 효율적이고 치밀하게 하기 위해 미리 생각을 많이 했다.

관객3:
길거리에서 목각 공예품을 팔다가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장필 안에서 약간의 파토스가 생겨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여성에게 품었던 파토스가 다른 여성에게 분출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다시 모니터가 등장하는 장면하고, 여성에게 화장을 하는 장면들이, 살인 사건을 꿈이나 환상처럼 만들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김동주: 영화를 많이 보신 관객인 거 같다. 창작은 이론과 논리를 가지고 끼워 맞출 수가 없는 부분이 많다. 창작자들이 영감을 떠올리기 위해 많은 경험도 하고 고민도 하는데, 사실 내가 갖고 있는 경험과 느낌들,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들이 표현된 것이다. 특정 의도대로 해석되기를 바라는 부분도 있지만, 세상에는 실제로 모호한 것들이 많고 무의식적으로 나온 부분들도 많기 때문에, 관객이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인다면 다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김성욱: 영화가 기본적으로는 사실적이지만, 매우 비현실적인 부분도 있어서 애매한 느낌을 준다. 상징적인 느낌 같기도 하고. 돈의 순환이 강탈이든 대가에 따른 지불이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어진다면, 하나의 사건이 개별적으로 머물 수 없고 모두 연루되는 것인데, 그것이 갖는 사회적 공범의식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반면 가장 인간적인 접촉을 이뤄내는 것은 TV, 냉장고 산다고 돌아다니는 할아버지와 장필의 유대가 아니었나 싶다. 장필의 안위를 걱정하듯 고시원 앞을 내다보다 가는 장면이 인상에 남는다.
김동주: 장필의 인간적인 면도 보이고 싶었다. 폐지도 모아보고 모니터도 가져가고 어떤 미안한 마음도 있는 거다. 윤리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고 싶었다. 영화가 어둡고 싸늘한 구석이 있지만, 그래도 소극적이라도 희망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김성욱: 이 영화는 다루는 내용과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 독특한 결합을 이뤄내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면의 수도 제한되어 있는데, 각각의 개별적 장면이 밀도 있고 정확하게 배치돼 있어서 영화 전체적인 이야기를 이해하기가 오히려 더 어려워진다. 앞으로의 작업에 있어서도 이런 스타일들이 지속이 될 지, 내용과 주제에 따라 다른 스타일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김동주: 이야기를 잘 풀어가기 위해 카메라와 모든 소도구 음향 등이 구축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표현하지 못할 영상 고유의 언어 자체에 대해 흥미를 갖고 집중을 하고자 한다. 재밌는 이야기도 하고 싶긴 하지만, 그 보다는 우리 안의 고민, 인간적인 문제점,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고 싶다. (정리: 박영석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