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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견디고 버틸 것, 봄은 온다!

지난 겨울은 참으로 드라마틱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리고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에게 말을 걸고픈 이 땅의 시네필들 역시 나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바로 영화를 진흥한다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파행 행정이 빚어낸 일들 때문이다. 영화의 성지라 불리는 시네마테크 사태부터 미디어센터, 독립영화전용관 운영자 선정 공모 비리, 한국영화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영화아카데미의 기능 축소 문제까지 영화계 전반적으로 영진위는 폭격탄을 날렸고, 많은 영화인들과 영화학도, 그리고 이 땅의 시네필들이 이에 분노하고 반발하며, 저마다의 행동을 보였다.

관객들과 만나기 위해 찍은 자신의 영화를 새로운 독립영화전용관에서 틀지 말아달라고 1인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수많은 영화인들이 영진위 정상화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고, 시네마테크의 관객들은 시네마테크 독립성 확보를 위한 관객 후원 모금 활동을 벌였으며, 영진위가 공모 전환을 철회하고 지원을 계속 해줄 것을 호소하는 성명서를 내고, 이 내용 전달을 위한 영진위 항의 방문도 했다. 모두 지난 겨울에 있었던 일이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 역시 시네마테크를 아끼고 사랑하는 관객으로서 그 운동에 동참했다. 현재도 시네마테크의 안정적인 행보를 기원하고,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보기를 즐기며, 작게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관객 에디터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직 가시적으로 드러난 이렇다 할 성과는 없다. 공공의 적이 된 영진위는 여전히 아무런 해명을 하지 않고 동문서답만 일삼고 있다. 최소한의 신뢰는 무너지지 않길 그토록 바라마지 않았는데 반성의 기미, 혹은 책임지려는 행동이 보이지 않는다(그렇게 일관되게 비상식적이고 비논리적인 발언을 일삼는 일도 힘들어 보일 정도로). 선정 상에 명백히 문제가 있음이 드러난 새로운 독립영화전용관 시네마루는 또 어떠한가. 영화인, 시네필들의 염원을 뒤로 하고 그 곳은 무슨 할인 마트 상품을 내걸 듯이 원 플러스 원 행사에 심지어 무료 상영까지 하며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싸움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던가. 이대로 좌초되고 만 것인가. 아니 그렇게 단정 지을 수만은 없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성과가 아니라 해도 그해 겨울의 우리들의 행동은 유의미했고, 진일보한 면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싸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오래 버티고 견디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고, 승리하는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여전히 우리들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봄을 기다리며 추운 겨울을 견디어 내고 있다. 어떻게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글은 이를 함께 고민하고 공유하기 위함이며, 나는 시네마테크 관객으로서 그간의 시네마테크 사태와 관련한 관객 활동을 중심으로 못 다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시네마테크는 현재 영진위 지원이 중단된 채 한 달 반을 버티고 있다. 처음 관객 후원 모금 활동을 시작할 당시 목표액은 5억 원 이었다. 극장 임대료를 포함해 1년 여 동안 시네마테크 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금액이다. 1년여 동안을 자립적으로 버티어낼 수 있다면, 시네마테크가 존속할 이유로 충분한 근거이며, 그 시간동안 보다 진전된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가 열리던 그 두 달 여간 최종적으로 모인 후원금 총액은 목표액의 1/10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관객들의 그 애정과 열의는 시네마테크의 많은 친구들을 감흥에 젖게 했고, 더 많은 친구들을 영입할 수 있게 만드는 동력이 되었다. 영화애호가들의 연대의 힘을 보여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박찬욱, 봉준호, 류승완, 최동훈, 김지운 등 시네마테크의 친구이자 국내 내노라하는 감독과 김혜수, 원빈 등의 배우들이 맥주 광고 CF 촬영에 임해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 기금으로 기부한 것도 이러한 연대의 힘이 작동한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비단 시네필에게만 국한되지도 않았다. 국회에서도 영진위의 파행적인 정책행정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며, 영진위 위원장의 사퇴를 종용하고 있다. 언론에서도 시네마테크 사태를 주시하며 그 어느 때보다 열띤 여론을 형성했다. 결과적으로 시네마테크는 일차적 위기는 벗어난 듯 보인다. 시네마테크를 지지하고 시네마테크의 지속적인 존립을 바라는 많은 영화인들과 관객들의 노력으로 처음 목표했던 5억 원의 후원금은 모아졌다. 영진위 지원 없이 1년여 정도를 계속 버티어낼 수 있는 자금은 확보한 셈이다. 게다가 이러한 활동이 일파만파 점화되어 각종 뉴스와 신문에 시네마테크 관련 기사들이 나오면서 시네마테크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데도 성공, 시네마테크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도 일조한 바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지난 두 달여간의 시네마테크 후원활동의 성과라면 성과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후원자들의 노고에 감사하고 새롭게 각오를 다지기 위해 지난 3월 12일에는 ‘시네마테크 리로디드'라는 제명의 후원의 밤 행사도 가졌다. 말 그대로 앞으로도 활동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재장전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그날 오후 영진위는 시네마테크 전용관 운영자 재공모 공고를 냈다. 그리고 이 역시 첫 공모 때와 마찬가지로 어떤 지원자도 나오지 않아 무산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일정정도 일이 해결될 기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다. 관료주의 행정상의 절차라는 것도 있으니 이미 뱉은 것을 철회할 수는 없어 재공모를 했지만 재공모까지 무산된 실정에서는 지원 사업으로의 정책 변화가 한층 쉬울 수 있다는 예측에서다. 그간 시네마테크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보여준 지지와 십시일반 모아준 후원금과 영화인들의 CF 기부금, 거기에 영진위 지원금까지 얻어내고, 장기적인 지원 약속을 받아낸다면 실로 ‘해피'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꿈은 그리 쉽게 이뤄지지는 않고 있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영진위는 재공모가 무산되자 기존대로 운영자금을 지원해주는 대신 극장 계약 주체는 자신들이 직접 하는 방식의 지정위탁 계약을 하자는 일종의 회유책을 쓰고 있다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극장 임대료는 지원해줄 수 없다는 것. 이는 욕을 먹든지 여부에 상관없이 일정 정도는 자신들이 원하는 바대로 성취해왔던 영진위의 치기어린 자존심, 일종의 앙탈처럼 보인다. 시네마테크만이 유일하게 자신들의 정치적 잣대에 흔들리지 않았던 것에 대한 분풀이랄까 뭐 그런 것. 위탁과 지원이 뭐 그리 차이가 있을까 싶지만 이는 그간 계속적인 논란이 된 시네마테크 사업 주체, 권리의 문제를 동반하는 사안이며, 운영의 자율성에도 영향을 미치는 바가 크다. 그래서 이 문제는 여전히 논의의 중심이 되고 있으며, 빨리 결정되어야 할 사항으로 보인다.

이렇듯 근본적이고 뚜렷한 해결책은 아직 없는 실정이지만 시네마테크는 일정 정도 영진위와의 싸움에서 선점한 부분은 있다고 생각한다. 재공모도 무산되고 회유책이 있었지만 지원사업으로의 전환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는 여지가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네마테크에서 계속 영화를 상영하고 있고 우리가 그것을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시네마테크만이 영진위가 원하는 바대로 움직여지지 않은 것일까. 그것은 시네마테크의 본질, 목적, 나아가 영화의 본성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시네마테크는 가치 있는 고전 영화를 보존, 복원하고 상영하는 곳이며, 그 영화들의 가치를 함께 공유하고 연대하는 일종의 커뮤니티로서 영화를 탐구하고 영화를 배우는 가장 기초적인 공간이다. 그리고 이 점은 또한 시네마테크 활동의 가장 중요한 본분이자 의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며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웠고, 키우고 있다. 영화에 대해 풀리지 않는 질문을 제기하고 고민하며 고갈되지 않은 체험을 가능케 하는 곳이다. 게다가 현재의 서울아트시네마는 그러한 활동을 민간 영역에서 십여 년 가까이 힘들게 꾸려온 역사를 자랑한다. 최후의 방어선이기에 많은 시네필들이 시네마테크를 지키고자 갖은 노력을 하고 있고 그것이 또한 현재의 시네마테크가 존속해야 이유, 동력이라 생각한다. 만약 시네마테크가 무너진다면 우리는 영화에 대한 우정 어린 교감을 나눌 장소를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를 마지막 방어선이라 부르며 이 공간이 안정적으로 서고,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 남아 있길 바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물론 영진위의 지원이 없으면 현재 서울아트시네마의 운영은 버거워 보인다. ‘영진위 지원 따윈 필요 없어'라며 야심차게 ‘시네마테크 관객이 공모한다'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통용될 수 있는 대안이 아님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내년에 똑같은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고, 만약 그러한 일이 반복되어 또 다시 주머니를 털어 힘들게 운영을 지속해야 한다면 시네마테크의 의미, 중요성과 상관없이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해 버리고 말 소지도 다분히 있다. 그렇다고 현실에 닥친 문제를 급급하게 해결하기 영진위의 현 제안을 받아들여서도 안 될 것이다. 어느 정도의 타협은 가능하다고 해도 반드시 지켜져야 할 윤리, 도덕이라는 것은 있으니까. 현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의 경우는 최소한 지속적인 지원과 민간 영역에서 십여 년간 쌓아온 역사를 져버리지 않는 선에서의 독립성이 보장되는 합의가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또한 그것이 꾸준히 유지될 수 있도록 시네마테크에게 허해진 자유를 탈환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명분도 근거도 없이 때리는 돌에 맞아 걱정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들은 마지막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보다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나는 영화인도 아니며, 그저 영화를 좋아하는 일개 관객에 지나지 않지만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시네마테크가 존속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네마테크를 통해 연대한 우리들이 지금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몇 가지 안을 제기해본다. 첫째,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영진위라 하더라도 그곳이 그간의 정책적 판단오류를 인정하고 시네마테크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지원활동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계속적인 설파가 필요하다고 본다. 무너진 문화적 합의를 다시금 이끌어낼 수 있는 활동이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오는 22일 경 서울아트시네마가 ‘시네마테크 사태와 장기적 지원'에 관한 포럼을 연다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에 관심을 갖고 동참하여 힘을 보태고, 보다 건설적인 대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시네마테크와 관련된 논의의 장을 확장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잠시 잠깐의 이슈화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사라진 문화적 합의를 성취할 수 있을 때까지 끊임없이 우리는 목소리를 높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시기이니만큼. 이는 또한 시네마테크의 진정한 주인이며 영화를 최종적으로 완성시키는 우리 관객들이 할 수 있는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행동지침이다.


두 번째로는 안정적인 영화의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서울에 시네마테크를 건립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세워지고, 이 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미 지난 1월 15일 ‘서울에 시네마테크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가 출범을 했고, 각계각층에서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셋집을 옮겨 다니며 여기 저기 다치고, 흔들리고 있었던 것은 내 집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던가. 시네마테크의 관객들 역시 건립 추진위 활동을 예의 주시하며, 진정한 시네마테크의 보금자리가 마련될 수 있는데 보탬이 될 수 있는 작은 아이디어 하나라도 더 결집시켜 내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는 그저 영화를 보는 행위 역시 지속시켜 나가고, 영화에게 말 걸기, 영화에 관한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해야 할 것이다. 지금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엘리아 카잔 특별전이 열리고 있고, 우리들이 그렇게 보고팠던 페데리코 펠리니, 오시마 나기사 등 유수의 회고전, 기획전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그러한 프로그램들이 성황리에 열리고, 새로운 담론의 장을 형성하는 것이야말로 시네마테크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자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는 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일도 내게 시간이 허락되는 한 시네마테크를 찾는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에 즉각 돌입할 것이다. 그곳은 우리들이 반드시 지켜내야 할 마지막 방어선이기에. 그렇게 믿고 견디면서 버티어낸다면 시네마테크는 결코 사라지지도 죽지도 않을 것이다. 설사 유령이 되는 한이 있어도. 하루 빨리 우리들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 따사로운 봄 햇살이 가득하길 희망한다.
(신선자)

* 이 글은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 69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특별판으로 나온 이번 ACT!는 2010 영진위 파행 봄 컬렉션 - 그해 봄은 더디 왔네...- 란 제목의 지난 겨울 영화계 전반적으로 불어닥친 영진위의 파행적 행동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