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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100편의 시네마오디세이2-친밀한 삶

[Review] 거짓말 하는 남자와 가면을 쓴 여자들 - 알랭 로브그리예의 <거짓말 하는 남자>


알랭 로브그리예는『질투』를 포함한 몇 권의 책을 통해 국내에서는 소설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작가로서 많은 소설과 시나리오를 썼지만, 한편으로는 10편의 영화를 직접 만든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1968년작인 <거짓말 하는 남자L'homme qui ment>는 그의 세 번째 영화로, 제18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각본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영화의 전체 줄거리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영화의 전반부의 이야기는 제목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인물의 대사와 화면이 일치하지 않는 장면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가령, 텅 빈 술집에 들어갔다고 말하는 순간, 카메라는 사람들로 가득 찬 광경을 보여준다. 이렇듯 소리로 듣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이 어긋나는 지점들은 그가 거짓말 하는 남자라는 심증을 굳히게 한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의심은 증폭된다. 앞서 찍은 장면을 지우고 대사에 맞도록 다시 촬영해 보여주는 듯, 영화는 스스로를 번복한다. 그래서 어떤 장면이 진실인지, 그가 만든 거짓말의 이미지인지 혼란을 자아내는 것이다.


한편, 유리잔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 조각 나는 장면이 영화 속에 등장한다. 로브그리예가 시나리오를 쓴 알랭 레네의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에서도 여주인공이 손에 든 유리잔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유리잔이 바닥에 떨어지고 유리 조각들이 흩어진다. 원래는 하나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유리잔이 깨지는 순간 유리의 공간이 뒤틀린다. 유리 조각들이 바닥에 놓인 상태에서 유리잔은 원래의 배열과 구조를 잃어버린다. 그러나 그것들을 원래의 배열대로 모두 합칠 수 있다면 아마도 온전한 유리잔의 모습일 것이다.

영화를 하나의 유리잔으로 치환한다면 <거짓말 하는 남자>의 혼란스런 이야기는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들, 왜곡된 공간들을 펼쳐 보이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얼마 동안은 깨진 유리 조각 몇 개를 손에 쥐고 이리 저리 맞춰보려 시도하지만 어떤 것도 짐작해내기 어렵다.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유리 조각들을 얻게 되고, 그때서야 비로소 얼추 잔의 모양을 유추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숲에서 도망치는 남자, 이방인, 미로 같은 저택, 아름다운 세 여자, 초상화가 걸린 방, 레지스탕스, 배신자, 죽은 자, 죽이는 자와 같은 유리 조각들.

거짓말의 사전적 의미는 이러하다.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상대방에게 이것을 믿게 하려고 사실인 것처럼 꾸며 하는 말. 영화 속에서 말들은 다른 말, 다른 이야기에 의해 곧잘 반박되고 부정된다. 이야기들은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말이든 서로를 지탱하고 서로를 구축하고 있다. 죽음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가짜 연기로 대체되어야만 그를 다시 숲으로 도망치게 할 수 있다. 여자들의 얼굴은 모두 가면을 쓴 듯 심중을 알아차리기 어렵고, 결국에는 누가 누구를 연기하고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투명한 유리잔은 빛을 통과시켜 그 너머의 것을 볼 수 있게 하지만 그 이미지는 늘 왜곡된다. 왜곡된 이미지는 거짓도 진실도 아닌 이미지 그 자체인 것이다. (손소담 : 관객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