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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

“쿠바의 매력은 사랑이다”

[시네토크] 정호현 감독의 ‘쿠바의 연인’

최근 한국영화계에 감지되고 있는 새로운 기운을 살펴보고자 마련한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 기획전이 시작된 지 이틀째인 지난 23일 저녁, 다큐멘터리 <쿠바의 연인>이 상영되고, 상영 후에는 이 영화를 연출한 정호현 감독, 그리고 영화에도 동반 출연한 그의 남편 오리엘비스가 극장을 찾아 관객과의 대화를 가졌다. 처음 의도와 달리 유쾌, 상쾌한 연애담이 담긴 의외적인 다큐멘터리 <쿠바의 연인>에 대하여 실제 주인공이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들려줬던 그 시간의 일부를 전한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방금 보신 영화를 만드신 정호현 감독님을 모셨다. 먼저 영화 작업 이후 최근의 근황은 어떠신지?
정호현(영화감독): 쿠바에 다시 가서 작업하려고 준비 중이다. 일 하면서 남는 시간에 작업하려 하는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추구하는 바는 올해 쿠바로 가서 쿠바의 사랑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야기는 여자들 중심으로 풀 것 같다. 어린 친구들부터 나이 드신 분들까지 어떻게 연애하고 헤어지는지 이런 이야기들을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 생각을 한다. 옆에 있는 오리엘비스는 최근 스페인어와 살사를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일 주일 전엔 KBS 『러브 인 아시아』에 출연했었는데 너무 연출된 모습들을 원해서 다투기도 하고 결과적으로 좋지 않았던 것 같다.

허남웅: KBS에서 있었던 그런 과정들은 <쿠바의 연인>을 만들 때도 동일한 지점이 있나?
정호현: 많이 다르다. 영화에선 5년 정도 시간을 두고 찍은 것 이라 연출한 건 없다. 그러나 KBS는 연출된 그림이 일주일안에 나와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촬영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예를 들자면 파티를 하는데 쿠바에서 가장 매력적인 파티 시간은 새벽1~2시다. 그러나 KBS는 8시에 와서 10시에 갔다. 파티를 시간을 앞당겨서 해달라는 거였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파티장면을 찍겠다고 하면 1~2시에 찍는 게 맞는데 TV는 시간에 쪼들리는 사람들이라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 같다.


허남웅: 영화는 2008년에서 끝이 나는데 개봉은 늦게 이루어 졌다. 그 사이엔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정호현: 쿠바를 처음 들어간 건 2004년이고 영화는 2005년부터 찍었다. 그리고 2007년에 결혼식을 했다. 아이 출산이 2008년이다. 영화 속 장면은 2008년 초기까지 담겨져 있다. 그 다음에 출산하고 나서 편집하고 2009년에 겨울에 영화를 완성, 첫 선을 보인 후 지난해 개봉하게 된 것이다.

허남웅: 쿠바의 춤과 사회가 궁금해서 이 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쿠바엔 카메라만 가지고 아무 계획 없이 갔다고 들었는데, 소재를 찾을 생각이셨는지 아니면 단순히 직업적으로 찍겠다는 생각이셨는지 의도가 궁금하다.
정호현: 처음엔 캐나다에서 갔을 땐 쿠바로 배낭여행을 갔었다. 그때 쿠바를 못 잊어서 2005년에 정부에서 했던 프로젝트에 참여, 그 기회로 또 갔다. 그때는 쿠바가 좋아 보여서 그냥 찍으려고 감만 잡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2005년 끝부분에 이 사람(오리엘비스)을 만났다. 스페인어 배우면서 조금씩 그 사회가 들리고 보였다. 그 때 느낀 게 ‘내가 생각한걸 보여주면 안되겠다’라는 거다. 그건 관광객 입장에서 본 쿠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쿠바에 사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쿠바를 보여주자고 개념을 바꾸었다. 처음엔 낭만을 생각했는데 현실을 받아 들이는 게 쉽지 않았다. 쿠바가 가진 매력과 어려운 모습들을 어떻게 다 잡을까 다시 고민하다 사랑이야기 넣는 게 쿠바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 싶어 저희 사랑을 담게 된 것이다.

허남웅:
자신의 사랑을 다큐멘터리로 드러낸다는 게 힘든 결정 인 거 같다. 사랑을 담기로 했을 때 감독의 의도도 있었을 테지만, 당사자인 오리엘비스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정호현: 오리엘비스는 자신을 영화에 집어 넣는 게 불편하지 않았다고 했다. 왜냐면 애니메이션 작업을 했고 자신이 주인공을 했던 적도 있어서 힘들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벗은 장면은 제가 힘들었을 거 같다는 말을 했다. 쿠바에선 필요하다면 벗은 모습을 보여주는걸 익숙하게 생각한다. 상업적 영화로 억지로 그런 장면을 하려면 힘들었겠지만 우리끼리 노는 장면을 넣은 거라 힘들지는 않았다.

허남웅: <엄마를 찾아서>라는 작품을 찍고 감독님은 스스로 ‘나를 드러내는 것이 힘들다. 그래서 다신 이런 류의 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쿠바의 연인> 역시 자신을 전면에 드러낸 영화다. 어찌 보면 더 많이 나온다고도 볼 수 있는데, 오리엘비스를 만나서 관점을 달리하게 된 것인가?
정호현: 자신의 사랑이야기를 한 거긴 하나 제 생각엔 별로 안 드러난 것 같다. <엄마를 찾아서>는 다 드러났다고 보는데 <쿠바의 연인>은 나를 개인적인 나로 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오리엘비스를 우리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서 초점을 맞춰서 그렇다. 옷 벗고 이런 것은 힘들지 않다. 오히려 집안의 치부나 폭력을 드러내는 게 힘들다. <쿠바의 연인>은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그래서 전작보다 수월했다. 허나 역시 가족에게 보여줘야 된다는 점은 힘든 지점이었다. 그래서 역시 다신 이런 작업은 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관객1:
쿠바의 매력에 빠져서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매력적이라 생각하는지? 그리고 현재 어머니의 반응도 궁금하다.
정호현: 개인적으로 가장 높이 사는 쿠바의 매력은 사랑이다. 쿠바에서 15세 여자아이에게 인터뷰를 했는데 남자친구 사귈 때 뭐가 가장 중요하냐고 물어보니 ‘외모, 돈 다 필요 없고 중요한 건 날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가?’라고 했다. 잘생기고 못생기고 개념은 없다. 연애가 편한 나라다.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도 없고 찌들어서 사는 느낌도 없다. 전체적으로 다 가난하니까 못산다는 개념이 아니고 여유롭게 산다는 걸 느낀다. 그 여유로움이 사랑으로 뻗어 내리니 사회가 부드러운 거 같다. 그리고 환대한다는 느낌도 좋다. 몽골에서 와서 6년 정도 쿠바에 머물다 간 친구에게 넌 쿠바의 어떤 점이 좋으냐고 물으니 제일 먼저 말한 것이 환대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어떤 상황에서 만나도 즐겁게 받아 준다. 그런 게 쿠바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두 번째 질문인 어머니의 반응은 글쎄? 출산을 한국에서 했는데 지금은 별로 걱정 안 하시는 것같다. 아이가 가진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도 사위를 좋아하진 않는다. 다만 받아들이고 잘 살길 바라신다. 아이는 예뻐하신다.

허남웅: 영화에서 처음엔 한국 후손들을 찾다 급격하게 사랑이야기로 변화한다. 아마 그런 것이 다큐가 가지는 매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호현: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극 영화는 완벽하게 짜인 허구 속에서 완벽하게 연기를 했을 때 효과가 극에 달한다. 다큐는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는 환경 속에서 자기가 생각했던 가정이 끊임없이 바뀌는 과정을 그대로 담을 수 있다. 처음에 쿠바에 갔을 때는 아무런 연고도 없이 가서 한인후손을 소개받았다. 그래서 그분들을 찍다가 아이디어가 생기고 그런 와중에 애인을 만나서 삼천포로 빠지는 이런 과정들을 다 드러낸 거다. 어떻게 보면 플롯도 없고 엉성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댜큐 과정에서 충분히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여러 내용을 일단 다 넣어서 전체적으로 톤만 맞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허남웅: 물론 성공한 작품도 있겠지만 한국에선 다큐 만드는 것도, 개봉도 힘들다. 작업하시는 작품의 제작비를 스스로 모아 작업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것도 수월치 않다. 이번 영화제는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인데 특별히 감독님이 가지고 있는 전략이 있다면?
정호현: 일단 자금 부분이 어렵다. 다큐를 극장에 틀어서 먹고 살수 있는 구조는 안 된다고 본다. <워낭소리> 같은 것은 그럴만한 소재와 정서가 맞았기 때문인 좋은 경우다. 독립 영화 하시는 분들은 작품 상영만 해서 먹고 사는 분은 없다. 강의나 아르바이트 등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다. 몇 개 없는 펀드긴 하지만 그걸 받아내서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요즘에는 제작비 마련하기 위해 피칭을 한다. 참 의미가 있는 다큐라고 세일즈를 잘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전엔 기획 안을 올려서 받았는데, 이젠 피칭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것이 과연 다큐의 질을 높일지는 의문이 간다. 그리고 심사 하시는 분들은 주로 교수 분들이시다. 제작자 입장에선 달가운 건 아닌 거 같다. 이 작품을 계기로 남미에 대한 작업을 한다면 그쪽에서 상영을 좀 더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관객2: 영화 중간에 보면 여자분을 촬영하다가 신고가 들어와서 중단되는 장면이 있는데, 촬영 당하던 분이 직접 신고한 게 아니라면 그 사람에게 오해를 풀어주면 되는 게 아니었는지, 그리고 쿠바에서 그렇게 신고 당하는 일이 생기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정호현: 파트리샤 아버님이 공산당원이다. 그리고 인터뷰 중 정치적인 인터뷰가 있었다. 그런 이야기가 당에 올라가게 되어 아버님이 당황했던 것 같다. 파트리샤나 남편 분은 그런걸 전혀 개의치 않는다. 반정부적 개념이 있는 사람들이다. 왜 자유가 없는지에 대해 답답해 했다. 아버님 때문에 중단했던 거다. 결론적으로 정부의 제재 같은 것은 없었다. 촬영을 중단한 이유 중 하나는 쿠바에 상영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쿠바는 저런 불평들에 대해 사회가 열려있다. 문제 삼지 않는다. 쿠바사회는 묘하게 열려있다. 그래서 피해가 간 건 없었다.


허남웅: 어느덧 정리할 시간이다. 끝으로 이후에 준비중인 작업이나 계획에 대해 듣고 싶다.
정호현: 여기에 나온 음악은 모두 오리엘비스가 만든 거다. 이 영화를 보고 작곡한 게 아니고 곡이 먼저 나오고 선택 한 건데 잘 어울린다. 이게 첫 음반이다. 총 12곡이 나왔고 올해도 음악작업을 할 거다. 저는 쿠바의 사랑, 성 이런 이야기에 대해선 긍정적이다. 쿠바 여자들이 우리나라 여자에 비하면 확실히 열려있고 당당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 자유로워서 힘든 건 없는지 그런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고 싶다. 어디까지 자유로울까? 어디까지 닫혀 있는 게 사람 살기 편할까 그런 고민들을 하고 있다. (정리: 정태형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