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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다큐멘터리의 진실의 정치학

“의료제도에 관한 우리 현실을 다루고 싶었다”

[시네토크] ‘하얀 정글’의 송윤희 감독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는 소재의 무거움에 함몰되지 않고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형식 실험과 사례를 활용해 각광받고 있다. 이에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9월 1일부터 8일까지 ‘다큐멘터리의 진실의 정치학’이라는 제하로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의 주목할 만한 8편의 작품을 모아 특별전을 열고 있다. 이 중 지난 9월 4일 오후에는 한국판 식코 이상의 평가를 받고 있는 <하얀 정글>이 상영되었고, 상영 후 영화를 연출한 현직 의사 송윤희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전한다.



김숙현(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의사는 무서우면서도 존경심을 갖게 되고 또 한편으로는 원망과 불만을 갖게 되는 대상인 것 같다. 영화를 만든 감독이시기도 하지만 의사 선생님이시기도 한데 영화를 만든 의도를 듣고 싶다.
송윤희(영화감독): 기본적으로 의료제도에 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의료생협에서 주치의로 일하고 있는데 돈 몇 만원이 없어 당뇨 치료도 포기하고 자포자기 상태로 몇 년을 칩거 생활을 하는 분이 있었다. 그 분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휴대전화도 끊기고 가스비도 못 내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의사로서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고 치료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남편이 그 환자를 접하고 나서 집에 와서도 계속 걱정하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할 때 그런 문제들이 피부로 많이 와 닿더라. 그 점을 부각시켜야겠다고 생각했고 한편으로는 대중적인 콘텐츠로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럴 경우에 가난한 사람들의 궁핍한 현실과 병원에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에만 집중을 하면 인간극장 같은 한계가 있는 다큐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해서 기획을 수정했다. 그래서 의료제도와 객관적으로 많이 비판이 되고 있는 현실들을 다루고 그 외에도 이후에 진행될 수 있는 민영화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담게 되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의료 제도, 의료보험이라는 소재로 <식코>라는 다큐멘터리가 소개된 적이 있는데 그것 이상으로 우리나라만의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제작하게 되었다.

관객1:
약간 편향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병원과 자본 측의 문제라는 차원이 많았던 것 같은데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스폰서 제약회사 나왔던 부분에서 제약회사의 문제도 있지만 일부 몰지각한 의사의 문제도 크다고 들었다, 코디네이터 같은 경우도 개인 병원에서 장사를 하기 위해서 고용한 사람이고, 의사협회 측에서는 주치의 제도라든가 의사 정원수 확대에 반대하는 걸로 알고 있다. 감독님은 다시 보시면서 어떠셨는지 궁금하다.
송윤희: 그 지적은 가재가 게 편이라는 것인데 사실 같은 내부고발자 성격의 <트루맛쇼>보다는 덜 고발적인 것 같다. 눈여겨보신 분은 아실 것이다. 다큐의 내용은 신문사 의료담당기자 분들이 매번 쏟아내고 있는 내용이다. 공공연한 사실이었던 것이다. 이미 만들어진 기사와 비판적인 담론들을 인터뷰를 통한 생생하게 전달했다고 생각한다. 완전히 폭발적이라기보다 확인을 다시 한 것이다. 극장 상영을 하게 되어 좀 더 공론화되면 어떤 반응이 있을지 궁금하다. 저도 잘 예측이 안 간다. 또 그러한 비판은 초기부터 들었는데 왜 그랬는지는 아실 것이다. 우리는 의사 파업 때 파워가 있는 기득권층이 뭉쳤을 때의 여파가 얼마나 큰지를 경험했다. 그 분들 혹은 좀더 보수적인 의사 분들이 뭉칠 거리를 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저도 의사이기 때문에 의사 개인으로서의 어쩔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삼십초 진료 하나로 몰지각한 분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했다. 저도 눈치를 많이 본 것이다. 남편과 공동작업을 하면서 ‘서울시 의사들이 어떻게 반응할까’를 예상해가면서 편집을 했고 구성을 해보았다. 심지어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의료 민영화와 무관하게 하루 온종일 환자를 보며 자신의 삶을 온몸으로 바치는 그 분들이 존경스럽다”라는 멘트가 있었는데 저건 제발 빼라는 주변 사람들의 강경한 주장이 있어 뺐다. (웃음)
김숙현: 질문은 이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는 평소에 병원의 모든 문제를 의사에게 쏟아 붓지 않나. 한 시간 기다려 일 분 진료 받으신 한 노인 분께서 로비에서 엄청나게 크게 욕을 하는 모습을 봤다. 의사 분은 삼십대 초반의 여자 분이더라. 만약 저 의사 분이 사십대 남자였어도 모두가 다 듣게 저렇게 욕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요는 의사 선생님도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든 안 하든 병원에서 임노동을 하는 사람이 아닌가. 여러 가지로 볼 수 있겠지만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으나 역시 많긴 했다. 인터뷰를 찾아보니 의사 편향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빠짐없이 받았더라.

관객2:
남편 분이 의료생협에 일한다고 하셨는데, 현 의료체계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는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송윤희: 의료생협은 의료생활협동조합의 준말로 특별법에 의해 만들어졌다. 조합원을 모아서 조합원의 서명을 얻어서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의료시설을 개업할 수 있는 것이다. 폐해도 있다. 지역주민이 자발적으로 세워야 하는데 형식적으로 의료생협을 만들어 생협의 이름으로 많은 수혜를 받는 가짜 의료생협도 많다. 지역민들이 자본금은 갹출한다고 하지만 몇 억을 동원하기 힘들다. 의사들이 자본금이 좀 있으니까 직접 뛰어들지만 자기 의원이라는 의식은 없다. 조합원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훨씬 관계가 친밀하다. 한번 관계 맺는 것이 아니라서, 최대한 많은 검사해서 돈 벌어야겠다 이런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의사로서 부담감이 생긴다고 하더라. 시작은 안성에서 했고 안산, 서울로 많이 퍼져나가 전국에서 생기고 있다. 가까운 지역에 있다면 관심 가져주셔도 좋을 것 같다.

관객3:
손으로 물 받는 장면에 대한 감독님의 설명을 듣고 싶다. 또 삼십초 진료나 의료 광고 부분은 인상적이었지만 나머지 부분은 토론이나 TV 장면을 인용하시면서 설명조로 차분하게 진행하셨는데 계몽성에 목적을 두셨는지, 객관성은 감독님 스스로 몇 프로 갖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감독님과 의료 민영화가 어떻게 진행될지 감독님의 의견을 듣고 싶다.
송윤희: 그 장면을 보고 ‘아 이거겠다’ 하고 드는 생각이 있으면 그게 맞는 것 같다. 답은 낙수효과라는 경제효과를 싫어하는데 그걸 반대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이명박 정권이 항상 강조하는 ‘대기업이 성장하고 풍성하게 되면 결국 이게 넘쳐서 그 부가 아래까지 흘러간다는 것’이 낙수효과의 기본이다. 복지효과에서도 사용이 되고 있고 기본적으로 그것이 옳지 않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영화미학이라기보다는 분노를 담았다. 두 번째는 설명적이고 프로파간다적이다, 명확한 자기 생각을 가진 감독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어느 정도 자기 생각을 가미해서 설명하는 방식인가 하는 것인데, 그렇다. (웃음) 주관이 많이 들어가있다. 같은 사안에 대해서 다른 생각 가진 분들도 많을 것이다. 현 상황이나 시사적인 문제를 바라보는 틀이 서른 두 살이니까 있을 수밖에 없고 노련하게 티가 안 나게 밑바닥에 흐르게 하는 게 아니고 그 틀을 가지고 조명을 했던 것이다. 객관적인 자료를 보여줬지만 그 객관적인 자료도 이미 저와 비슷한 사람들이 써놓은 자료나 기사를 많이 담았던 것이다. 세 번째 질문에 대해선 의료 민영화 주장이 2003, 4년부터 'IT로는 먹고 못 산다, 새로운 산업을 발굴해야 한다'는 논리로 물꼬를 튼지 칠 년이 되었다. 적극적으로 갈지 소극적일지는 모르지만 영화에서 지목했듯이 지금의 여당 야당 수준을 떠나서 개방, 자유로운 투자를 내세워 의료 부문을 자본의 먹거리로 하려는 세력은 계속 있다. 민간 보험, 민간 대기업형 병원들, 제약회사들은 의료 부문이 개방될수록 시장이 활성화되니까 계속 시도를 한다. 이걸 계속 막아내는데 시민단체나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쪽에서도 싸움이 너무 길다보니까 점점 힘이 부치는 게 사실이다. 광우병 때 같이 의료 민영화 안 된다고 얘기가 불거져 나오기도 했고 사안이 있을 때마다 끼어들려고 애쓰고 있다. <하얀 정글>이 개봉하게 되면 그럴 수도 있고. 그런데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는 쪽도 살금살금 그들의 주장을 펼 가능성이 있다. 제주도만, 인천 송도만, 이런 식으로 계속 할 것이다. 무서운 것은 반대 세력이 꼴통처럼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는 영화 만드는데 십 개월 투자했지만 그 분들은 칠 년간 온몸을 다 바쳐서 이 나라에 좋은 의료 제도를 만들기 위해 일해오신 분이다. 그 분들이 있는 한 굉장히 어려울 것이고 <하얀 정글>을 통해서 대중의 힘을 같이 받게 된다면, 대중이 의료 제도를 아프면 고민하지의 수준이 아니라 언제든지 아플 수 있는 예비환자로서 같이 고민하고 같이 만들어가는 힘이 된다면 그쪽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보고 땡이 아니고 여러분도 계속 사회 구성원으로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셨으면 한다.


관객4: 저 같은 경우는 병원에 관계되어 있는 사람이 아니라 환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의료 민영화나 잘못 되어가는 병원이나 의사들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이 궁금하다.
송윤희: 환자로서의 권리 혹은 의료 민영화를 막아내는 데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다. 사실 저도 그 첫 걸음을 잘 드려야 하는데 잘 못 드리고 있는 상황이다. 환자로서의 권리로서 작은 것을 말씀드리면, 감기로 병원에 갈 때 처방전을 두 장 받게 되어있다. 꼭 받으셔서 자기가 어떤 약을 먹는지를 알아야 한다. 법적으로 받게 되어 있다. 큰 병원에 갔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뭔가 생각해보면 딱 떠오르는 것이 <대한민국 병원사용설명서>라는 책이다. 백혈병 환자 분이 본인이 겪었던 모든 것을 책에 담았다. 저도 영화를 만들기 전에 이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의사로서 모르는 점이 너무 많았다. 대학병원에 소속된 의사는 개원과를 모르고 개원과는 대학병원을 모르는데 그 책을 통해 많이 깨우쳤다. <하얀 정글> 홈페이지에 <대한민국 병원사용설명서>의 간략한 설명도 올려놓았는데, 환자로서의 권리 찾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또 민영화 정책이 진행된다면 밖에서 구호 외치고 집회 한번씩 나가는 것 말고 뭘 할 수 있을까 질문을 많이 하신다. 본인이 만약에 정말 운이 나빠서 안 좋은 의사 선생님 만나면 인터넷에 꼭 쓰셔야 된다, 밝히셔야 된다. 의사 선생님 계십니까? (웃음) 인터넷이 힘이다. 또 중앙일보에서 7월, 8월쯤 민영화 해야 한다는 기사를 계속 내보낸 적이 있다. 그런 기사 하나에도 답글을 써라. 백 명이 하면 무서워 한다. 때가 아닌가보다 생각한다. (웃음) 그런 답글이 약한 행동일 것 같지만 실제로 힘이 있다. 수권세력들이 어찌할 수 있는 힘이 되니까 그런 액션을 꼭 했으면 한다.

정리: 최용혁 (관객에디터) 사진: 정은정(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