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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다큐멘터리의 진실의 정치학

“용산참사에 대한 일종의 개인 고백같은 기록이다”

[시네토크] ‘용산’의 문정현 감독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소재의 무거움에 함몰되지 않고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형식의 실험과 사례의 활용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에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9월 1일부터 8일까지 '다큐멘터리의 진실의 정치학'이란 제하로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의 주목할 만한 8편의 작품을 모은 특별전을 열고 있다. 9월 6일 저녁에는 <용산> 상영 후 문정현 감독과 대화하는 마지막 시네토크 자리가 있었다. 그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단순히 용산 만의 문제가 아니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어떻게 해서 이 작업을 시작하셨나?
문정현(영화감독): 용산 참사를 인터넷상에서 보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공황상태가 됐다. 이 용산 참사를 개인의 기록으로, 내 역사였던 순간순간으로 짜맞춰보고 생각했다. 단편으로 30~40분을 기획했다가 조금씩 길어져서 장편이 됐다.

김성욱: 가족을 찍은 영상과 참사이후 용산에 가서 찍은 영상, 다른 분들이 현장에서 찍은 영상, 과거의 영상들이 섞여 있다.
문정현: 용산에 대해 직접 들어가는 게 마음의 상태나 윤리적으로 보아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전략을 취했다. 직접적으로 깊이 있게 들어갈 수 없다는 상황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싶었다. 그 고백의 장치를 다른 화면들을 통해 하고자 했다.

김성욱: 불길한 느낌의 음악의 활용에 대해서는?
문정현: 다른 감독님의 작업에서 '삐~' 하는 소리를 썼는데, 그 소리가 나를 무지 불편하게 만들었다. 순간순간마다 불편함과 기억해야할 것들에 대해 떠올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허락을 받고 사운드를 가져다 썼다. 외국에서는 그걸 영사사고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었다.

김성욱: 실제 영사사고라고 생각할 우려가 있는 건 후반부이다. 복귀하듯이 처음으로 돌아가는 거. 압축 요약하듯 속도를 빨리해서 돌려버렸지 않나.
문정현: 편집 당시 자료정리를 하면서 예전에 찍은 화면들을 보는데 정말 영사 소리가 나더라. 마지막 되돌릴 때 넣으면 낯설지 않겠구나 생각했다. 영화 기획 당시 제작일지 첫 글이 이거다. "어떤 영화가 되던 복귀하겠다." 용산 참사에 제대로 접근할 수 없는 현재의 나를 되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 영화를 잘 끝낸다면, 나는 진짜로 이제 용산 얘기를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김성욱: 중간에 그림을 그리는 게 등장하는데, 자화상의 그림이 특이했다. 그 분이 자화상을 그렸듯이 이 영화작업을 자화상처럼 생각한 건가?
문정현: 그 분은 김병택 형인데, 그 형이 끊임없이 자기를 되돌아보는 모습이 굉장히 감동적이었다. 자기를 되돌아보는 계기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했다. 이 영화가 내 자신을 되돌아보고 싶은 욕망의 산물인 셈이다.

김성욱: '죽은 분들에 대한 기억'이라는 전시회에서 카메라가 한 그림에 줌인을 한다. 돈이 뭉쳐져 있는 그림인데.
문정현: 전시회장은 자화상 그렸던 형이 찍은 화면이다. 돈에 줌인해 들어가는 그 모습이, 영화를 편집할 때 내 모습이었다. 돈이 많이 필요했으니까. 돈이 필요한 것 때문에 내 삶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것도 너무 웃겼고. 우린 돈을 숭배하고 살지 않나.

김성욱: 그 분이 광주 도청을 그린 그림에서, 실제 광주 도청이 보이고 중학생이 지나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은 직접 찍었나?
문정현: 원래 계획한 장편에는 도청문제가 많이 들어갈 예정이었다. 철거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있고 해서 그 갈등을 기록해보고 싶었다. 5.18은 개인적으로 다큐 작업을 시작한 목표이기도 하다. 언젠간 꼭 5.18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이번에 살짝 해봤다.

김성욱:
주변에서 쳐다보는 사람도 많이 찍혀있다. 서성거릴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미묘한 느낌이 있다. 무관심, 기억해야 된다. 이런 말들이 강조된다. 너무나 많아서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끊임없이 이어지는 죽음들. 세상은 안 바뀌고 사람들이 바뀐 걸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문정현: 이 세상이 절망적이다. 더 떨어질 수 없을 정도의 밑바닥이다. 이 용산 참사 자체도 그렇다. 작년에 이 작업을 하면서 아동성폭력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했는데 두 편을 동시에 편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세상이 이렇게까지 갈 수 있을까 해서 극도의 공황과 자살충동까지 들 정도였다. 어쨌건 내가 해야 할 일은 세상 현장의 이야기들을 겸손히 배워 사람들에게 전하는 거다. 값싼 희망이나 감동보다는, 이 절망의 사회를 일단 보여주는 게 최선의 선택이라는 생각을 했다. 다큐나 예술이 세살을 바꿀 수 있다는 명제를 이제 부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을 믿고 그 절망의 끝에서 피어나오는 희망을 생각한다. 언젠가 내 앞에 용산과 같은 죽음이 다가왔을 때, 몇 십 년이 지나건 그 때, 이렇게 고백했던 영화가 있었다는 걸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큰 영광일 것이다. 기억이란 건 너무나 주관적인 것이다. 개인의 역사와 경험들이 있으니 보편적인 잣대로 이야기하긴 싫고 가장 솔직하게 내 얘기로 풀어가려 한다. 동의하는 분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절망적인 세상을 다시 환기할 수 있다면 나에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1: 영화 중간에 보면, 어떤 사람이 캠코더를 고정시켜놓고 프레임 아웃됐다가 그냥 그걸로 끝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문정현: 상도4동에서 철거운동하시는 분, 천주석 씨다. 용산 망루에 올라가셨다가 구속되어서 감옥에 계신다. 그 분이 직접 찍으신 장면들 중 일부 화면이다. 자기 집에서 고정을 해놓고 계속해서 철거되는 과정, 건너편 잘사는 마을을 찍은 것과 용역들 이야기들 등 풍부한 내용이 찍혀있다. 그 중에서 강한 이미지를 줬던 몇 개의 컷들을 골라다가 영화에 집어넣었다.

김성욱: 80년 광주에 대한 기억이 가장 큰 것으로 느껴진다.
문정현: 5.18 당시 초등학교 즈음이다. 5.18은 민주화운동의 핵심으로 일컬어지는 경우와, 아니면 폭도들의 이야기로 회자되는데, 그 안에 들어가면 정말 여러 가지 사건들과 이야기가 있었다. <오월애>와 같은 영화가 많은 자극이 되고 힘이 된다. 첫 단추를 끊어놓으셨으니, 나 같은 후배들은 다른 각도에서 쳐다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언젠가는 할 계획인데 역시 사적인 기억으로 풀어질 것 같다.

김성욱: 80년대 중후반까지는 독일방송 영상이 대학에서 상영될 때 그 기록이 갖는 강력한 힘이 있었다. 최근의 상황에서 기록영상이 갖는 힘이나, 그것이 무언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문정현: 당시에 독일방송 영상은 정말 충격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보니 별로 충격적이지 않더라. 이제 미디어에 노출된 수위 자체가 좀 더 선정적이나 자극적이지 않으면 충격이 없다. 단순히 기록한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다. 단순히 메시지가 가해지는 영상보다는, 관객들로 하여금 다른 방식으로 능동적으로 사건 자체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느슨하게 만들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은유와 다른 형식적인 실험들이 필요할거란 생각도 들었다. 기록을 어떻게 재창조할 수 있느냐, 중심에 선 창작자가 어떤 마인드로 사건을 바라보느냐가 과거에 비해서도 더 풍부해져야한다고 본다.

김성욱: 최근에는 무슨 작업을 하시는지.
문정현: 오늘 끝낸 작업이 있는데, 4대강 개발반대 작업 중 영산강 쪽 이야기를 담았다. 그리고 <내가 문근영을 만나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촬영 중이고 장애인과 관련된 또 하나의 이야기를 편집 중이다.

정리: 박영석(관객에디터) 사진: 주원탁(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