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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

“영화를 통해 뭔가 새로운 걸 찾고 싶다”

[시네토크] 신수원 감독의 ‘레인보우’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전략’ 기획전이 막바지로 접어들던 지난 4월 3일 일요일 저녁. 영화 <레인보우> 상영 후 신수원 감독이 관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영화를 찍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부라는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만큼, 실제로 영화를 촬영하고 제작하며 겪었던 고군분투를 들어볼 수 있었던 자리였다. 재치 있고 솔직한 대화로 객석에 웃음이 터져 나왔던 그 시간의 일부를 전한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독특하게도 학교 교사로 있다가 굉장히 늦은 나이에 연출자로 데뷔 했다.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신수원(영화감독): 2009년에 찍고 작년 11월에 개봉한 영화인데, 원래 좀 오랫동안 중학교 사회 선생을 하다가, 영화 첫 장면 같은 과정들을 좀 겪었다. 처음엔 학교생활이 너무 지겨워서 도망 칠 궁리를 하던 중 영화 학교 등록금이 싸기에 ‘여기 들어가서 좀 쉬자’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시나리오를 써보니 재미있고, 16미리 영화를 찍었는데 역시 재밌었다. 그 후 먹고 살기 위해 복직은 했는데, 보니까 내가 남편 몰래 꼬박꼬박 영화를 찍으려고 적금을 붓고 있더라. 그걸로 35미리 중편을 찍었다. 그런데 이렇게 한 다리 걸치고 있는 건 아닌 듯 했다. 스스로를 강제하고 싶었다. 방학의 어느 날 교장 선생님께 사표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영화를 시작하게 됐다.

허남웅: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디까지 본인의 이야기인가?
신수원: 도입부에서 선생을 하다 사표 쓰고 영화, 음악 영화를 준비한다는 것 등은 실제와 겹치는 부분인데, 프로듀서나 옆방 감독님 등 인물 설정은 영화적 장치를 위해 많이 바꿨다. 원래 제 옆방 감독님은 굉장히 진지하신 분이다. 운동도 안하시고. 실제랑 똑같이 간다면 다큐를 찍는 게 맞는 거라 생각했다. 주인공 지완도 나와 많이 다르다. 나는 그렇게 추리닝만 입고 다니지도 않고, 무엇보다 아들도 학교에서 맞고 다닌 적 없다. (웃음) 기타는 오히려 학원 조금 다니더니 흥미를 잃더라. 나 역시 뺨 맞아본 건 어릴 때 선생님한테 맞은 적 이후 없었던 것 같고.

허남웅: 특정 장르로 분류하기 힘든 영화다. 음악영화 같기도 하고 성장영화이기도 하고, 가족영화이기도 하고, 다큐적인 부분도 삽입되어 있다. 이런 모험적인 시도를 끝까지 밀어붙이신 이유가 궁금하다. 어떤 확신이 있었던 건가?
신수원: 원래 판타지를 좋아한다. 첫 시나리오도 싸이파이 장르였고 평소 공상을 많이 한다. 그래서 주인공의 심리상황을 대변하기 위해 개미에 대한 환상을, 이상으로써는 무지개를 자연스레 집어넣게 된 것 같다. 평이하게 가는 것은 스스로에게 재미가 없었다. 등장하는 ‘레인보우’란 음악 밴드는 일전에 음악영화를 준비하며 취재했던 ‘토닉’이란 실제 밴드다. 그 때 그 때 스케치해둔 장면들을 썼다. 이렇게 다큐적 측면과 리얼리티도 있고, 판타지도 있고, 또 자막을 쓰는 부분에는 타이핑 소리를 넣기도 하고. 사실 이 시나리오를 쓰고 주변 친구들에게 보여줬을 때 ‘재미는 있는데 톤이 일정치 않아 걱정 된다’ 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몇 부분을 빼려 해봤지만, 그걸 빼면 ‘이게 뭐지’란 생각이 들었다. 원래 상업 영화를 찍으려다보면 일정한 톤을 따라가야 하는데, 스스로 거기에 대한 답답함을 느껴왔던 것 같다. 이번에는 적은 예산으로 독립적으로 가는 거니까 하고 싶은 데로 자유롭게 찍고 어떤 그림이 나오는지 보겠다고 촬영 전에 마음먹었다.

허남웅: 마음대로 찍는 게 가장 좋지만, 요즘 영화판이 주류 제작사와 투자사의 관여가 많을 수밖에 없다. 제작까지의 과정도 순탄치 않았던 걸로 알고 있는데.
신수원: 애초에 상업영화 제작사나 투자사에 갈 생각이 없었다. 처음부터 적은 예산을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썼다. 그러다보니 배경도 옆방 감독님, 집으로 한정짓고, 펜타포트 페스티벌은 허락만 받으면 촬영도 가능하고 그림이 되기 때문에 넣었다. 원래 3천5백 정도의 예산이 필요했는데, 남편 몰래 숨겨놓은 퇴직금 2천5백만원이 있었다. 나머지 천만원이 필요했는데, 어려운 와중에 지인이 이 시나리오를 좋게 보고 장기대출로 돈을 빌려줬다. 사실 후반에 돈이 더 들어가서 총 4천7백만원 가량 들었다. 마지막에는 아르바이트나 일이 들어오면 고맙게 받고 다했다. 근데 저예산이니까 스태프들에게 돈을 거의 못주고 노개런티로 진행하느라 어려움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촬영 회차를 적게 가야해서, 20회차에 한번 보충해서 찍었는데, 절대 놓칠 수 없었던 부분은 어떻게든 찍었지만 대신 포기 가능한 부분은 빠르게 포기했다. 지금 영화를 봐도 그런 부분이 보이는데, 그건 영화라는 게 여건 내에서 찍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아무래도 음악 영화다 보니 돈이 후반에 더 들었다. 이번에 영화제 버전으로 틀어달라고 했는데,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나온 한국 밴드와 외국 밴드의 곡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이라 개봉 때 뺐었다. 대신 기획전에서만 틀고 있다. 힘들었지만 배운 점이 많았던 것 같다. 특히 감독이지만 연출 뿐 아니라 프로듀서 역할도 겸해야 했던 것. 또 작은 규모의 영화에 대한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허남웅:
지난 1월에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작가를 만나다 행사를 진행했는데, 한 관객분이 힘든 상황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위기가 닮아서 <레인보우>가 연상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 둘은 분위기가 굉장히 다르다. <레인보우>의 톤은 힘든 상황에도 되게 밝다. 처음부터 이런 밝은 분위기를 의도한 건가?
신수원: 원래 성격은 우울한데 시나리오는 늘 코미디다. 처음에 써서 팔았던 시나리오도 코미디었고, 밴드 이야기도 소소한 코미디였다. 레인보우는 처음에 좀 진지하게 접근했었는데, 쓰다가 던져버리게 되더라. 그래서 ‘에라 이렇게 된 거 그냥 재밌게 쓰자’고 생각했다. 물론 아주 웃기진 않지만. 중간 중간 의도적인 건 아닌데, 그냥 관객들이 재밌었으면 했다. 촬영할 때 배우분이 시나리오 찢는 부분에서 감정이입이 되어 울었다. 그 전까지는 이해를 못했는데, 감독의 마음이 어떤 건지 알 것 같다고 하더라. 근데 그 때 그 장면을 킵 하고, 배우에게 울지 말기를 부탁하고 다시 테이크를 갔다. 그 장면을 웃기게 혹은 슬프게 느끼는 건 관객의 몫이라고 봤다. 훌쩍이는 소리도 넣었다가 빼고 기계가 지잉 울리는 소리로 대신했다. 그게 제가 영화에서 원했던 톤이었던 것 같다.

허남웅: 배우들 캐스팅 과정도 흥미롭다. 아들 역의 백소명군 경우는 강호동의 ‘스타킹’에도 나온 음악 하던 친구라고 들었는데.
신수원: 사춘기 소년이 변성기의 목소리로 아주 열심히 노래하는 장면으로 끝났음 하는 바람이 있었다. 고로 일단 변성기의 중학생이 필요했고 기타를 직접 칠 줄 아는 게 연기보다 중요했다. 그런데 조건에 맞는 배우가 없었다. 결국 촬영 앞두고 인터넷을 막 뒤지다가 초등학생 밴드 ‘페네키’를 보았다. 기타 치는 백소명군을 검색하니 중학교에 반까지 나오기에 연락을 해서 만났다. 원래 초등학교 때는 장발에 간지폭풍(좌중 웃음)이었는데 딱 시나리오에서 튀어나온 듯한 보통의 중학생이 있었다. 영화 해볼 생각 없냐고 물었더니 음악만 한다고 답하더라. 바로 이게 필이라며 또 그 모습에 반했다. 다음 날 어머님께 소명이가 한다고 했다며 전화가 왔다. 어떻게 된 거냐고 했더니 소명이가 ‘엄마 워낭소리가 독립영화였지’라고 물어봤다고 하더라. (좌중 웃음) 2,3백만 들 줄 알았는지 흔쾌히 오케이 해줬다.

허남웅: '레인보우'라는 제목도 갖가지 색이 영화랑 무척 잘 어울리는 한편 평이한 감이 있어서 고민도 있으셨을 것 같다. 영어 제목인 'passerby#3'가 더 멋있는 것 같기도 하고.
신수원: 처음 시나리오 쓸 때는 레인보우라는 제목으로 시작했다. 어떤 책에서 ‘음악은 칼라다’라는 문구를 보고는 ‘그래 음악은 도레미파솔라시지만 빨주노초파남보일 수도 있겠다’는 연상이 됐다. 또 레인보우라는게 이상이란 의미도 있잖나. 근데 시나리오를 다 써놓고 나니까, 아들이 “엄마 나는 엄마 영화에 행인3으로 출연하고 싶어”라고 했던 대사가 자꾸 생각났다. 그래서 ‘행인3’으로 제목을 고쳤다. 근데 집안 촬영 할 때 정말 우연히 무지개가 떴다. 황급히 찍어놓고는 막상 편집 땐 무지개가 제목인 영화에 무지개는 좀 촌스러운 것 같아서 안 쓰려고 했다. 그런데 편집기사님이 좋은 데 왜 안쓰냐며 넣으셨다. 결국 고민하다 장면도 넣고 제목도 레인보우로 했지만 ‘행인3’도 버릴 수 없어서 야비하게 영문 제목으로 ‘passerby #3'으로 정했다. (좌중 웃음)


관객1: 저는 장편 다큐를 준비하는 영화학도다. 어머니가 제게 ‘영화를 취미로 하고 싶은거냐’고 물으셨다. 직업으로 삼고 싶다고 하니까 수입 없는 직업은 직업이 아니라고 하셨다.(좌중 웃음) 영화를 보면 돈 벌이를 하던 사람이 그걸 그만두고 영화를 하겠다고 한다. 함께 부담하던 걸 남편이 혼자 지고 가정을 먹여 살리게 된다. 작품의 밝은 톤 때문인지 이런 상황에 대해, 남편이 자는 모습이 나오긴 했지만, 갈등이 드러나지 않는데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이었는지?
신수원: 실제로 남편의 시점도 좀 보여주는 게 옳지 않겠냐는 분들도 계셨다. 주인공 시점으로 가는 영화를 찍고 싶었기 때문에 남편 입장은 잘 안 나온다. 그렇지만 잠깐 등장할 때마다 남편이 느끼는 고단함 등이 충분히 느껴질 거라고 생각했다. 술 취해 돌아와서 “나도 때려치우고 싶어”라고 한다든지. 나중엔 배터리 던지고 폭발하는 장면도 있지 않은가.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족영화가 아니라 카메라를 든 가정주부이자 영화를 하고자 하는 사람의 꿈과 욕망, 갈등을 그리려 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을 통제하며 가려했다.

관객2: 좀 우문일 수도 있을 텐데, 감독님은 영화를 왜 하시는지?
신수원: 계속 고민 중인 질문을 하셨다. 뭔가 새로운 걸 찾는 것 같다. 그게 꿈이 될 수도 있고, 내가 갖지 못했던 것을 시도하고 싶은 욕망이나 모험일 수도 있겠고. 요즘 다큐 하나를 진행하고 있는데 계속 되묻는 지점이 여기다. 역으로 질문하신 분은 영화를 하고 계신다면 왜 하시는지?
관객2: 저는 창작보단 비평 쪽 공부를 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극장이라는 공간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흔히 자기만 힘들고 죽고 싶단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영화를 보면서 위안 받고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것 같다. 영화가 의식주는 아니니까 없어도 죽지는 않겠지만 삶이 퍽퍽하고 재미없을 것 같다
신수원: 저도 그냥 사는 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영화를 시작하게 된 것 같다. (웃음)
(정리: 백희원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