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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시네토크

“양가성과 인간애를 결코 잃지 않는 매력, 그것이 바로 존 포드다”

김영진 영화평론가의 선택, 존 포드의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시네토크

이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김영진 영화평론가가 추천한 작품은 존 포드의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로 지난 17일 이 영화에 대해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김영진 평론가는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에 한껏 젖어있는 관객들을 보며 ‘나도 여러분이 보시는 그대로만 존 포드를 알고 있다’는 말을 건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영화에 대한 개괄적 설명과 함께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존 포드 감독에 대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풀어 주었던 시간이었다. 재치와 유머가 한껏 묻어났던 김영진 영화평론가의 시네토크 현장을 이곳에 옮긴다.


김영진(명지대 교수, 영화평론가): 영화 잘 보셨는지 궁금하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를 어렸을 때보면서 막 울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대책 없이 센치한 영화 같다. (웃음) 감독 존 포드에 대해서 우리는 늘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우리가 대체 그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감독이라고 하지만 명쾌하게 왜 위대한지에 대해서는 대답하기 어렵다. 존 포드는 무성영화부터 시작했던 감독이고 수많은 경험을 통해 다져진 감독이기 때문에 우리가 도저히 당도할 수 없는 깊이를 가진 감독이었다. 주로 그는 ‘촬영은 사람들의 눈을 찍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그의 영화를 보면 이 말이 정말 공감된다. 존 포드 영화현장의 전설 중 하나가 우연찮게 굉장한 장면을 건진다는 것에 있다. 이를테면 진주만 습격 때 존 포드가 현장에 있었는데 그는 그걸 카메라에 담았다. 또한 <황색 리본을 한 여자>에서 기병대가 말을 타고 갈 때 내려치는 천둥번개를 그대로 화면에 담았다고 한다. 일부는 철저하게 기획된 것들도 많았겠지만 이 같은 에피소드들은 정말 기막힌 우연과 행운이라 할 수 있다.

존 포드는 전성기가 굉장히 길었고 외형상으로 거의 모든 작품을 통해 확고한 커리어를 쌓았던 감독이나 그럼에도 불가하고 그의 최고 정점을 꼽자면 1939년 후 <역마차>와 <젊은 날의 링컨>, 그리고 <모호크족의 북소리> 등을 연달아 발표할 때다. 흔히 존 포드의 영화는 패밀리 전통에 대해서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미화를 하고 있다고 읽혀지는데 사실 그것 이상으로 패밀리 공동체가 부서지는 걸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는 게 훨씬 흥미롭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를 처음 봤을 때 아버지의 죽음을 보여주는 방식이 엄청나게 충격적이었다. 아버지가 죽을 때 아들의 대사 한 마디 없이 바로 점프해서 어머니로 넘어가는데 어머니가 ‘영광을 봤다’라고 하잖나. 그런 ‘디그니티’, 가족이 ‘디그니티’를 지키며 어떻게 죽음과 대면하는가를 절실히 보여주고 있다. 가장 이상적인 부분이다.

존 포드 영화에서 말하기 힘든 부분들 중 하나는 영화에 나타나는 텐션을 어떻게 발견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많은 비평가들이 논구를 많이 했지만 존 포드의 살아생전 인터뷰에서는 그럴듯한 대답이 없었다. 존 포드는 1950년대 이후에 비평적 명성이 높아지며 유럽에서 엄청난 열풍이 불었던 감독이다. 인터뷰는 거의 코미디였다. (웃음)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인터뷰가 있는데 것도 재밌지만 서면으로 볼 수 있는 평론가들 인터뷰는 더 희극적이다. 존 포드의 곁에 있었던 사람들은 흔히 존 포드가 굉장히 권위적이었다는 말을 하곤 한다. 존 포드를 회고하며 그의 스태프들은 존 포드를 ‘고집불통 노인네’라고 말하지만 돌아보면 그와 일한 것은 정말 멋진 경험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존 포드는 인터뷰를 통해 ‘나에게 영화는 직업이고 내 인생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는 주변사람들과의 관계를 좋아했고 그것을 즐겼을 뿐이지 자신이 한 번도 위대하다거나 하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들이 존 포드 영화 복합성의 깊이를 설명해주는 한 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존 포드는 할리우드 인더스트리 내에 있었고 단 한 번도 스스로 각본을 쓰지 않았다. 당시 영화사의 사장들은 소위 ‘영화 밥 먹고 자란 사람들’이라 나름대로 영화의 도사였다고 한다. 그날 찍은 분량을 보고 맘에 들지 않으면 재촬영하고 편집기사 불러서 편집하고 했던 시스템이 있어서, 감독은 실제로 공장의 현장책임자정도에 불과했었다. 이로 인해 존 포드도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존 포드는 왜 ‘존 포드’일까. 그는 미국의 역사에 대해 굉장한 탐구를 했던 감독이다. 책도 많이 읽고 영화들을 보면 독립전쟁부터 서부시대는 물론이고 2차 세계대전까지 역사적 시기의 영화들을 많이 다루고 있다. 그의 영화에서는 현재나 미래가 늘 과거로부터 시작한다. <황야의 결투>에서도 그렇고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에서도 주인공의 회상부터 시작하지 않나. 과거를 회상하며 미래를 다짐할 때 전통은 굉장히 강력한 흡입력을 보여준다. 놀라운 건 존 포드가 그려낸 현재와 미래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낙관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나중에 이르러서 신화 자체도 스스로 해체하고 파괴하는 정도까지 발전한다. 이게 바로 존 포드 영화의 특이점이다. 많은 할리우드감독들은 존 포드만큼 미국을 사랑했고 미국적 가치를 주장했지만 그만큼 미국의 역사 이면의 양극성을 복합적으로 드러낸 감독은 없었다. 근데 이게 드라이하지 않고 센치하며 유머러스하다는 것이 흥미롭지 않나. 존 포드 영화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잔치장면이다. 그는 이걸 거의 의식적으로 보여준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에서도 밥 먹은 것을 마치 의식 치루는 것처럼 아기자기하게 보여준다. 일상에서 흥분되는 하모니의 순간들을 잡아내는 거다. 이 장면들은 언제나 순간적이다. 향연이 짧게 끝나고 그다음은 대체로 가족의 해체라든가 노동착취, 초기 자본주의의 극악함이 극에 달할 때의 상황이 전개된다. 로빈우드는 포드적 히어로는 결말에 늘 혼자 남는다는 말을 했다. 기이한 패러독스다. <분노의 포도>에서도 마지막에 어머니를 떠나는 헨리 폰다가 전혀 낙관적이지가 않게 보인다. 전통의 가치는 신화화된 시선에 뿌리를 두고 현재와 미래를 그려내지만 항상 현실의 복합적 조직들이 인물들이나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하지만 끝까지 ‘디그니티’를 잃지 않는다는 것, 그게 감동을 준다.

존 포드의 스타일은 수식이 없다. 그는 얼터너티브한 숏을 절대 쓰지 않는다. 그렇게 카메라에 담겨진 장면들은 편집실에서 그냥 붙이기만 하면 되는 거다. 물론 이것도 존 포드의 전설 중 하나다. 그는 두 번 찍으면 불 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히치콕은 치밀한 콘티를 짰지만 존 포드는 그냥 굵게 제작하는 스타일이었다. 요즘엔 왜 다들 이렇게 찍지 못할까 의문이 든다. 현존하는 존 포드 스타일의 유일한 감독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생각이 든다. 이스트우드는 여전히 호소력이 있지 않나. 결국 영화는 다 인품 그대로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존 포드를 무척 좋아하는 것 같다. 존 포드는 정말 철두철미한 감독이다. 무성영화 시절부터 영화를 찍어왔고 엄청난 커리어가 붙었기 때문에 그는 전설의 거장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다.

관객1: 클린트 이스트우드 말씀을 하실 때 공감을 했다. 감독 가치관의 옳고 그름이 영화에 투영되고 또 그것이 영화의 가치에 포함된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김영진: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치는 불필요한 것 같다. 이면을 같이 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겉으로만 입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은 많잖나. 훌륭한 예술가는 그 레벨이 아닌 것 같다. 복합성을 응시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분노의 포도>같은 경우도 보수적인 사람이 만든 영환데 요즘 이야기 같지 않나, 용산 이야기 같고 어쩜 이렇게 현재와 똑같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분노의 포도>가 존 스타인벡의 사회리얼리즘을 감상적으로 변형시켰다는 글을 보았는데 나는 이것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영화를 보면 가족이 트럭을 타고 난민촌으로 가는데 놀라운 숏이 나온다. 모든 난민들의 얼굴에 초점이 맞아있는 것이다. 그런 태도는 굉장한 리얼리스트의 태도다. 물론 정서적으로 영화에서 찡한 것 도 있었다. 극 중 아들이 엄마와 춤을 추는데 엄마는 아들의 사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들은 엄마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서로 융합되어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그 장면이 너무 감동적이다. 보수적인 엄마와 운동권 아들이 잔치에서 춤을 추는 것을 묘사하는 것 같지 않나. 이것에 흐르는 인간애라는 건 진짜 성숙한 무언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관객2: 영화 속에서 가족만이 유일하게 주인공들의 불명예를 안아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가족들은 현실 때문에 죽거나 떠난다. 양면성과 복합성을 드러내는데 이런 영화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가르쳐달라.
김영진: 본인이 말씀하셔놓고(웃음), 그대로 받아들이시면 된다. 이 영화도 충분히 산만하게 찍을 수 있는 영화인데 산만하지 않다. 비교적 스피디하게 전개되는 편인데 이런 구조에서 양가성을 나타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버지가 머리면 어머니는 가슴이라는 대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아버지가 ‘머리’라지만 아들들이 노조를 결성할 때는 갑자기 감동적으로 나오지않나. 이런 인물들의 세세한 지점을 보는 것이 정말 재밌다.


관객3: 영화에서 특이하게 노래가 많이 나오는데 어떤 부분은 뮤지컬이라 생각될 정도다. 노래의 영향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주신다면.
김영진: 나는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가 존 포드 개인의 자전적 느낌이 수용되었다 생각한다. 존 포드는 아일랜드계였고 미국에서 태어낫는데 11명의 형제들 중 막내였다. 그의 11명의 형제들 중 6명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때문에 휴에 대한 애착이 어느 정도 짙게 담겨있지 않나. 사실 존 포드의 댄스파티만 나오면 나는 이성을 잃는다. (웃음) 정말 따듯한 순간 아닌가. 이렇게 이야기하다보니 나도 존 포드를 더 많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감독의 산맥을 넘어본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거다. 여러분들과 나, 우리 모두 존 포드를 너무 익숙하게 보지 말고 제한적 영역을 뚫었던 위대한 감독이라는데 동의해야한다. 아직도 나는 존 포드를 탐구 중이다. (정리: 강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