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특별전/작은 영화의 조용한 반란

“시간을 테마로 한 영화다”

지난 15일 저녁 <에일리언 비키니> 상영 후 이 영화를 연출한 오영두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 현장을 여기에 담았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영화를 보신 분들이 웃어야 할지, 정색하고 진지하게 봐야 할지 고민하셨을 수도 있겠다. 전체적인 관객 반응은 어땠나.
오영두(영화감독): 취향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영화가 처음에는 약간 코미디로 진행되다가 뒤에는 잔인한 장면들이 많아서, 영화의 톤과 장르 자체가 바뀌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힘들어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 대체적으로는 전반부가 코미디다 보니까, 뒤에도 코미디려니 생각하는 건 비슷한 것 같다. 받아들이기 나름이어서, 웃는 포인트나 반응들, 질문들이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일본에서 개봉했을 때는 대체적으로 영건의 캐릭터에 대한 질문이 많았고,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래도 여배우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김성욱: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베토벤의 월광소나타가 쓰인다. 처음부터 이 음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건가.
오영두: 처음부터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촬영하고 나서 음악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한 친구가 월광소나타를 연주하는 것을 듣고, 영화에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그 음악을 테마로 해서 만들게 되었다.

김성욱: 전체적으로 보면 큐브릭의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바치는 게 큰 것 같다. 음악의 활용이나 이미지 뿐 아니라 근본적 주제인 시간에 대한 테마들이 있다.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는 모노리스라는 게 있어서 그 자체가 사람을 유인원에서부터 우주적 지식으로 까지 형성시킨다든가, 시간을 왔다갔다하게 한다. <에일리언 비키니>의 라스트를 장식하는 것도 어쨌든 시간의 테마인데, 시간이 그렇게 설정되어지는 모노리스같은 존재는 없었던 것 같다.
오영두: 모든 사물의 시간이 다 다르다고 생각했다. 물론 영화를 찍을 때 처음에 시간의 테마를 찍으려고 했던 건 아니고, 찍는 과정에서 생각한 것이다. 이 영화의 외계인에 대한 개념, 외계인과 지구인의 시간의 개념에 대한 차이, 각각의 사물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시간에 대한 아이디어는 영화의 마지막에 삽입된 설화에서 나온 것이다. 시간의 개념에 있어서 동양에 이렇게 훌륭한 SF적인 아이디어가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다.


김성욱:
고야의 후기작의 이미지가 이채로웠다. 전체적인 이 영화의 톤, 지옥 같은 느낌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아버지가 아들을 먹는 그 이미지는 에일리언 비키니라는 여자가 남자를 고문하고 죽이려는 순간에 삽입되어서 아버지의 모습이 등장하기도 하고 묘한 느낌들이 있었던 것 같다.
오영두: 편집을 할 때부터 그런 점들을 생각했었다. 그 그림에서 아들을 먹는 것이 시간의 신이기도 해서 두 가지를 같이 가지고 있어, 영화와 잘 연결되는 것 같다는 생각했다.

김성욱: 탑쌓기 장면이 긴 편이다. 보이는 건 몇 개 아닌데도, 보는 동안 텐션이 상당히 강했다. 관객과의 가장 직접적인 감각적 소통은 칠판을 긁을 때일 것 같은데, 재밌었던 건 그 다음에 그 소리를 좀 줄여서 정말로 귀가 좀 먹먹한 상태에서 이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런 류의 영화들에서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아이디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영두: 고문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냈었는데, 극장의 사운드까지 생각을 한다면 이게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넣게 되었다. 재미있었던 것 같다.

김성욱:
실제로 해설자가 등장하거나 자막으로 친절한 안내문이 나오기도 하고, 영화 안에서 교과서적인 해설들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 영건이라는 인물 자체도 이야기를 할 때 굉장히 해설적이다. 그런 식의 대사구성, 캐릭터 구축은 감독님의 성격에서 비롯된 건가.
오영두: 저는 전혀 그렇지 않고, 영건이 굉장히 외로운 캐릭터이다 보니, 외로운 친구가 소위 입이 트이면서 자기가 알고 있는 아주 작은 거라도 다 얘기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영화 안의 지식들은 거의 다 진짜이고, 네이버에서 확인할 수 있다.(웃음) 외로움의 문제인 것 같다. 이 영화는 시나리오가 없이 어느 정도의 플롯만 정해놓고, 배우들, 스탭들과 회의를 하면서 얼기설기 만들어나갔기 때문에, 그런 과정에서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김성욱:
전체 촬영은 며칠이 걸렸나.
오영두: 22회 정도 촬영했다. 생각보다 많은 편인데, 모든 걸 다 준비해놓고 촬영하는 게 아니라, 촬영하다가 회의하다가 했고, 대부분 저희 집에서 촬영을 했기 때문에 맘 편하고 지루하지 않게 했다.

관객1: 영화 재밌게 잘 봤다. 남자 주인공이 섹스를 안 하려고 하다가, 모니카가 입으로 해주려고 했을 때 남자가 아프다고 하면서 피를 흘리는 장면과 나중에는 남자가 섹스를 열심히 하는 부분에 대해 궁금하다.
오영두: 하모니카씨가 원래 사람이 아니다 보니 인터넷에서 보고 배운 기술이었을 테고, 그래서 무조건 빠르고 세면 좋은 게 아닐까 생각을 하고 엄청난 스피도르 하게 되고, 그게 부작용이 된 것이다. 그리고 후반부의 그 씬을 찍으면서 생각했던 것은, 인간이란 누구나 폭력성이 있는데 숨기거나 감추고, 제어하면서 살게 되는데, 영건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아버지로부터의 폭력이 있었고 그것 때문에 자기가 아버지를 죽인 이후에 폭력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상태에서 다시 폭력적인 상황을 맞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여자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되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본성이 완전히 풀려버렸다고 생각했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하모니카씨가 폭력적인 행위를 통해서 이 남자가 가지고 있던 자물쇠를 풀었다고 생각했다. 우리라 가지고 있는 폭력적인 부분들이 한번 풀어지게 되면, 더 강하게 풀어지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런 상황에서 영건이라는 캐릭터가 가장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섹스라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관객2:
제가 재밌게 봤던 부분은 싸울 때의 만화 같은 느낌이었다. <스트리트 파이터> 같은 느낌도 난다. 그리고 인물의 수염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오영두: 특별하게 어떤 영화를 패러디하지는 않았고, 액션의 컨셉을 생각할 때 태권도를 생각했었다. 어쨌든 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그런 건 아니기 때문에 이 친구만의 캐릭터가 있는 액션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패러디를 하겠다고 염두한 장면은 없었던 거 같지만, 아무래도 저희가 영화를 좋아해서 찍는 거니까 영화를 보다가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는 장면이 있을 수는 있다. 망토나 두건처럼 히어로에게 어떤 도구가 필요한데, 영건에게 특히 수염을 붙인 건, 이 친구가 요 근래에 몇 편의 영화들에 조연으로 나오면서 한국 사람으로 나오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생각하면서 산쵸라든지, 척 노리스 같은 70년대 옛날 액션 스타들의 수염을 떠올리게 되었다. 옛날 액션영화들처럼 쓰고 싶었는데, 그런 게 오마주였을 수 있겠다.

김성욱: 앞으로의 작업이 궁금하다. 이후의 작업도 이런 장르적인 작업의 연장선에 있나.
오영두: <영건 인 더 타임>이라는 영화를 9월에 촬영이 끝나서 곧 완성하게 된다. 올 초에 <에일리언 비키니>가 유바리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는데, 거기서 나온 지원금으로 찍은 영화다. 이 영화도 장르영화이고, <에일리언 비키니>의 영건이 타임머신을 찾는 탐정으로 나온다. 장르영화로서 재밌게 만들려고 했고, 너무 잔인한 장면들도 안 쓰고, 조금 더 쉽고 가볍게 볼 수 있는 타임머신 탐정영화를 하나 만들었다. 저예산으로 장르영화를 찍는다는 것이 갖는 한계가 있다. 상상한 것을 다 보여줄 수 없다는 게 가장 답답하기도 해서, 앞으로 좀 더 큰 사이즈의 장르영화를 찍으려고도 계획하고 있다.

정리 장지혜(관객 에디터) | 사진 이호규(자원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