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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

“스스로 추구하는 날카로운 어떤 걸 지키면서 SF를 계속 하고 싶다”

[시네토크] 이응일 감독의 ‘불청객’

지난 26일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의 세 번째 손님으로 <불청객>을 연출한 이응일 감독이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대한민국 SF영화의 신기원을 연 전대미문의 골방백수영화 <불청객> 상영 후 이어진 시네토크 내내 객석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오늘은 방금 보신 영화 <불청객>을 만드신 이응일 감독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다. 이 영화의 제작기간이 5년이라고 들었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오래 걸렸을 거라고 생각되는데, 먼저 이 영화의 제작과 관련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응일(영화감독): 5년 내내 작업을 한 건 아니다. 2006년에 3월에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90년대 중반 디지털캠코더가 처음 등장해서 골방백수영화가 쉽게 많이 만들어졌다. 그때 저는 방에서 같이 살던 형들, 영화동아리 친구들과 같이 워크샵을 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아이디어를 구상하게 된 것이다. 기존 백수영화들이 지루하니 스케일을 크게 가려고 우주를 넣어서 컨셉을 잡았다. 그게 봄의 일이고 시나리오를 여름에 써서 9월 말부터 촬영했다. 그 해 겨울까지 쉬운 장면들을 찍고 특수효과가 필요한 스튜디오 컷은 다음해 봄여름에 찍었다. 스튜디오 대여료가 비싸서 파란 천을 남대문에서 끊은 후 학교에 있는 춤추는 스튜디오를 빌려 저렴하게 했다. 후반작업을 들어가야 하는데, 2007년 여름에 돈이 없어서 보류가 되었다. 그래서 홍보영상사업을 2년 정도 했다. 그것까지 포함해서 5년이 된 건데 후반 작업비를 못 벌었다. 돈 한푼 없이 2009년 말이 되었다. 집에서 구박도 심해지고 ‘내가 영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1월에 후배가 호통을 치면서 돈 없어도 하라고, 찍어서 영화제에 내라고 했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떼를 써서 차용증서를 쓴 후 돈을 받아서 CG작업을 했다. 턱없이 돈이 부족한 상태일 때 선배들이 100만원 넘게 후원해주셨다. 또 그 후에 개인후원을 1천만원 받았다. 그래서 후반 작업을 1500만원으로 마친 후 부천영화제를 찾아갔다. 그때 블루스크린 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았었는데 받아주셨다. 무조건 완성하겠다고 해서 안 되는 걸 접수했다. 욕을 들으면서 상영 전날까지 작업하고 겨우 맞춰 상영하게 되었다. 결국 5년 중에 2년 반 정도는 작업과 관련이 없는 시간이었던 셈이다.

김성욱:
얄라셩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했는지. 장편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이응일: 별 고민 없이 시작했다. 처음 15분 단편 만들려고 했다. 어렵게 생각 안 했다. 개봉 하려는 생각도 전혀 없었다. 사실 영화학교 포트폴리오에 내려고 만들었다. 영화제도 전혀 예상 밖의 일들이다.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썼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누가 좋아할 거야’ 라는 생각도 못했다. 오히려 지금 세대에 문제들이 더욱 심해졌지만 영화를 만들 당시엔 이런 사회문제(젊은 사람들의 숨통을 조이고 뭔가 시급이 낮은 비 정규직 외에는 할 수 없는 시대)가 오려는 무렵이었다. 결국엔 지금 정서에 더 맞아버리게 된 거다. 뚜렷하게 의도하지 않은 게 많다.

김성욱: 원래 본편 시간이 어느 정도 인지?
이응일: 처음 편집엔 75분이 나왔는데 본편만 63분 정도 된 거다.
김성욱: 앞 부분의 인터뷰와 동영상들은 러닝타임을 보완하려는 특성도 있는데 영화를 만든 특정 세대의 느낌이 강하게 느껴진다. 지금은 없지만 예전에 비디오 틀면 나오는 ‘호환마마 보다 위험한 불법비디오’라는 문구나 또 영화시작 할 때 '디시인사이드에 바친다'는 문구 등이 독특하게 섞여서 영화의 분위기를 만드는 거 같은데 비디오세대의 특성이라고 생각되었다.
이응일: 원래 단편을 생각했다. 그런데 시나리오로는 중편이고, 편집하니 60분이 되었다. 그래도 장편치고 짧기 때문에 상영 하기 전에 회의하면서 이걸 어떻게 보완할까 하다가 로드리게스 영화에 나오는 가짜 예고편 같은 것을 집어 넣자고 해서 만든 거다. 그런데 그걸로 허전 한 거 같아서 인터뷰도 만들게 되었다.

김성욱:
저도 <진달래>를 봤다. 90년대 중반에 만든 작품인데.

이응일: 첫 단편이다.
김성욱: 놀라운 건 그때 작업 방식과 지금 영화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웃음) 15년 정도의 시차가 있지만 특이한 유사성이 있다. 그 이후로도 단편 작업을 했는지?
이응일: 단편 3작품을 했는데, 전부다 유튜브에 있다.

김성욱: 마지막에 조악한 CG로 할까 아날로그로 할까 고민하다 최종적으로는 CG로 처리했다고 들었다.
이응일: 아날로그도 상당히 들어있다. 미니어처도 3D로 할까 하다가 미니어처로 했다. 영화의 모든 방식이 짜깁기 하는 식이 많다. 두 개의 미니어처가 있는데, 하나는 국회의사당이고 두 번째가 진식이 집이다. 국회의사당은 조립모형 어린이 교육 시리즈를 사서 연결부분 다듬어 아주 저렴하게 만들었다.

김성욱: 배우들이 진지하게 연기한다(웃음). 이런 영화는 확실히 진지하게 할 필요가 있다. 다들 처음부터 출연을 생각했었는지?
이응일: 프리 프로덕션에선 배우를 쓸까 했는데, 여건이 안되고 해서 포기했다. 그래서 제가 단편영화를 생각 했을 때 아는 형들에게 출연을 부탁했다. 가볍게 승낙 했는데, 이게 점점 불어나니까 형들이 힘들어했다. 그래도 못 하겠다 안 하시고 짬짬이 시간 내서 어렵게 출연하셨다. 그분들의 희생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실로 엄청난 희생이었다.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 연기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연기 경험이 없는 분들 치고 잘 나온 것 같다.

김성욱: 영화를 보면 RGB광선으로 포인트 맨 을 공격하는 장면이 어떤 느낌으로 보면 마치 영화적 환영에 대한 비디오 세대의 역습 같은 느낌도 들었고 파워 레인져나 벡터맨 같은 느낌도 든다. 뉘앙스가 흥미롭다는 생각이 든다.
이응일: 시나리오 단계부터 했던 생각이다. RGB공격은 <우뢰매> 같은 느낌을 넣었다. 그런걸 앞으로도 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포인트맨을 이길까 생각해봤다. 포인트맨은 공간을 초월한 존재니까 육탄전은 어울리지 않고 그럴싸한 액션이 나와야 한다. 그래서 레이저를 생각 하게 되었다.



김성욱: 디시인사이드로 시작해서 에셔, 마그리트로 끝나는데 어떤 부분에 훨씬 감독으로써 많은 이끌림이 있는가?
이응일: 다 좋아한다. 디시인사이드는 보는걸 워낙 좋아해서 한 달에 2~3일을 몰입해서 본다. 디시는 창의력의 보고 인 것 같다. 특히 집단 창의성이 실현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곳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관객1: 두 가지가 궁금해졌다. 첫 번째는 평소에 SF영화를 선호하시는지 그리고 다음 영화도 SF로 하실 건지, 두 번째는 학창시절에 얄라셩에서 무슨 활동하셨는지?
이응일: SF는 어릴 때부터 늘 좋아했다. 여기 허리우드극장에서 <인디아나 존스>, <스타워즈> <E.T>를 본 기억이 난다. 그래서 앞으로도 SF를 하고 싶기는 한데 우리나라에서 만든 게 잘 안 되는 면이 있어서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세미SF를 생각하고 있다 큰 규모의 괴수물을 하고 싶기는 하지만 말이다.  얄라셩 시절에는 주로 16mm필름 등의 촬영을 했다. 그리고 그 시절엔 주로 그냥 학교 다니면서 통기타 치고 놀았다.

김성욱: 그 때 같이 영화 동아리 했던 사람들의 공통적 취향이 감독과 비슷한가?
이응일: 그렇진 않다. 제 취향이 남이 하는 걸 싫어하는 면이 있다. 영화동아리에 모인 친구들이면 주류영화가 싫어서 온다. 그래서 예술영화를 주로 본다. 저희 때는 타르코프스키가 인기였다. 그런데 그 분위기가 또 싫어서 저는 할리우드 영화를 좋아했던 것 같다.

김성욱: 학교를 졸업한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 그 기간 동안에 어떤 활동을 했는지? 
이응일: 군대 다녀와서 졸업할 무렵에 뭔가 정신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어머니 권유로 변리사 시험 준비를 했는데 워낙 적성에 안 맞아서 힘들었다. 그래서 제일 재미 있던 게 영화니까 그래서 영화를 한 게 20대 중반이다. 일단 돈이 없으니까 회사 생활을 하는 게 도움이 될 거 같아 1년 회사를 다녔다. 마지막으로 약점은 현장 경혐이 많지가 않다.


관객2: 보는 내내 웃었다. 일단 보는 내내 정말 재미있었다. 재미있기도 하고 짠한 느낌도 들었다. 신선하다고 느낀 건 식물이나 사물에 자막을 넣은 거 다. 그 상황설정이랑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이응일: 그 부분은 처음 시나리오에도 없었다. 이게 주인공들이 방을 나와서 세상을 인식하는데 세상이 뭐냐 사람의 세상이 아니고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세상 만물로 확장이 되는 효과가 있다. 굳이 말하자면 극영화에서 다큐로 넘어가는 것이다. 시장 씬 이 그 변곡점이다. 그런 것도 있고 자막은 단편인 <진달래>서 시작 했지만, 김춘수의 꽃 같은 시와 동일 한 의도를 가진 거다. 이름을 부름으로써 존재에 대한 의미가 느껴 지는 게 되는 거다. 뒷부분이 저도 참 맘에 든다.

김성욱: 이 영화에 없는 세계관은 뭔가(웃음)? 마지막으로 이런 영화는 개인에게 있어 그리고 감독에게 있어서도 생애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같은 식으로, 혹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같은 식으로 말이다. 본인에게도 그런 영화가 아니었는지? 이후 어떤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건지, 제작비 회수가 되었는지도 궁금하다. 
이응일: 제작비 회수가 투자가 후원형식이라 상환 의무는 없다. 그러나 회수가 되면 돌려 드리겠다고 했는데 극장수입이 홍보비용을 못 넘어서 돌려드리지 못했다. 현재는 다른 분 작업을 같이 도와 드리고 있다. 봄에 끝나면 이제 어린이 어드벤쳐, 방학특선대작을 만들고 싶다. 어린이들과 학부형의 주머니를 노리는 유쾌한 어린이 영화. 그 안에서 제가 추구하는 날카로운 어떤 것을 지켜가면서 하고 싶다.
김성욱: 상영 전에 하지 못했던 우주쇼는 기회가 되면 꼭 했으면 좋겠다(웃음). 부리나케 와서 이야기 나누느라 수고하셨다. 끝까지 남아 자리 지켜주신 관객 여러분께도 감사 드린다. (정리: 정태형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