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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쿠로프에게 다큐멘터리는 자신의 세계관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방법이다” - <프랑코포니아> 상영 후 세르게이 일첸코, 이지연 대담

[알렉산더 소쿠로프 특별전]


“소쿠로프에게 다큐멘터리는 자신의 세계관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방법이다”

- <프랑코포니아> 상영 후 세르게이 일첸코, 이지연 대담


이지연(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교수) 오늘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의 세르게이 일첸코 교수와 <프랑코포니아>를 비롯해 소쿠로프 감독의 창작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 한다.


세르게이 일첸코(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교수) 소쿠로프 감독의 작품과 러시아 문화에 관심을 가진 여러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기쁘다. <프랑코포니아>는 러시아에서도 여러 논쟁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소쿠로프 감독은 조화되기 어려운 요소들, 이를테면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조화롭게 연결시키며 역사와 예술, 그리고 정치를 아우르는 작품을 만든다.


관객1 1944년 6월,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하자 히틀러는 파리를 빼앗길 것 같아 파리 시내 전부를 불태우라는 지시를 내린다. 그러자 메테르니히 백작이 예술품을 다른 곳으로 빼돌린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영화 말미에는 메테르니히 백작이 1942년에 파리 주둔 사령관에서 해임됐다고 나온다. 이 정보가 역사적으로 맞는 것인지 알고 싶다.


세르게이 일첸코 바로 그것이 소쿠로프 감독의 기법 중 하나다. 지적한 대로 백작이 1942년에 해임된 건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소쿠로프는 예술성을 가미하기 위해서 역사를 바꿨다. 그런 점에서 <프랑코포니아>는 통상적인 의미의 다큐멘터리로 볼 수 없다.


이지연 이번 특별전 제목을 원래는 ‘소쿠로프의 다큐멘터리’로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프랑코포니아>는 다큐멘터리 장르에 포함시키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제목을 ‘예술에 대한 기록’으로 바꿨다.


관객2 <프랑코포니아>의 첫 장면에는 톨스토이와 체호프 같은 러시아 대문호의 사진이 등장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는 인터내셔널가가 나오기도 한다. <프랑코포니아>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일어난 일을 다룬 영화인데 이런 설정을 취한 이유가 궁금하다.



세르게이 일첸코 소쿠로프는 예술이 국제적인 성격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프랑코포니아>는 러시아 문화의 맥락 안에서 프랑스의 문화를 보여준다. 다시 말해 세계 문화 속의 러시아 문화와 러시아 문화 속의 세계 문화를 함께 보여준다. 그런 맥락에서 에르미타주 박물관이 주인공인 <러시아 방주>는 <프랑코포니아>와 짝을 이루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영화를 통해 소쿠로프는 러시아 문화는 세계 문화이고 세계 문화는 러시아 문화다, 라는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전한다.


관객3 마지막 장면에서 화면이 붉게 전환된 뒤 인터내셔널가가 나온다. 이 연출이 당시 러시아의 상황에 대한 묘사와 관련이 있는지 궁금하다.

세르게이 일첸코 마지막의 붉은색 화면은 소련 역시 2차대전의 피해자라는 점을 시사한다고 본다. 소쿠로프 감독은 문화가 일체성을 지닌다고 보는 예술가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있었던 약탈과 반달리즘은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서도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관객4 소쿠로프 감독의 영화 중에는 박물관을 탐구하는 작품이 많다. 박물관이라는 공간이 소쿠로프 감독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궁금하다.


세르게이 일첸코 소쿠로프 감독에게 박물관은 단순히 예술 작품이 보관된 곳이 아니다. 역사와 예술이 만나는, 살아 있는 장소다. 소쿠로프 감독은 이 교차점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려 한다. 그래서 <러시아 방주>, <프랑코포니아>, 그리고 엘레지 시리즈까지 모두 박물관이 주인공이다.

이지연 ‘엘레지’는 죽은 사람을 추모하며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시를 통해 가둬놓는 장르다. 다시 말해 엘레지에는 죽음과 영원이라는 모순된 두 가지 의미가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 박물관이라는 장소 역시 그렇다. 박물관에 살아서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시 말해 박물관은 죽음을 보존하는 곳이다. 그런가 하면 1900년대 초반의 러시아 종교철학자들 중에는 박물관이 문자 그대로 어느 순간 부활할 거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에게 박물관은 영생의 장소였다. 소쿠로프 감독의 가장 중요한 두 테마, 바로 엘레지와 박물관이 이렇게 하나의 의미로 결합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세르게이 일첸코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생의 엘레지>와 <모스크바 엘레지>를 상영한다. <생의 엘레지>는 비쉬넵스카야와 로스트로포비치에 대한 다큐멘터리고, <모스크바 엘레지>는 타르코프스키 감독에 관한 영화다. 이뿐 아니라 소쿠로프 감독은 예술가를 기리는 ‘엘레지 연작’을 여러 편 연출했다.

이지연 소쿠로프 감독의 작품들 중에서 극영화인데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거나 다큐멘터리인데 감독의 적극적이고 주관적인 개입이 들어간 작품을 볼 수 있다. 소쿠로프 감독에게 다큐멘터리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질문하고 싶다.


세르게이 일첸코 소쿠로프 감독에게 다큐멘터리는 자신의 세계관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기초다. 우리가 보는 장면은 배경이 되고, 이 배경을 토대로 어떤 인물, 어떤 현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그래서 소쿠로프 감독의 모든 다큐멘터리에는 자신의 목소리가 들어가 있다. 그 목소리를 통해서 감독은 관객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한다.


이지연 소쿠로프 감독의 <어머니와 아들>은 극영화인데 계속해서 사진을 정지화면으로 집어넣는다. 다큐멘터리는 정말 도큐멘트, 그러니까 문서나 기록물이 그대로 노출되는 것을 말하는데, 소쿠로프 감독은 극영화에서 이런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다큐멘터리에 반하는 장치가 방금 얘기한 목소리다. 도큐멘트가 갖고 있는 객관성에 감독의 주관적인 목소리가 결합해서 소쿠로프 감독 고유의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세르게이 일첸코 첨언하자면, 다큐멘터리는 도큐멘트, 즉 어떤 역사적인 기록을 재료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 감독의 시각이 들어간다. 관객들은 감독의 시각을 거쳐서 역사적인 사건을 보게 된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소쿠로프 감독을 비롯한 러시아 영화예술 전반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를 바란다. 다큐멘터리는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이 역사를 직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진실을 직시할 수 있다면 좀 더 정의롭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이지연 내년에는 ‘러시아 영화의 유산’을 주제로 소쿠로프 감독을 포함한 여러 러시아 감독들의 영화를 상영할 계획이다. 러시아 영화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바란다.


일시 12월 9일(일) <프랑코포니아> 상영 후

정리 송재상 프로그램팀

사진 여혜연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