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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인터뷰

“서울아트시네마는 ‘바람'이 머무는 곳”

시네마테크의 가장 든든한 친구들은 이곳을 보금자리 삼아 영화를 보는 관객들일 것이다. 1월 22일 오후 버스터 키튼의 <항해자> 상영이 끝나고, 영화를 관람한 관객 한세희 씨와 인터뷰를 나눴다. 시네마테크가 극장을 넘어선, 어떤 ‘공간’으로 다가온다는 한세희 씨. 앞으로도 쭉 그간의 기억의 잔상을 너머 새로운 기억을 이어가고 싶다던 그녀와의 짧은 데이트를 여기에 전한다.

 

장지혜(웹데일리팀): 방금 본 버스터 키튼의 <항해자>는 어땠나?

한세희(관객): 버스터 키튼 영화를 많이 보진 않았는데, 전에 봤던 영화들에선 가난한 키튼만 보다가 <항해자>에선 바로 옆집을 갈 때도 자동차를 탈 정도로, 부유층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니 좀 어색했다(웃음). 재밌기도 했지만 아찔한 장면들도 있었다.

 

지혜: 시네마테크를 다니게 된지는 얼마나 됐나?

세희: 처음 시네마테크를 찾은 건 2007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때였다. 그래서 처음엔 원래 극장에 사람이 항상 많은 줄 알았다(웃음). <글로리아>를 처음 봤는데, 영화 상영이 끝나고 배우 김혜수 씨와 최동훈 감독의 시네토크가 있었다. 영화보고 나서 다들 신나 있는 분위기에 시네토크가 이어졌었다. 지나 롤랜즈의 모습과 그녀가 길거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총을 쏘는 그런 장면들이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없던 이미지이라는 얘기를 나눴었고, 김혜수 씨는 영화의 세련된 스타일에 대해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씨네큐브 같은 극장을 다니면서 혼자 영화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다른 사람들과 다른 감상을 갖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부터 혼자 극장을 찾기 시작했던 것 같다. 예전에 극장에서 <봄날은 간다>를 보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들 ‘이게 뭐야’ 하면서 나오는데, 나는 그 영화가 너무 좋았었다. 그 때부터 혼자 영화를 보았던 것 같다.

지혜: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세희: 그냥 영화가 좋다(웃음). 특별히 서울아트시네마하면, <밀레니엄 맘보>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 대만뉴웨이브 특별전할 때 보았는데, 나중에 DVD를 빌려서 첫 장면만 백 번은 넘게 본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극장 옥상에 나와서 느꼈던 바람이 아직도 기억 남는다. 블로그에 올린 극장의 옥상 사진 제목도 ‘바람이 머무는 곳’이다(웃음). 그 영화를 개봉했을 때는 알지 못했는데, 조금 시간이 흐른 뒤, 다른 공간에서 다른 시간대에 그 영화를 만났다는 느낌, 그 순간이 오래도록 남았다. 그리고 데릭 저먼 회고전도 특별하게 남아 있다. 내러티브가 없는 영화를 본 게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볼 때 제일 겁냈던 것 중 하나는 흑백영화를 보는 거였다(웃음). 극장에서 처음 접한 흑백영화가 재작년 친구들 영화제에서 본 트뤼포의 <부드러운 살결>이었다. 마지막 장면이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 때도 영화를 보기 전에 많이 고민했었다. 그 때는 내가 만나보지 못한 어떤 것이라는 생각에 그랬던 것 같다. 총을 빵 쏘고 음악도 없이 자막이 올라가는 영화의 엔딩이 정말 충격적이었다. 강렬하게 기억된다. <집시의 시간>도 정말 신나게 봤었다.

지혜: 시네마테크를 모르는 주변의 친구들에게 추천해서 같이 영화를 보기도 하나?

세희: 많이 데리고 왔었다(웃음). 다들 재밌게 영화보고 좋아했었다. 그게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가면 좋으려면 그러기가 쉽지는 않더라. 안타깝다. 고전영화와 처음 만나 좋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면 그 이후에도 시네마테크를 계속 찾게 될 거라는 내 생각과는 좀 달랐다. 어찌되었건 서울아트시네마는 조금은 방황하는 기분으로, 혼자 영화를 보든 누군가와 함께 보든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지혜: 시네마테크가 공모제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어떤 생각이 드나?

세희: 3년 동안 드나들던 곳이니까... 서울아트시네마를 얘기할 때, 그 곳은 그냥 극장이 아니라 어떤 ‘공간’이라고 말하게 된다. 나에게 선물을 주고,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런 공간 말이다. 전에 故 유현목 감독님이, “살면서 배우지 못한 것들을 배우게 하고,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볼 수 있게끔 해주는 건 영화뿐이다”라고 말씀 하셨는데, 무지 인상 깊었다.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본 다는 것이 내게는 행복이다. 그런 나의 행복이 누군가의 힘에 의해서 자꾸 침해를 받아야 할까, 왜 이런 공간이 사라져야 할까 그런 생각이 든다.

 

지혜: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 가장 기대되는 영화는 뭔가?

세희: 제일 기대했던 건 <네이키드>였다. 친구들 영화제의 묘미는 ‘친구들의 선택’인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감독은 어떤 영화를 좋아할까 궁금하게 되는데, 박찬옥 감독님의 영화를 좋아했다. 하여 이 분이 선택하신 영화는 어떤 영화일까, 많이 궁금했고 기대했었다. 지난 번 박찬옥 감독의 시네토크가 있던 날 <네이키드>를 봤는데, 영화도 시네토크도 정말 좋았다. 영화를 보면서 할 하틀리의 <바보 헨리> 생각이 많이 났었는데, 김성욱 프로그래머님도 그렇고, 같이 본 친구도 <바보 헨리> 얘기를 하더라. 두 영화가 비슷한 면이 있다. 주인공이 떠돌면서 자기 얘기를 쉴새없이 해대는데, 찾지 못한 것 혹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얘기 같다.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박찬옥 감독님이 이 영화를 선택하신 것이 의외였다. 오히려 다른 감독님들이 선택하실 법한 영화란 생각이 들었다(웃음). 내가 생각했던 박찬옥 감독님 영화의 이미지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달까. <네이키드>가 마냥 웃기거나 가벼운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를 보고나서 신나는 느낌이 있는 반면에, 박찬옥 감독님 영화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좀 더 무겁지 않나. 그렇지만 시네토크에서 감독님이 하신 얘긴 인상 깊었다. <파주>에서 보여지는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관객들이 보통 숙연해하는 부분이 어떤 점에서는 재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얘기로 이해했다. 그런 얘기들을 듣고 보니, <네이키드>와 <파주>가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혜: 마지막으로 시네마테크에 대해 하고픈 얘기가 있다면?

세희: 1년 동안이나 나를 향수에 젖게 했던 <밀레니엄 맘보>는 지금도 극장에 들어서면 바람을 만나는 옥상으로 향하는 버릇을 가지게 했고, 김혜수 씨를 보러 갔다가 영화에 꽂혀버린 <글로리아>는 여성으로서의 살아가는 또 다른 모습을 내게 제안했었다. <집시의 시간>을 통해 영화는 오락이 아닌 예술의 일부분이라는 의심을 믿음으로 변신시켜주었다. 시네마테크는 영화를 통해 또 다른 예술을 접하는 기회를 끊임없이 내게 제공해주는 곳이다. 그런 공간이 내 기억의 잔상이 묻어나는 곳으로 끝나지 않고 앞으로 계속 새로운 기억을 이어나가줄 곳으로 되기를 바란다. (장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