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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상영작 소개

“모든 평범한 자들이여, 너희들의 죄를 사하노라”

[영화읽기] 밀로스 포먼의 <아마데우스>




밀로스 포먼의 <아마데우스>(1984)는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 전기 영화 가운데 가장 성공한 작품이다.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의 죽음에 당시 궁정 음악가였던 살리에리가 관여했다는 가정을 토대로 한 피터 셰퍼의 원작에 바탕을 둔 이 영화는 198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최우수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 무려 8개 부문을 휩쓸었고 비평적으로나 흥행적으로 대 성공을 거뒀다. 체코 출신의 포먼은 작품에 대중적인 감각을 잃지 않으면서 논쟁적 인물이나 소재를 즐겨 끌어들인 바 있고, 예술과 개인의 문제, 사회적 억압과 자유에 대한 갈등을 중심 테마로 다루는 데 <아마데우스>에서도 그러한 포먼의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살리에리 역을 맡은 F. 머레이 에이브람스를 비롯한 연기자들의 명연과 전통 그대로 보존된 포먼의 고향인 프라하에서 촬영된 완벽한 시대고증은 헤어날 수 없는 시각적 향연을 펼치고 영상과 음악의 탁월한 조화는 감동을 자아낸다. 하지만 이 영화가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은 모차르트를 우리에게 위대한 귀감을 주는 인물로만 묘사한 것이 아니라 자유분방한 오만함을 지닌, 히피스럽고 광대 같은 인물로 그려 한층 더 가깝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영화에서 모차르트는 낄낄거리는 고음의 웃음소리를 남발하고 펑크스타일의 가발을 자주 쓴다. 그의 생활공간은 지저분하며 방탕한 생활을 대변하듯 침실이 주요 무대로 등장한다. 작업실 사방엔 원본 악보들이 흩어져 있고 빈 술병들이 즐비하다. 그는 종종 황제가 정한 금기를 어기며, 시종일관 관습을 경멸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는 히피문화의 단상을 보여준 <헤어>(1979)의 연장선상에 있다. 또한 <아마데우스>는 모차르트라는 위대한 천재와 결코 그를 뛰어넘을 수 없었던 살리에리라는 인물 간의 갈등 구조를 밀도 있고 생동감 있게 다뤄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들과의 정서적 교감을 가능케 한다. 어찌 보면 이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다룬 영화가 아니라, 경쟁자 살리에리의 시기 어린 질투심에 대한 영화다.

 

영화는 인생 말년에 다다른 살리에리가 들려주는 플래시백으로 전개된다. 정신병동 같은 수용소에 감금된 살리에리는 사제에게 비밀을 털어놓는다. 그는 자신이 모차르트를 죽였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영화에서 살리에리는 정말로 모차르트의 음악을 살해한 듯 보이고 그 사실 때문에 그는 가책을 느낀다. 모차르트가 중심에 있는 듯하지만, 카메라는 모차르트를 바라보는 모차르트의 주변 인물들, 천재가 되지 못하는 범인들에게 더욱 초점을 맞춘다. 특히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모차르트의 임종 장면이다. 깊은 병환에 시달리는 모차르트는 죽은 자를 위한 레퀴엠을 살리에리에게 구술한다. 음표를 받아 적는 살리에리는 자신이 그토록 시기하고 미워한 인물이었지만 오로지 음악을 완성해야 하는 일념으로 깃펜과 악보에서 손을 떼지 못한 채 죽어가는 모차르트의 발치를 지킨다. 이 장면이 감동적인 것은 위대한 천재가 세상을 등진다는 아쉬움이 아니라 그의 음악을 몹시도 사랑했고, 그의 음악이 ‘하늘이 내려준 축복’처럼 숭고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그의 라이벌 살리에리의 처절한 고뇌가 가슴 아프게 서려 있어서다. 그래서 살리에리가 전하는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여, 내가 너희의 죄를 사하노라”라는 말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한편 이 작품은 2001년 감독 판으로 복원되어 2002년 재개봉되는 영광을 안았다. 디렉터스 컷은 1984년 버전보다 20여분이 추가되었다. 추가된 장면에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리가 갈등을 빚게 되는 보다 직접적인 동기가 포함되어 있다. 그 중 눈에 띄는 장면은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가 모차르트의 일자리를 얻기 위해 살리에리를 찾아갔을 때. 거기서 살리에리는 자신에게 몸을 허락한다면 남편에게 일자리를 주겠노라고 말하고 콘스탄체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급기야 옷을 벗는다. 이 장면은 콘스탄체가 왜 살리에리를 그토록 경멸했는지를 더 충실히 설명해주며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인다.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 만나는 버전도 세 시간 남짓의 러닝타임에 이르는 감독 판으로 이 버전은 포먼 스스로 사실상 오리지널 편집본이라고 말한 바 있다. 탄탄하고 밀도 높은 스토리에 화려한 색감의 의상, 무엇보다 음악이 드라마에 잘 조응해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기억되는 <아마데우스>는 꼭 한번 다시 보아야 할 것이다. (신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