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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

“로큰롤은 잘 놀고 즐기는 것이다”

[시네토크] 백승화 감독의 ‘반드시 크게 들을 것’

지난 27일 저녁, 음악 다큐멘터리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을 상영 후 다큐를 만든 백승화 감독과의 시네토크 시간이 마련되었다. 음악 하는 밴드들에 대한 편견을 깨고 즐기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처럼 관객과의 대화도 자유분방하게 진행됐다. 가벼운듯 하면서 진중함이 묻어난 활기 넘쳤던 그 시간의 일부를 전한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원래는 다큐멘터리를 찍을 생각이 없으셨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을 만들게 되었는지?
백승화(영화감독, 뮤지션):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개인적인 작업을 하려던 중에 인천에서 지원을 받아서 인천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었어야 했다. 그런데 루비살롱이 인천에 있었고 사장님이랑 친했다. 저희도 거기 소속이었고 해서 음악 다큐를 찍게 됐다. 꼭 개봉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했던 건 아니다. 개인 작업하기 전에 쉬면서 다음 것 준비하자 이런 생각이 컸던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인디신 얘기이지 않나. 나중에는 사명감 같은 게 생기더라. 처음에는 바람직한 교육적 다큐멘터리도 생각했었는데 루비살롱이 모텔촌에 있고 거기 계신 분들은 그리 좋은 분들이 아니시다. (좌중 웃음) 바람직하신 분들이 별로 없어서, ‘밴드에 초점을 맞추자’로 바뀌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밴드 다큐멘터리가 됐다.

허남웅: 한국에서 음악 다큐가 몇 작품이 있었는데 아쉬웠던 게 홍대 인디밴드들이 ‘음악을 하면 힘들다’는 점을 부각시킨 게 많았다. 그런데 <반드시 크게 들은 것>은 힘든 것 없이 유희, 즐겁게 사는 삶을 다룬다는 점에서 색다르게 느껴졌다.
백승화: 한국에서 나왔던 다큐멘터리나 음악 영화들이 마음이 안 들었다. 밴드에 대한 이미지가 배고프고 라면 먹고 그렇지만 꿈을 찾아서 가니까 라면 먹고 살아도 된다고 나오는 게 보기 싫었다. 힘든 것도 당연히 맞지만 굳이 힘든 것만 소재로 쓰여야 하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일부러 과하게 한 것도 사실 좀 있다. 좀 우울한 면도 많은데 영화 내에서는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서 얘기를 안 했다.

허남웅:
처음에는 루비살롱에 대한 유익한 내용을 담고 싶다고 하셨는데, 루비살롱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면서 인디밴드들의 삶을 내부인의 시선으로 보여준다는 의미도 있다. 한편으로는 타바코쥬스가 게으른데 게으름에 대한 질책은 아니지만 좀 더 열심히 해보자 이런 여러 가지 의도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큐멘터리가 갖고 있는 즉흥성 때문에 더 많은 얘기가 나오게 됐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그런 의도가 있었는지?
백승화: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을 크게 보면 갤럭시 익스프레스와 타바코쥬스 두 얘기로 나눌 수 있는데 어느 정도는 계산된 것이다.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어떤 밴드인지 알고 타바코쥬스가 어떤 밴드인지 아니까.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무대 위에서 가장 멋있는 밴드고 무대 아래에서는 멋있는 게 없다. (웃음) 무대 아래에서의 멋없는 것까지 보여줄 필요 있나 싶어서 무대 위의 모습이나 허세에 가까운 멘트들 위주로 담았다. 또 환상일 수도 있지만 록스타 하면 떠오르는, 무대 위에서 멋있는 모습과 달리 무대 아래에서는 자유분방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이고 어디에 얽매이지 않는 모습이 있지 않나. 거기에 타바코주스가 제격일 거라고 생각했다. 타바코쥬스도 큰 무대에서 공연한 장면이 있지만 굳이 영화에선 안 넣었다. (무대 아래의 모습 위주로 넣다보니) 타바코쥬스의 게으른 모습이 투영이 된 것 같다. 하다보니까 루저 얘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많이 생각하시더라.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상을 받고 잘 되고. 타바코쥬스가 해체를 했다 말았다 그런 과정들은 사실 말씀하신 다큐멘터리의 즉흥성에 기인해서 나온 얘기라고 할 수 있겠다.

허남웅: 밴드 멤버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다.
백승화: 집에서 편집할 때 몇 명이 봤다. 특히 타바코쥬스 멤버들이 저게 뭐냐 했었다. 저건 빼달라 이런 식으로. (웃음)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굳이 빼달라는 말이 없었는데 타바코쥬스는 굳이 저런 모습까지 비춰줘야 하나 하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기욱이 형은 엄청 부끄러워했다. (웃음) 그런 모습들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여진다는 게 부끄럽지 않나. 극장이나 영화제에서 상영될 때는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하고 그랬다. 빼달라고 해서 뺀 장면은 없다. 욕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너무 사람을 망쳐놓는 것 같아서 그것만 뺐다. 원래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데 영화 속에서 너무 나쁜 사람처럼 나오는 것 같아서.

허남웅:
그런 점이 내부자이기 때문에 드러낼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하는데 반면에 내부자이기 때문에 힘들었던 지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부자이기 때문에 유리했던 점 또는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백승화: 이 다큐멘터리의 가장 큰 미덕은 같은 멤버로서 촬영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외부에 계신 다른 다큐멘터리 하는 분이셨으면 담지 못했을 장면이나 감정들을 담아낼 수 있었던 게 장점이었다고 생각한다. 단점은 너무 사람들이 저를 무시해서 (웃음) 촬영할 때 찍히는 사람인데 뭔가 해야 할 게 있는데 ‘뭐하는 거냐’ 이런 식으로 촬영 내내 진지하게 말하려는 게 없었다. 카메라 갖다 대면 웃기게만 하고, 농담만 하려고 하고. 그런 것이 좋은 면도 있었지만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나 스스로 열심히 안 하게 되는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맨날 술 마시던 사람이 카메라 들고 있다고 달라지는 게 없었다. 제가 다른 분을 찍었다면 열심히 찍었을 것 같은데 이 형들은 찍다보니 게을러졌다고 할까. 카메라 놓고 술 마시기도 해서 놓친 장면도 많고. 스스로 불성실하게 한 점도 많았던 것 같다.

허남웅: 음악다큐를 만들면 외국에서는 음악 자체에만 집중하는데 한국 같은 경우는 이면과 생활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서로 다른 것 같다. 외국 음악 다큐 중에서 인상적으로 본 작품이 있다면 무엇이 있는지?
백승화: <반드시 크게 들을 것> 하면서 제일 많이 참고했던 것은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라는 페이크 다큐였다. 실존하지 않는 가짜 밴드의 투어를 따라다니면서 가짜로 만든 다큐멘터리다. 그것도 재밌게 봤고 롤링 스톤즈의 라이브를 담았던 <샤인 어 라이트>의 공연 장면도 많이 봤다. <애비로드 라이브>라고 BBC에서 라이브로 만든 공연 장면도 많이 봤었다. 음악 영화 같은 경우에는 <24시간 파티 피플>이 기억난다. 다 가짜 다큐멘터리들인데 그런 것들을 좋아했다.

관객1: 연습 장면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는데 아쉬웠다. 또 뮤지션들이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공연을 치르려면, 그만한 인풋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뭘까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이 찾았다. 타바코쥬스에겐 그것이 알코올인가 싶기도 했는데 어떤 것이 긍정적인 인풋인가?
백승화: 저희에게 연습하는 것은 일상적이고 특별한 일이 아니다. 연습 장면을 넣는 것이 자연스러울지도 있지만 별로 필요성을 못 느꼈다. 공연으로 대신하는 게 맞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풋은 사이즈가 큰 문제이다. 밴드마다의 문제이기도 하고 인디 신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밴드들이 공연할 때 에너지를 내뿜기 위해서는 그 원인이 있을 텐데 밴드마다 다르다. 오기일 수도 있고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록 스타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게 에너지로 발산되는 것 같다. 인디신 전체의 면에서 관객 분들이 인풋으로 도와주시는 건 관심으로 도와주시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말로 설명하려니 잘 모르겠는데 뮤지션이나 관객이나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관객들이 뮤지션한테 원하는 것과 뮤지션이 관객에게 원하는 것이 맞지 않은 게 많다고 생각한다. 공연 안 보시는 분들도 이유가 있을 테고. 그렇다고 뮤지션이 관객들에게 맞춰줄 수는 없지 않나.



관객2: 영화의 주제를 위해서 두 밴드가 비교돼서 편집된 것 같은데 감독님의 실제 의중은 어떠셨는지 궁금하다. 록 음악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싶으셨던 건지, 밴드 생활을 알려주고 싶으셨는지?
백승화: 교차편집으로 타바코쥬스와 갤럭시 익스프레스를 보여줬던 것은 비교하려는 생각은 아니었고 갤럭시의 일련의 생활과 공연들, 타바코쥬스의 그런 모습들을 그냥 교차로 나열해서 보여주는 식이었는데 결과가 갤럭시는 상 타고 우리는 해체하고 해서 비교하는 게 생겼다. 일단 비교할 목적은 없었고 처음 다큐멘터리를 할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가닥이 잡히면서 이런 방향으로 찍어야겠다는 생각한 것은 있다. 밴드 음악에 대한 선입견들, 밴드 생활에 대한 선입견들이 신파지 않나. 울면서 라면 먹고, 내 꿈을 위해서 라면 먹고 배고프다 그런 것이 싫어서 그런 선입견을 깨고 싶었던 게 있었다. 음악하는 친구들이 좋아하는 다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나중에는 사명감 같은 것이 생기는 바람에 인디신에 뭔가를 해서 도움 줘야겠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고. 밴드 음악이 그렇게 많은 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재미없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지루하고 어려운 것도 아니라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던 것 같다. 잘 모르시는 분들한테는 선입견을 깨고 재밌게 다가갈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동시에 음악 하는 친구들도 좋아할 만한 걸 만들고 싶었다. 음악영화 나온다고 해서 보면 이상할 때가 많았다. 재미도 없고 왜 찍었는지 모르겠고. 공연 장면을 찍는다고 해도 영화도 아니고 뭔가 이상하게 찍은 것 같고. 다큐 만들려고 했던 건 음악 하는 친구들한테도 보여주고 싶었고 대중들한테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고 그랬던 것 같다.

관객3: 감독님에게 로큰롤은 무엇인지?
백승화: 로큰롤이 무엇인지 별 생각이 없었는데 개봉 전에 인터뷰를 하거나 GV 같은 것을 하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사실 이 영화의 주제이기도 하다. 로큰롤은 장르를 명명하는 의미도 있지만 어떤 장르에서건 뮤지션들은 로크롤이라고 외치곤 한다. 잘 놀자 그런 의미인 것 같다. 서로 잘 놀고 즐기는 것이다. 사람 돈 버는 것도 잘 놀고 잘 먹으려 하는 것 아닌가. 말 붙이기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삶이 무엇이냐 이런 것처럼 답은 많이 있지만 정답은 뭔지 모르겠다. (정리: 최용혁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