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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만나다

“내 인생의 ‘봄날’ 같은 중요한 영화다”

[작가를 만나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감독

8월의 ‘작가를 만나다’에서는 ‘2011 시네바캉스 서울’ 시즌에 맞춰 특별행사로 멜로의 제왕 허진호 감독과 함께 했다. 일찌감치 매진사례를 기록, 객석을 꽉 채운 가운데 그의 초기작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가 연이어 상영되고 상영 후에는 영화를 만든 허진호 감독과 <봄날은 간다>의 주연배우인 유지태씨가 함께 자리하여 관객과의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허남웅 프로그래머의 진행 하에 사랑과 시간, 기억에 대한 열띤 이야기들이 오가며 후끈 달아올랐던 그 현장을 전한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방금 보신 영화 <봄날은 간다>는 올해로 개봉 10주년을 맞았다. 오늘의 행사를 위해 중국에서 어제 오신 허진호 감독과 주연배우인 유지태씨를 모셨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허진호(영화감독): 늦게 와서 마지막 장면만 봤는데, 옛날 생각이 났다. 저에게 중요한 영화인데 이렇게 많은 분이 와주셔서 감사하다.
유지태(배우): 제가 시네마테크를 종종 오는데, 이렇게 많은 관객이 온 걸 처음 봤다. 역시 스타감독님이 오니 그런 것 같다. 제 인생의 영화를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한다는 게 기쁘고 10년 전 영화를 같이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어 행복하다.

허남웅:
<봄날은 간다>는 사운드 엔지니어에 대한 아이디어를 먼저 생각하고 이야기를 구상한 걸로 안다. 어떻게 이 이야기를 생각하셨는지?
허진호: 요즘은 이렇게 영화를 만들지 않는데 예전엔 단편적인 생각들이나 어떤 정서들을 쌓아가면서 이야기를 만든 것 같다. 시작은 노래에서 했다. 어머니가 자주 부르시던 18번이다. 그 노래가 가지는 어떤 멜로디와 가사가 저에게 정서적인 느낌으로 왔었던 거 같다. 그래서 그걸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하다가 우연히 KBS ‘직업의 세계’에서 사운드 엔지니어 다큐멘터리를 보고 영감을 받아 시작했다.

허남웅: 여기서 나오는 상우는 순수하고 착한 영혼인데 사랑에는 미숙한 인물이다. 그 인물을 봤을 때 어떠한 느낌에서 출연을 결심했는지?
유지태: <봄날은 간다>는 참 좋은 영화가 될 거라 생각해서 출연했다. 그 당시에는 최고의 감독님이셨기 때문에 (웃음) 아 물론 지금도 최고다. 그리고 배우로써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우를 보면 저의 모습이 영화 안에 담겨 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다시 찍는다면 다시 표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허남웅: 감독님은 유지태란 배우의 어디서 상우를 봤는지, 처음부터 염두에 두신 건지?
허진호: 처음부터는 아니다. 그 당시 배우를 먼저 생각하진 않았다. 전에 찍은 영화도 그렇고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 어떤 배우랑 할까 고민했다. 그리고 원래 영화가 연상연하구조가 아니고 같은 나이의 커플이었는데, 갑자기 연상연하로 가면 어떨까 그런 걸 생각하면서 지태를 생각했다. 제 기억에 처음 만났는데 한 시간에 두 마디 했던 것 같다.

허남웅: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 배우는 감정을 드러내는데 미세한 연기를 하고 대사도 중의적인 느낌이 많은데 연기 하면서 어떠한 식으로 상우를 준비해갔는지 궁금하다.
유지태: 감독님이랑 카페에서 말없던 시간이 세 달이 되니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겠더라. 감독님의 연출스타일이 배우를 지켜보는 방식을 취한다. ‘저 사람은 뭘 가지고 있을까’ ‘저 사람은 컷을 부르지 않으면 무슨 반응을 할까?’ ‘저 사람의 실제성격은 무엇일까?’ 이런 걸 많이 탐구하신다. 그래서 때로는 컷을 안 해서 굉장히 당황하고 불쾌한 의사를 표현하는 배우들도 있었다. 그만큼 예민하고 섬세한 분이다. 그래서 호흡 맞추려고 굉장히 노력했다. 그런 방식이 재미있었다.

허남웅: 유지태 배우는 대사도 만들었다고 하는데, 사실은 좋은 영화는 인상적인 대사들이 많이 있다. 영화 개봉 후에 광고에도 대사가 많이 쓰였는데 특히 기억나는 대사가 있다면?
유지태: <봄날은 간다>의 작업방식은 기존의 영화제작방식과 차이가 있었다. 기억을 수놓는 듯한 작업이다. 만든다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서 순간, 기억 그리고 공간을 담는다. 마치 다큐멘터리 형태 같다. 그래서 제가 기억하기로는 대사들이 대체적으로 수정되고 바뀌었다. 리허설을 통해 만들어졌다. 근데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이건 대본에 있던 대사다. 나머지는 리허설 하면서 감독님, PD, 스태프, 배우의 머릿속에서 나온 대사들이다.

허남웅: 이 영화가 재미있는 지점은 인물의 감정들을 사운드로 자연의 소리로 표현을 한다. 그런 아이디어는 사운드 엔지니어라는 출발에서 이미 생각을 하신 건지 아니면 헌팅을 다니면서 이렇게 하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게 된 건지?
허진호: 헌팅 하면서 생각했다. 파도소리를 헤어질 때 넣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헤어질 때는 쓸쓸한 바닷가가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허남웅: 개인적으로 유지태 배우의 연기관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은수네 집 침대에서 자다가 떨어지는 장면이다. 그때 머리는 정말로 자다가 일어난 사람 같았다. 그럴 싸 한 게 아니라 그래야 한다는 느낌이 보이는데.
유지태: 감독님을 만나면서 리얼리티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배우가 얼마나 극에 빠져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했다. 머리 눌린 것은 순간 만들었다. 연기는 만드는 것 같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면 인생이 괴롭다. 어쨌든 영화 속의 리얼리티 그리고 배우가 얼마만큼 영화에 몰입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관객: 영화 중간에 보면 은수랑 상우가 헌팅 하다가 무덤을 보면서 은수가 저기 둘이 같이 묻히자는데 대답을 안 했다. 그 장면은 어떤 계기에서 넣으신 장면인지 미리 염두에 두고 찍은 건지 아니면 즉흥인지 궁금하다.
허진호: 그때 그 장면은 꼭 필요한 장면이라 생각했다. 죽어서도 같이 묻히는 약속. <봄날은 간다>에 나오는 가사에서도 약속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그때 배우들의 작품해석이 달랐다. 은수랑 상우 중 누가 먼저 좋아한 건지에 대한 신경전이 있었다. 그래서 제가 둘이 정말 좋아하는 거다. 누가 먼저 좋아하는 게 뭐가 중요하냐고 했다. 그 당시에 행복한 순간 이런 걸 생각했는데 그 대답을 왜 안 했는지는 지태씨에게 듣고 싶다.
유지태: 갑자기 당황스럽다. 신경전이라고 표현하셨는데 그런 것 보다 이제 영화를 어디까지 생각해야 하는 건지에 대해 고민을 했었다. 영화 속 주인공 남녀가 사랑을 하면 진짜 사랑을 해야 하는 건가? 그래서 분위기를 조장하는 영화들도 있다. 씬을 잘 만들기 위해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혼란스러웠다. 무덤 씬 같은 경우는 기억을 하는데 차 타고 가다가 차를 세워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장면이다. 즉흥적이긴 하지만 감독님이 생각을 반복했던 그림이 있어서 헌팅 하다가 저 장면이 내가 찍고자 하는 장면이다 해서 찍은 것이다.


허남웅: 마지막으로 소감과 앞으로 계획을 듣고 이 자리를 마치겠다.
유지태: <봄날은 간다>를 여러분들과 같이 보고 이야기해서 너무 좋았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반복되어서 소설 중에 『사랑을 묻다』라는 소설이 기억난다. 사람이 싸울 수 없는 것은 자부심이라더라. 세상에는 많은 가치관도 있고 트렌드를 따르는 대중도 있는데 이렇게 영화를 고집하고 이런 작품을 만들어서 저는 자부심을 느낀다. 앞으로도 이런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허진호: <봄날은 간다>가 언제까지 기억될지 생각을 한다. 영화가 슬픈데 그런 기억들이 어떤 평온함을 주는 것 같다. 그런 기억과 평온을 주는 영화로 계속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정리|정태형(관객에디터) 사진|정은정(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