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울아트시네마 소식

“거대도시 서울에 시네마테크 없는 건 수치”

고전영화 전용관 지키기 나선 박찬욱 감독



“비판은 삼가고, 사정하고, 협조하고, 부탁하려고요. 성명서 내고 항의하는 것은 긍정적인 시도를 다 해보고 나서 정말 벽에 부딪쳤을 때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해요.”

지난 16일 서울 낙원상가 4층 서울아트시네마(옛 허리우드 극장)에서 만난 박찬욱 감독은 마치 로비스트로 변신한 것 같았다. 지난해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퇴출 사태 당시, 영화감독 100명의 성명서 발표를 주도하며 통렬하게 정부를 비판하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박 감독은 14일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주최한 ‘영화인 신년인사회’에도 얼굴을 내비쳤다. “(정부 인사들과) 최대한 자주 만나겠다”는 의도가 담긴 행보다.

자신의 영화만이 아니라,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 제작으로도 바쁜 그가, 없는 시간을 쪼개 열의를 바치고 있는 일은 ‘서울아트시네마(시네마테크 서울) 지키기’다. 문화부와 영진위가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에 이어 고전영화 전용관인 시네마테크마저도 공모제로 전환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감독은 “서울아트시네마를 운영해온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오랜 세월 열악한 상황 속에서 좋은 영화를 모으고 소개하느라 고생해 온 풀뿌리 단체”라며 “그동안의 공을 무시하고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가장 좋은 조건과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가장 우수한 단체라는 점을 설득할 계획”이라며, 1968년 프랑스 정부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설립자인 앙리 랑글루아를 쫓아내려다 영화인, 관객들의 저항을 받고 철회했던 사례를 거론했다. 또 그는 “굳이 공모제를 강행한다 해도 1년 단위로 하는 건 안 된다”며 “외국 유명감독을 초대하고 필름을 빌려오려면 최소한 1~2년을 내다보고 계획을 짜야 하는데 1년 뒤 떨어질지도 모르는 단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공모제 말고도 서울아트시네마 앞에 놓인 벽이 또 하나 있다. 오는 3월 말이면 지금 있는 건물의 계약이 끝난다. 2005년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옮겨온 데 이어 두 번째로 이삿짐을 싸야 할 판이다. 프랑스, 독일,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의 시네마테크는 물론이고, 시네마테크 부산도 전용관을 갖추고 있다.

이에 박 감독을 비롯해, 봉준호·최동훈·김지운·류승완·정윤철·윤제균·이경미 감독 등은 15일 ‘서울에 시네마테크전용관을 설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추진위 위원장은 이명세 감독이 맡았다. 박 감독은 서울아트시네마를 지지하는 외곽 모임인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대표로서 추진위의 중추 구실을 하고 있다.

그는 “좋은 영화를 디브이디나 티브이가 아니라 커다란 스크린에서 필름으로 보는 것,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고, 토론하는 것은 가장 소중한 영화적 경험”이라며 “거대도시 서울에 시네마테크 하나 없다는 것은 수치”라고 했다. (이재성, 김경호 한겨레 기자)


[출처] 한겨레신문 2010년 1월 18일자


* 이 글은 한겨레신문 1월 18일자에 게재된 기사를 발췌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