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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시네토크

“가장 프리츠 랑다운 영화다”

평론가 크리스 후지와라의 선택, <이유 없는 의심> 비평 강연

지난 2월 26일, 시네필의 선택 섹션에 마련된 프리츠 랑의 <이유 없는 의심> 상영 후 이 영화를 선택한 미국의 영화평론가인 크리스 후지와라의 비평강연이 있었다. 크리스 후지와라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프리츠 랑의 팬이며, 특히 <이유 없는 의심>을 그의 생애 베스트 10 편의 영화 중 한 편으로 꼽기도 했던 인물이다. 두 시간 가깝게 진행된 이날 강연은 프리츠 랑의 영화가 왜 위대한지, <이유 없는 의심>은 어떤 의미를 가진 영화인지를 같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날의 강연 일부분을 여기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시네필의 선택이라는 섹션을 마련, 두 분의 평론가를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전에 국내 평론가로 정성일 씨를 모시고 두 차례 강연을 들은 바 있고 거의 마지막 행사로 이번에는 미국의 영화평론가이며, 자크 투르뇌르, 오토 프레민저, 제리 루이스 등에 대한 책을 쓴 크리스 후지와라씨를 모셨다. 방금 보신 랑의 <이유 없는 의심>이란 작품에 대한 후지와라 씨의 강연을 먼저 듣고 관객 여러분과도 다채로운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크리스 후지와라(영화평론가): <이유없는 의심>은 궁극적으로 프리츠 랑 감독다운 영화다. 영화의 정의를 내리는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논리적이며 공포감을 조성한다. 특히 이 영화는 완벽한 스토리를 보여준다. 영화는 증거를 조작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이는 랑이 자신의 영화를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먼저 내러티브에 대해 말해야 할 것 같다. 이 영화의 내러티브는 너무나 완벽하기 때문에 작가에 관한 질문을 저절로 던지게 한다. 이 작품은 랑이 할리우드에서 마지막으로 만든 영화이다. 저예산 영화이지만 여전히 상업영화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랑이 고른 것이 아니었다. 회사에서 만들라고 한 상업적인 영화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랑에 대해 알고 있는 것, 랑이 가지고 있는 것을 적합하게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놀랄 수밖에 없다. 랑은 미국에 건너가기 전 영화에 대한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랑은 독일에서 영광을 누리던 시절에는 UFA(독일의 영화사)에서 폭군으로 알려져 있었다. 배우도 그렇고 영화의 세부 사항을 완전히 통제했었다. 유명한 대작을 만들기도 했었고. 그런데 미국에서는 독재자 감독을 인정하지 않아서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의 리듬과 연기 등을 조절했다.

<이유 없는 의심>을 랑의 전제 작품 맥락 속에서 얘기하자면, 랑이 미국으로 건너와 처음 만든 영화인 1936년 작 <퓨리(fury)>와 비슷하다. 두 영화 모두 살인을 다루고 있고, 외모로는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살인자로 등장한다. 관객은 이 살인자가 너무 평범하기 때문에 곧 잊어버린다. 그래서 나중에 진실이 밝혀지면 더 충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살인을 했다니!’라고 말이다. <퓨리>에 등장하는 스물 두 명의 용의자들을 묶어서 모두 ‘존 도우(John Doe)’라고 부르는 것이 이런 점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 작품에서 다나 앤드류스가 맡은 캐럿의 외모는 지극히 평범하다. 그렇기 때문에 ‘평범’이란 상징성까지 갖는다. 이를 통해 영화는 우리가 ‘평범’이란 것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에 비판을 가한다. 역시 랑이 1956년에 만든 <도시가 잠든 사이에(While the city sleeps)>에서 다나 앤드류스는 언론인으로 나오는데 여기에서도 평범하고 특징 없는 외모에 깔끔한 모습을 하고 있다. 랑은 이런 이미지를 역이용해서 우리가 너무나 끔찍하게 여기는 것을 못 알아차리게 한다. 당시 미국관객들이 다나 앤드류스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한 걸 모르게 만드는 것이다.

영화의 초반부를 생각해보자. 스펜서가 결백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자고 하자 캐럿은 누구에게 씌우냐고 묻는다. 그러자 스펜서는 ‘바로 자네’라고 답한다. 이 장면은 영화의 캐스팅 단계와 같다. ‘살인자 역을 누구에게 맡기지?’ ‘바로 자네’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는 캐럿을 선택한 이유를 나열하는데 그 이유들이란 것이 용의자와 비슷한 차를 탄다거나 회색 코트를 입는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건 이유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특징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누구나 범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나 앤드류스가 실제 살인자임에도 그가 범인에 적임자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불분명한 형체를 가진 사람이 살인자가 된다. 또한 이 영화는 두 가지 차원에서 진행이 된다. 첫 번째는 스펜서와 캐럿의 내러티브다. 이 영화의 재판 장면은 가장 지루한 장면이지만 이는 단점이 아니라 영화에 꼭 필요한 장면이다. 기계적으로 스펜서와 캐럿의 작전이 진행되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뒤집어 완전히 반대로 보여주는 것이 스펜서와 캐럿이 뒤에서 증거를 만들어내는 장면이다. 랑은 증거를 조작하고, 사람들을 속이는 작업에 관객을 참여시켜 관객이 스릴과 힘을 느끼도록 했다. 그래서 지루한 재판 장면과 이 장면이 대조를 만든다.



이제 직접 영상 클립을 보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보시는 장면은 스펜서와 캐럿이 시체가 발견된 곳으로 가서 캐럿의 라이터를 놓고 오는 장면이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시점의 상대적인 높이를 이용한다는 거다. 사진을 찍는 장면에서는 앵글을 낮게 해서 스펜서가 수상해 보이도록 한다. 랑이 후에 직접 언급했듯이, 관객들로 하여금 혹시 스펜서가 범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반면 스펜서가 사진을 찍는 순간에는 오히려 높은 각도에서 롱숏으로 두 사람을 보여준다. 이는 관객이 스펜서에게 공감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스펜서의 뒤에서, 위에서 찍은 것이다. 그리고 사진을 찍을 때 신문의 날짜를 잡히게 할 수 있느냐란 대화를 하지만 카메라는 오히려 더 멀어진다. 랑은 여기서 ‘가깝다, 멀다’에 대한 유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야외에서 촬영한 유일한 씬이다. 이 영화는 랑에게도 후기 영화이지만 고전 할리우드 시스템의 후기에 찍은 작품이기도 하다. RKO 부도 직전에 찍은 영화인데, 이 영화는 한 시대가 죽어가는 것을 보여준다. 할리우드의 한 장르가, 또 그 장르의 스타들이 끝났고 이미 구시대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장면을 야외에서 촬영했다는 것은 랑 자신도 할리우드의 폐쇄된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고, 사회가 바뀌고, 이제는 실제 사회가 이미 할리우드로 침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야외에서 촬영한 장면이라는 것은 할리우드 시스템 내에 다른 요소들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여기서 사용한 하이앵글은 이 장면에 캐릭터 외의 다른 요소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를테면 신들이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증거를 조작하는 스펜서와 캐럿의 행동이 도를 넘어섰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의 기준에서뿐만이 아니라 신의 기준에서도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처벌을 받게 될 것이란 걸 암시한다. 나는 이 장면이 이 영화가 비극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인간과 신 사이의 갈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과 신 사이의 갈등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스 비극에서는 마스크를 사용했었다. 즉, 결백의 가면과 유죄의 가면이 있는 것이다. 결백이나 유죄냐 라는 것의 외적인 모습이 바뀔 수 있고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이 영화의 핵심은 결백과 유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정말 캐럿이 유죄인지 질문을 던진 후 여기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준다. 이것이 이 영화의 드라마를 조성한다.



김성욱: 프리츠 랑의 영화에 대해 스콜세지가 2000년에 했던 말이 기억에 난다. ‘랑의 후기작들을 보면 실험실의 작업을 지켜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시시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랑이 위대한 이유는 영화가 작동하는 방식과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볼 수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크리스 후지와라 씨가 얘기한 것도 영화가 작동하는 방식이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준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이 있다면 부탁한다.

크리스 후지와라: 내가 흥미롭게 느끼는 건 고전적인 것도 현대적인 것도 아닌 그 경계에 선 제 3의 영화들이다. <이유 없는 의심>도 경계에 선 영화의 훌륭한 예이다. 이런 영화를 통해서 다른 영화들이 영향을 받기도 하는데 자크 리베트의 영화도 랑의 영향을 받았다. 그 누구도 제 2의 랑이 될 수는 없겠지만 많은 감독들이 그의 영향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리: 김보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