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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Review] 존 부어맨의 <테일러 오브 파나마>


<테일러 오브 파나마>는 작가 존 르 카레와 감독 존 부어맨의 만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실제 베를린에 파견되어 영국 스파이로 활동하기도 했던 존 르 카레는 동서 냉전기의 독일을 무대로 이중간첩을 소재로 한 세 번째 소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가 크나큰 성공을 거두며 스파이 소설의 대가로 군림해왔다. 그런 그가 제작은 물론 시나리오 집필에도 참여한 작품이 바로 <테일러 오브 파나마>다. 영화의 핵심은 거짓 정보 때문에 벌어지는 파나마의 가상의 정치현실이다.

영국 정부는 전략적 요충지인 파나마 운하의 운영권이 제3국으로 넘어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로 영국 정보부 M16 소속 앤디 오스나드(피어스 브로스넌)를 파나마로 파견한다. 앤디는 재단사 해리 펜델(제프리 러시)의 비밀스런 과거를 약점 삼아 정보원으로 일하게 만든다. 해리는 파나마의 정, 관계 요인들을 대상으로 고급 양복점을 운영하고 있는 데다 그의 미국인 부인 루이사(제이미 리 커티스)는 파나마 운하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다. 운하의 운영권을 중국으로 넘기려 한다는 해리의 거짓 정보는 급기야 미국이 군사작전까지 동원하게 만든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픽션처럼 느껴지지만, 미국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전을 시작하며 주장했던 ‘이라크 내 대량살상무기’가 지난 2004년 최종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혀졌던 일을 떠올려보면 될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내용도 그렇듯 존 르 카레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면 미국의 대외정책을 풍자하는 블랙코미디적인 성격이 강하다. 한창 제임스 본드로 활동하고 있던 피어스 브로스넌을 <007 언리미티드>(1999)와 <007 어나더데이>(2002) 사이에서 비열한 바람둥이 스파이로 캐스팅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언 플레밍의 반대말이 존 르 카레라면 피어스 브로스넌은 역시 똑같은 M16 요원으로 둘 모두를 오간다. 리 마빈의 매력이 빛나는 독특한 필름 누아르 걸작 <포인트 블랭크>(1967), 시종일관 긴장을 놓치지 않는 호러 어드벤처 <서바이벌 게임>(1972), 기이한 컬트 SF <자도즈>(1973) 등을 만들며 장르영화에 대한 과감한 시도와 재해석을 보여줬던 존 부어맨으로서는 바로 첩보영화 장르에 대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개봉 당시 <사이트 앤 사운드>의 마크 싱커는 “들쑥날쑥하지만 가끔은 뛰어난 작가인 존 르 카레와 마찬가지로 들쑥날쑥하지만 훨씬 무원칙적으로 뛰어난 감독 존 부어맨의 만남”이라고 썼다. 유머와 풍자라는 점에서 <테일러 오브 파나마>는 단점도, 장점도 많은 그들로부터 장점이 더욱 큰 교집합을 이룬 의외의 첩보영화 수작이다. 더불어 해리는 2차대전 첩보영화 <카사블랑카>(1942)를 빗대 파나마를 찾은 앤디에게 “영웅들이 없는 카사블랑카가 바로 파나마”라고 말한다.

by 주성철 씨네21 취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