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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Review]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클린>


한 번 더럽혀진 삶이 깨끗해 질 수 있을까. 드라이 클리닝도, 세탁기도 해 낼 수 없는 삶의 빨래, 그 위로 얼룩진 채 굳어버린 오물들. 에밀리(장만옥)의 인생 역시 세탁 불능의 단계에 진입한 지 오래다. 1980년대를 호령하는 록스타였지만 지금은 로커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절망적인 단계에 이른 남편과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마약을 통해 다른 세계로의 도피 행각을 이어가는 에밀리. 그러던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악다구니를 내지르며 싸우던 남편은 마약 과다 복용으로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고 자신 역시 마약 복용혐의로 복역하는 신세가 된다. 6개월 후 출소해 유일한 피붙이인 아들을 찾지만 시부모의 눈에 며느리는 여전히 못 미덥고 위험한, 시한폭탄 같은 존재다. 마약과 절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마침내 얼룩진 삶을 탈탈 털고 깨끗해졌음을 증명시키기 위해, 그래서 아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기 위해 <클린>은 '모성'이라는 이름의 비누를 에밀리의 한 손에,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마이크를 쥐어준다. '록시뮤직'의 브라이언 이노가 창조해낸 <클린>의 세계는 장만옥이 영화 말미에 부르는 노래 'Down in the Light'에 이르러 감정의 최고점을 향해 달려간다. 시아버지 역의 닉 놀테가 건네는 "사람은 변한다, 필요하다면"이라는 현실적인 위로와 함께.


결국 <클린>은 두 개의 이름으로 설명될 수 있는 영화다. 장만옥, 그리고 올리비에 아사야스. 허우 샤오시엔을 비롯해 아시아 영화에 대한 오랜 추종과 깊은 애정을 가져온 프랑스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자신의 연출 데뷔작의 주인공으로 장만옥을 불러들였다. 한물간 프랑스 감독이 <동방삼협>(1992)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였던 홍콩 여배우를 캐스팅해 뱀파이어 영화를 리메이크하려고 하지만 결국 무산되고 만다는 해프닝을 통해 프랑스 영화판을 풍자한 '영화에 대한 영화' <이마베프>(1996)를 통해 만난 이후, 두 사람은 1998년 결혼했지만 그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고 <클린>을 찍을 당시에는 이미 더 이상 부부가 아니었다. 하지만 연인에서 동료로 돌아간 아사야스의 지휘에 장만옥은 근사한 독창을 선보였고 2004년 칸 영화제는 '여우주연상'이라는 힘찬 박수를 보냈다. <아비정전>(1990)에서 <첨밀밀>(1996)을 거쳐 <화양연화>(2000)로 이어지며 점점 연기의 폭과 깊이를 늘려갔던 장만옥에게 <클린>은 장국영도, 여명도, 양조위도 없는 세상에서 홀로 싸워낸 기록이다. 냉대와 외면 속에 닥치는 대로 허드렛일을 하며 마약의 유혹과도 싸워야 하는 에밀리의 현실은 <첨밀밀>의 건강한 억척스러움으로 덤비기엔 너무 고단했고, 그 지속적 긴장감을 유지하기란 <화양연화>의 치파오같은 코스튬의 도움 없이는 쉽지 않았을 것이 분명한데 말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위자료를 획득한 이후 지난 몇 년 간 장만옥을 모습을 스크린에서 볼 기회가 없었다. 새로운 연인과의 이별과 그 이유에 대한 비보와 루머, 지나치게 마른 모습이 찍힌 몇몇 사진들이 다 일 뿐이다. 에밀리가 아들과의 재회를 위해 편지의 끝에 절박하게 써 내려간 말 "I'm Clean……." 처럼 장만옥 역시 배우라는 이름 위에 7년 간 쌓인 먼지를 깨끗하게 털어내고 어서 돌아오기를.

(by 백은하_10 아시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