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람 요새의 전설>은 파라자노프의 필모그래피에서 특별한 위치를 점하는 작품이다. 형식 실험이 정점에 달한 <석류의 빛깔>(1968) 이후, 파라자노프가 다시 영화를 만들기까지는 1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세월동안 파라자노프는 억울한 누명을 덮어쓰고 소비에트 당국에 의해 투옥되는 고초를 겪었다. 1978년 수용소에서 풀려난 파라자노프는 1984년부터 <수람 요새의 전설> 제작에 착수했다.

영화를 향한 파라자노프의 의지는 10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는 <석류의 빛깔>과 <수람 요새의 전설>의 형식적 유사성에서 짐작할 수 있다. <석류의 빛깔>에서 파라자노프는 아르메니아 지방 시인의 내면을 영화로 옮기면서 사각형의 프레임을 흰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듯 <석류의 빛깔>을 만들었다. 이러한 회화적, 또는 연극적인 연출은 <수람 요새의 전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평면적으로 구성된 미장센, 프레임 밖으로 벗어나지 않는 사물들, 관객을 정면으로 쳐다보는 인물 등은 한 편의 연극 혹은 한 폭의 회화를 보는 듯하다.

이러한 형식적 유사성 외에, 그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소수민족의 전통문화가 있다. 이번에 상영하는 파라자노프의 세 편의 영화는 모두 소비에트 연방의 소수 지방 민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잊혀진 선현들의 그림자>의 우크라이나 지방의 민담, <석류의 빛깔>의 아르메니아 시인의 내면, 그루지아의 전설을 담은 <수람 요새의 전설>이 그것이다.

파라자노프의 영화들은 모두 화려한 색채의 전통 의상, 소품, 무용, 음악, 신화, 종교, 민담, 전설이 어우러져 시청각적인 황홀경을 이루어낸다. 따라서 그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한 편의 영화 관람을 넘어서 소비에트 지방민족들의 삶을 시청각적으로 체험하는 느낌을 준다. 이는 전통문화에 대한 파라자노프의 긍지에서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획일적으로 강요받았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그의 우회적인 비판이기도 할 것이다.

글 송은경 관객 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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