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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Interview

[Interview] 시네마테크를 찾는 벨기에 친구를 만나다 - "이곳에 오면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볼 때면 가끔 그 사연이 궁금해지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중 하나가 바로 외국인들일 텐데, 대체 어디서 어떻게 정보를 얻고 오는지, 타국의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다양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궁금증 해소를 위한 차원이기도 하고 시네마테크에 대한 고유한 의미를 듣기 위해 벨기에에서 온 그레고리 림펜스 씨를 인터뷰했다. 그레고리 림펜스 씨는 2003년 무렵 친구와 함께 여행을 왔던 한국에 푹 빠졌고, 이후 국내 법률사무소에서 2년간 근무하다 2008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열린책들 출판사의 전문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해외의 좋은 책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일에 사명을 갖고 문화산업의 다양화를 위해 애쓰는 그레고리 림펜스 씨는 여기, 한국의 시네마테크와도 그 인연이 닿아 있었다.





한국의 시네마테크는 어떻게 알고 오게 되었나. 처음 한국의 시네마테크를 접했을 때의 인상도 궁금하다. 벨기에의 문화와는 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은데, 그 이후로도 이 공간을 계속 찾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시네마테크에 처음 오게 된 건 2005년 무렵이다. 당시 다니던 법률 사무소와 가까워서 자주 왔었는데 원래 벨기에에서도 시네마테크를 잘 다녔었다. 그래서 한국에 오자마자 시네마테크가 어디에 있는지 웹 사이트를 통해 찾았고, 극장의 역사에 대해서는 차차 알게 됐다. 한국의 시네마테크에는 처음부터 관심이 있던 터라, 회사와 가까운 곳에 있어서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시네마테크에는 영화가 좋아서 보러 오는 거다. 또 가면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도 있다. 주말 오후에 오는 사람들, 평일에 오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도 있고, 유명하지 않은 프랑스 감독에 대해 관심을 갖는 한국 사람들이 궁금했다.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벨기에 출신 감독 자코 반 도마엘의 영화인 <토토의 천국>을 보고 싶은데 일정이 잘 맞지 않아서 아쉽다.


벨기에 브뤼셀에는 유서 깊은 왕립 시네마테크가 있다고 들었다. 그곳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또 사람들은 어떻게 이용을 하는지 관람 문화도 궁금하다.

벨기에는 왕국이라 시네마테크가 왕립으로 운영된다. 관람료가 한국 돈으로 1000원 ~2000원 정도로 굉장히 저렴하다. 너무 비용이 저렴해서 따뜻한 곳에서 몸을 피하려는 노숙인들이 많이 오기도 한다. 가끔 무성영화를 상영할 때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도 있고 정말 좋은 공간이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영화들을 많이 상영하고 컬렉션도 정말 많다. 시간만 있으면 좋은 영화들을 계속해서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관람료가 싸서 비용은 부담이 안 되는데 좋은 영화들을 낮에 많이 상영하니까, 문제는 늘 시간인 거다.


브뤼셀의 시네마테크와 한국의 시네마테크를 둘 다 이용해봤는데, 어떤 공통된 문화나 차이점이 있나.

브뤼셀의 시네마테크는 벨기에의 유명한 건축가가 만든 건물에 있다. 하지만 한국의 시네마테크가 있는 이 건물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프로그램은 많이 비슷한 것 같다. 에릭 로메르 회고전, 샘 페킨파 특별전 등 비슷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지만 벨기에의 시네마테크도 예산 문제가 있어서 그 공간을 유지하려면 매년 파이낸싱을 해야 한다. 왕립이긴 하지만 세금으로는 세원이 부족해서 항상 예산을 줄이게 되는 것이다. 영화가 갖고 있는 컬렉션은 커지고 있어서, 그 규모에 맞게 유지를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있다. 가끔 갈라 행사 같은 것을 해서 돈을 받기도 하는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건 벨기에만의 특징이기도 한데, 벨기에는 중앙 정부와 지역 정부가 따로 있고 또 문화적으로는 각각의 언어권에 따라야 한다. 플랑드르 언어권과 독일어권, 불어권이 따로 있는데, 그 지역마다 예산이 다르게 배정된다. 문제는 브뤼셀에 있는 시네마테크가 소속된 언어권이 없다는 거다. 그런 문제로 예산 배정이 잘 안 되고 있다.


벨기에와 운영되는 프로그램은 비슷하다고 했는데, 혹시 한국 시네마테크에서 보고 알게 된 영화나 감독이 있나. 인상 깊게 봤던 영화가 있다면.

몰랐던 감독인데 데릭 저먼을 2008년 여름에 했던 특별전에서 영화를 보고 알게 됐던 기억이 난다. 감독이 에이즈로 죽었는데 죽기 전에 시력을 잃었더라. 시력을 잃고 나서 만든 영화가 <블루>인데 한 시간 반 정도 블루 스크린에 소리만 나오는 작품이다. 이미지가 없는 영화라서 영화가 아니라는 논쟁도 있었던 작품이다. 이 감독의 다른 영화들도 봤는데 괜찮더라. 또 할 하틀리 감독 작품도 여기서 보고 좋아하게 됐다.


한국 관객들과 같이 영화를 관람할 때 반응하는 지점에서 약간의 시차를 느낄 것 같다. 문화의 차이일 수도 있고 번역의 미묘함 때문일 수도 있을 텐데, 그런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 편인가.

물론 반응하는 지점이 다를 때도 있는데 그런 순간들은 재미있다고 느낀다. 같은 장면을 두고도 ‘아, 이 장면을 재미있어 하는구나’ 하고 느낄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나 혼자 웃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게 신경 쓰이지는 않고 재미있다.


시네마테크에서 있었던 들려줄 만한 에피소드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마침 정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영화 감독을 준비하는 미국 친구가 있는데 한국에 오랫동안 머물렀고, 영화 때문에 한국에 왔었던 씨네필이다. 그 친구랑 같이 시네마테크에 우디 앨런의 <애니홀>을 보러 왔었는데, 영화를 보러 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배우 문소리를 만났다. 마침 그 바로 전날 친구가 <바람난 가족>을 봤다고 해서 굉장한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문소리 씨를 단번에 알아봤는데 친구는 긴가민가해하더라. 문소리 씨와 함께 있던 일행에 장준환 감독이 있어서 그때 친구도 확신을 했고, 우리의 바로 두 번째 앞줄에 앉아서 영화를 같이 봤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나면 꼭 인사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때 본 영화 <애니 홀>에서 우디 앨런을 알아보고 귀찮게 하는 장면이 있지 않나. 그 장면 때문에 나중에는 인사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웃음) 너무 재미있었다. 현실과 영화를 넘나든 기분이었는데 마침 현실에 답이 있어서, 정말 우리도 재미있어 했던 에피소드다.


오늘 <쥴 앤 짐> 상영 후에도 이 영화를 추천한 배우와의 시네토크가 있는데, 이처럼 감독이나 배우들과 같이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 영화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나.

굉장히 좋게 생각한다. 한국의 시네마테크는 영화계와 가까운 사이인 것 같다. <애니홀>은 다른 데서 볼 수 없으니까 여기 와서 보게 된 건데, 그 자리에서 배우 문소리와 장준환 감독을 만날 수 있었던 것처럼 영화를 같이 보게 된 것이지 않나. 감독과 배우들이 시네마테크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 벨기에의 감독과 배우들도 시네마테크를 좋아하지만 이런 문화는 아닌 것 같다. 또 여름에는 시네바캉스 때문에 영화를 많이 보러 오고 싶어진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시네마테크가 어떤 공간으로 남았으면 좋겠는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계속 좋은 영화를 상영하고 좋은 프로그램을 많이 기획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시네마테크가 해 온 것처럼,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바람인데 일본 영화 같은 경우는 영어 자막이 있었으면 좋겠다.(웃음) 지금은 한글 자막이 있으면 조금 괜찮은데, 예전에는 한글 자막만 있는 아시아 영화들을 못 봐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장미경(관객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