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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Essay

[Essay] 길티플레저- 영화를 보는 어떤 사소한 강박

극장이 암전되고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 나는 온전한 긴장감으로 충만해지는데, 이 긴장감은 영화 속 인물들의 대사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겠다는 나의 우스운 강박에서 비롯되었다. 때문에 영화를 보는 동안 어떤 순간에 와 닿는 대사들을 내내 상기하거나 어딘가에 적어두지 않으면 곧 잊어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그 순간의 강렬함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해 이어지는 화면을 아깝게 허비해 버리기도 한다. 대사의 개별성에 집착하게 된 이러한 습관 탓에 언제부턴가 나는 아주 미시적인 감상자가 되어버렸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면 전체를 가늠하는 일에는 완전히 실패한 채 그 순간순간의 대사로 영화를 기억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 대사를 만나면 고유한 시간이나 기다림이 보인다고 해야 할까. 한두 줄에 농축된 타인의 삶을 내 것으로 온전히 편입시키고자 하는 이 욕망은, 내가 결코 입 밖으로 내어보지 못했던 말에 대한 눈물 나는 체험인 것이다.


지난 여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단 한 번 상영되었던 장 뤽 고다르의 신작 <필름 소셜리즘>은 나의 그러한 집착이 극에 달했던 영화였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이미 한 차례 놓쳤던 탓에 아쉬움이 있는데다, 언제 다시 개봉할지도 모르는 상황이기에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였다. 파편처럼 내던져지던 인물들의 대사와 자막은 몰이해를 위한 거대한 몽타주처럼 느껴질 정도였는데, 그럼에도 모든 자막을 죄다 받아 적고 싶을 만큼 좋아했던 영화였다. 영화가 끝난 직후 부정확한 기억을 되살려 메모지에 대사를 옮겨 적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겨우 구한 영어자막으로 의미를 조합하며 장면들의 기괴함을 헤아리는 일에 열중했다. “이해란 어려운 것이에요”, “사느냐 죽느냐,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확실히 be동사에는 현실이 없어요”, “뭔가를 쓰는 것을 배우기 전에 뭔가를 보는 것을 배워요”, “개인은 둘이 되길 원하고 국가는 독존을 원하죠” 등등. 이렇게 공들여 기억한 대사는 그 말이 쓰인 장면을 각별하게 보존시켜주는 최초의 매개로 남는다.


이러한 습관은 안일한 마음으로 영화 보는 것을 방지해주기도 하고, 또 영화를 여러 측면으로 기억하게 하는 수단으로 유용하게 활용될 때도 있다. 그러나 내가 아직도 이런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여전히 미시적인 방법으로 모든 영화를 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 있게 부릴 수 없는 언어에 대한 패배감, 깊이 있는 경험의 부재에서 오는 동경 같은 것이 이상한 집착으로 발현되었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아직은, 무딘 생활을 견디는 가장 의미 있는 방법 중 하나로 내가 택한 영화의 체험이 이러한 끝도 없는 긴장의 연속이라는 게 좋다. 예고 없이 잘도 등장하는 대사나 문장의 강력함에 어쩌지도 못하고 다시 휩쓸리게 되더라도 말이다. 아주 오랜 시간을 돌아오는 영화들을 만나는 일, 그리고 그 영화들에 가장 아름답게 패배하는 일을 나는 바로 이곳 시네마테크에서 반복하고 있다.


글: 장미경(관객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