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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Essay

[에디터 다이어리] 극장을 빠져나와 글을 정리하면서 어느덧 우리는 그들의 팬이 되어가고 있다

에디터 다이어리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영화제" 기간 동안 활동하는 에디터들의 일지를 소개한다. 일상적으로 극장을 찾아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짧은 생각들이나 시네토크를 정리하면서 떠오른 단상같이 자유로운 주제로 쓰여진 짧은 에세이가 주가 될 것이다. 영화제가 개막하면서 벌써 2주의 시간이 지났다. 에디터들은 이러저러한 일들을 하면서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1월 26일 <세이사쿠의 아내> 관람. 예상보다 관객들이 웃음을 많이 터뜨려서 매우 놀랐다. 불길한 음악도 그렇고, 영화가 전체적으로 무서운 분위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나도 세이사쿠의 어머니가 ‘돈은 좀 있대니’ 할 때는 엄청 웃었다.

그 뒤 이어진 <세이사쿠의 아내> 시네토크 분위기는 정말 후끈했다. 김태용 감독님의 ‘썰’도 재미있지만, 재치 넘치는 관객 분들의 질문도 극장 안을 빵빵 터뜨렸다. 웃겼던 순간들에 대한 짧은 기록을 해보자. : “전쟁.”(정색) - 세이사쿠의 입장이라면 오카네를 용서할 수 있냐는 관객의 질문에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맥락이 중요하다며./ ‘모두가 궁금해 하는 그 질문’ 릴레이 - 그러나 감독님은 끝내 대답하지 않으셨다./ 양파 껍질 같은 남자네요. 그런데 껍질만 돌고 있네요. - 관객들이 감독님의 ‘개인적인 경험’에 대해 자꾸 묻자 비밀이 많은 남자라며./ “이게 그렇게 재미없나요?” “자신감 좀 가지시길” - 시나리오가 재미 없을까봐 두렵다는 김태용 감독의 ‘작은 마음’에 대한 김성욱 프로그래머의 일갈 혹은 새해 덕담. (지유진 에디터) 

 

 

 


올해 친구들 영화제의 첫 시네토크 녹취를 맡게 되었다. 관객 에디터들 중에서 시네토크 녹취의 처음을 연다는 것이 별일 아니면서도 은근히 부담스러웠다. 소리꾼 이자람 씨의 <페임> 시네토크였는데, 그녀도 친구들 영화제에 처음 참여하게 되어서 매우 떨린다고 했다. 그녀가 떨려한 만큼 나도 떨었다. 아이폰 녹음기능을 켜놓았는데도 제대로 녹음되고 있는지 여러 번 확인하곤 했다. 시네토크가 진행되는 동안, 노트북에다 대화의 내용을 옮겨 담긴 했지만 말은 원체 빨리 흘러가버리니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녹음이 잘 되고 있는지 노심초사했던 것이다. 생각보다 빨리 시네토크가 끝났고, 극장을 빠져나와 글을 찬찬히 정리했다. 그리고 나는 이자람 씨의 팬이 되었다. (배동미 에디터)

 

 

 


1월 6일과 9일에는 8회 <친구들 영화제> 리뷰 마감이 있었다. 에디터들은 각자 2편씩의 리뷰를 맡았다. 이번 영화제를 통해 새로 에디터를 시작하게 된 나를 포함한 일부 친구들은, 최종 마감 전 서로의 글을 도와주자며 의기투합했다. 그리하여 8일 오후 광화문의 한적한 카페에서 크리틱 모임이 열리게 됐다. 각자 인쇄해 온 자신의 글을 쭈뼛쭈뼛 꺼내며 누구의 글을 먼저 읽을 것인가로 짧은 실랑이가 있었고, 이내 미완의 한 원고를 시작으로 크리틱이 진행되었다.

에디터들은 "이 부분 좋아요!", "제 생각에 여기는….", "이게 그런 뜻인가요?" 같은 의견과 질문들을 교환하며 마감을 대비했다. 비평수업을 듣는 양 진지하기도, 누군가 툭 내뱉는 농담에 깔깔 거리기도 했던 풍경. 모 에디터는 모임이 끝나고 서점으로 가 본인이 녹취를 맡은 모 시인의 시집을 사기도 했다.  (김경민 에디터)

 

 

 

 


친구들 영화제가 개막하고 2주 정도 지난 지금까지 두 차례의 시네토크를 정리하였다. 두 번 다 전날 밤을 새고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녹취를 진행하였는데, 그 와중에도 흥미롭게 받아들여지는 지점들이 있었다. 그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예전의 관람경험과 지금의 관람경험의 차이에 대한 질문이었다. 심재명 제작자는 30년 전에는 <안개마을>의 내레이션이 거슬리지 않았지만 지금 다시 보니 내레이션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이해영 감독은 어렸을 때 <지옥인간>을 비디오로 보았다고 하는데, 비디오가 살릴 수 없던 색감을 이번 상영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다고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러한 답변들은 과거와 현재의 간극에 대한 또 다른 질문을 던지는 중요한 증언이다. 이러한 증언들에서 그들은 잠시 그들의 직함을 내려놓고 한 편의 영화를 좋아하는 한 명의 관객으로서 등장하여 시네토크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극장 밖으로까지 이어지게 한다. (박민석 에디터)

 

 


오승욱 감독님의 추천작 <황야의 7인>(1960)을 이번 영화제를 통해 처음 보게 되었다. 대학교 영화교양 강의에서 <7인의 사무라이>의 할리우드판 리메이크라고 이름으로만 접해봤던 영화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셈이다.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다가, 영화의 마지막에서 율 브리너가 스티브 맥퀸과 함께 농부들을 바라보면서 던지는 대사에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Only the farmers won. We lost. We always lose.” 이 대사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원작 영화에서도 그대로 나오는 대사 아닌가. 걸작으로 추앙받는 영화의 그 유명한 대사가 리메이크작에서까지 그대로 나올 줄은 전혀 예상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무라이와 농민이라는 수직적인 계급차가 존재하는 상황이 아닌, 수평적으로 대등한 관계에서 서부의 총잡이들이 ‘우리는 졌다’고 말할 때 그 대사가 갖는 울림은 원작의 것과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고뇌하는 ‘서부의 사나이’ 게리 쿠퍼처럼, 그들은 영웅도 아니고 생각보다 강인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며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에 젖어들었다. 이건 끝나버린 서부극에 대한 애달픔일까? (송은경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