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 질문

1. 제13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대한 축하 인사

2. 여전히 시네마테크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시네마테크가 어떤 곳인지 소개해 준다면?

또는, 나에게 시네마테크란?

3. 선택작에 대한 소개. 이 영화는 왜 ‘저주받은 영화’인가요?

4. 해외나 국내의 시네마테크에서 본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5. 올해부터 시네마테크 건축에 대한 설계 공모가 진행될 예정인데, 여기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6. 친구들 영화제에 올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

 

 

◆김난숙(영화사 진진 대표)

선택작 : <토리노의 말(A Torinói ló)>(벨라 타르, 2011)

1. 축하한다. 빨리 좋은 장소에서 더 많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을 만나길 바란다.

2. 나에게 시네마테크는 영화를 통해 사람을 배우는 곳이다. 영화 속 사람들도 배우고 영화 바깥의 사람들도 배우는 곳. 그 배움을 통해 위로를 받는 곳이다. 또한 사람들이 있는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시네마테크다.

3. 이 영화는 베를린영화제에서 봤는데, 많은 사람들이 초반에는 엄청 집중하다가 영화가 끝날 때쯤에는 다 자고 있었다. 극장을 나와서도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이거 뭐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영화 저주받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상업영화’는 확실히 아니었기 때문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자꾸 생각났다. 똑같은 일이 7일 동안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도 있고, 바람 소리가 주인공 역할을 하기도 하고, 말(馬)이 여전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우물이 주인공인 것 같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삶이 이 영화 속에 우화처럼 들어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끝나지 않는 영화가 주는 이상한 여운이 있었고, 뭔지는 잘 모르지만 이런 게 걸작이 아닌가 생각을 했다. 시간이 지나서 다시 봐도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이 생생히 살아나는 영화다.

사람들이 많이 보지는 않을 것 같은 영화다. ‘엔터테인먼트’ 영화가 아니고 적은 사람들이 돈을 내고 이 영화를 볼 것이다. 그래서 저주받은 영화로 선택했다. 

4. 주로 마켓에서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인데, 일단 <무셰트>와 <피나>가 떠오른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무셰트>를 다시 봤을 때 이 영화가 슬프고 힘들고 아픈 작품이란 걸 새삼 느꼈다. 무셰트라는 아이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머릿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시네마테크라고 하면 언제나 <무셰트>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피나>는 외국의 어느 시네마테크에서 3D로 봤다. 단관 극장이었는데 ‘3D 기술이 이렇게 풍성한 영화적 표현을 할 수 있구나’, ‘스크린에서 무용을 실감 나게 볼 수 있구나’ 같은 생각들을 했다.

5. 건축은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지만 시네마테크는 나에게 재미있는 도서관 같은 곳이다. 도서관의 사람들은 모두 같은 책을 보지 않는다. 하지만 시네마테크의 관객은 적어도 그 회차에는 모두 같은 영화를 봐야 한다. 집 잘 짓는 사람들이 이 두 가지 특성이 재밌게 잘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길 바란다.

6. 이 영화를 보며 자도 된다고 생각한다. 앞의 10분은 괜찮아도 셋째 날, 넷째 날, 다섯째 날까지 깨어 있는 건 힘들 수도 있다. 물론 놓치면 안 되지만, 놓쳐도 된다. 자다가 일어나서 보기 시작한 장면에만 집중해도 벨라 타르 감독이 전달하려고 한 것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바람 소리만 들어도 충분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말고, 와서 자도 괜찮다. 



◆김홍준(영화감독)

선택작 : <블랑쉬(Blanche)>(발레리안 보로우치크, 1971), <부도덕한 이야기(Contes immoraux)>(발레리안 보로우치크, 1973), <반금련>(김기영, 1981)

1. 축하한다. 유난히 추운 겨울에 따뜻한 축제가 되길 바란다.

2. 시네마테크는 영화 도서관이자 영화 박물관, 동시에 영화 카페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영화, 현재의 영화, 그리고 미래의 영화들을 볼 수 있고, 그 영화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그 영화들에 대한 자료도 찾아볼 수 있으며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바로 옆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나에게 시네마테크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고,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이 필요할 때 찾는 곳이기도 하다. 

3. 이 작품은 발레리안 보로우치크라는 폴란드 출신의, 그러나 주로 프랑스에서 활약했던 감독의 영화다. <블랑쉬>는 40여 년 전에 프랑스문화원에서 봤던 기억이 있다. <부도덕한 이야기>는 그 명성, 혹은 악명을 익히 들어왔지만 최근에 와서야 블루레이로 볼 수 있었다. 사람마다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1960~70년대 유럽의 소위 ‘예술영화’, ‘전위영화’, 혹은 금기와 경계를 넘어선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빠져서는 안 될 감독이라 생각한다. 이 감독의 영화를 볼 기회도 드물고, 특히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선택했다. 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 매우 궁금하다. 

4. 시네마테크는 아니었지만 작년 호주의 한 박물관에서 <전함 포템킨>을 밴드의 라이브 연주로 감상한 적이 있다. 이 영화가 얼마나 흥미진진한 ‘오락영화’인지 새삼 느꼈다.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다.

5. ‘시네마테크’라는 말에서 일종의 엄숙주의, 혹은 엘리티시즘을 연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새로운 공간이 무엇보다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란다. 안락한 의자에 앉아 팝콘과 콜라를 먹는 것 말고도 영화를 즐기는 여러 가지 다른 방법이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6. 여러분이 무엇을 기대하든 그 기대와는 조금 다른 영화를 보게 될 것이다. 영화 상영 후 관객들과 대화를 나눌 때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것보다는 관객들의 느낌이 어땠는지 듣고 싶다. 그리고 2018년의 한국이란 공간에서 우리의 영화 문화를 둘러싼 현실도 함께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손희정(문화평론가)

선택작 : <어둠의 딸들(Les lèvres rouges)>(하리 퀴멜, 1971)

1. 축하한다.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며 성장한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런 영화제에 초대를 받는다는 건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다. 이번 영화제의 주제가 ‘저주받은 영화’이니 굉장히 기기묘묘하고 이상한 영화들이 많을 것 같다. 이 영화제가 여러분에게 선사하는 매혹의 시간에 푹 빠져 즐기길 바란다. 

2. 시네마테크는 역사적, 영화사적으로 중요한 작품들을 아카이빙하고 큐레이팅하는 공간이다. 알려지지 않은 영화를 소개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예전에 봤지만 다시 극장에서 필름으로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이 공간이 영원히 지속되면 좋겠다.

3. 뱀파이어물 매니아가 매우 많다. 대중들에게 ‘뱀파이어’라고 하면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벨라 루고시라든지, 해머 스튜디오의 크리스토퍼 리, 최근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에드워드로 대표되는 남성 뱀파이어를 떠올릴 것 같다. 실제로 뱀파이어의 역사 안에서 여성 뱀파이어, 레즈비언 뱀파이어의 역사는 굉장히 깊고 방대하다. 그런 작품 중 한 편을 소개하고 싶었다. 특히 여성 뱀파이어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신의 ‘포획물’을 엄청나게 폭력적으로 착취하기도 하고 매혹하기도 하고 파괴적으로 부숴버리기도 하는 캐릭터다.

그런 의미에서 뱀파이어는 여성이 성적으로 대상화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시키는 지배적 시선을 내파시키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 작품을 보면서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970년대 초반 레즈비언 뱀파이어물이 스크린에서 섹슈얼리티가 펼쳐지던 당시의 문화적 분위기와 함께 폭발적으로 생산됐다. <어둠의 딸들>이 대표적이다. 주인공인 델핀 세리그가 연기한 엄청나게 매혹적인 여성 뱀파이어가 레즈비언이자 강력한 섹슈얼리티의 담지자로 등장한다. 뱀파이어물이 페미니즘적 존재로 해석되었던 의미망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서 2018년의 한국 관객들에게 이 영화를 소개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을 마련해보고 싶었다.

4. 어려운 질문이다. 바바라 해머 특별전이나 아녜스 바르다 특별전 같은 건 정말 인상적이었고 잊어버릴 수 없다. 딱 한 편 고르라고 한다면 최근에 봤던 <올란도>를 꼽고 싶다. 다시 스크린으로 봐서 너무 좋기도 했지만, 상영이 끝난 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조혜영 프로그래머의 강연도 굉장히 좋았다. 시네마테크가 할 수 있는 건 좋은 영화를 보여주는 것과 함께 좋은 담론의 장을 만드는 게 아닐까. 

5. 물론 시네마테크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영화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영화를 감상하기에 최적의 조건이 마련되면 좋겠다. 그런데 현재는 영화의 물질성이 전보다 휘발되어서 누구나 어디서든 영화에 접속할 수 있지만 ‘집단적 관람’으로서의 문화는 많이 사라진 상황이다. 이런 시대에 시네마테크가 사람들이 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접속,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면 좋겠다. 영화의 물질성을 확보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시네마테크를 기대한다. 

6. 영화는 스크린이라는 절단면 안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스크린의 단면을 초과해 관객들과 만나며 비로소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스크린 위에 펼쳐진 이야기를 보며 여성 착취적이라든가, 소수자 배제라든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 좋겠다. <어둠의 딸들>도 풍부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 

 

◆오성지(한국영상자료원 연구전시팀)

선택작 :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앙리 페스쿠르, 1925)

1. 정말 축하한다. 한국영상자료원의 시네마테크 KOFA는 이제 십 년이 되어간다. 그런데 서울아트시네마는 벌써 열세 번째 친구들 영화제를 하고 있다. 정말 축하하고, 부럽기도 하다(웃음).

2. 시네마테크는 다양한 영화들, 멀티플렉스에서 볼 수 없는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다. 나아가 영화만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자료도 찾을 수 있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영화에 대한 모든 것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곳이다. 개인적으로는 일터라는 의미로 다가온다(웃음).

3. 국내에 상영되지 않았던 영화,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감독, 그리고 최근 복원된 영화 중 다섯 편의 무성영화를 골랐다. 엄밀히 말해 <레미제라블>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국내에 상영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1927년에 단성사에서 개봉을 했었다. 당시 신문 기사를 보면 이 영화를 ‘구라파’ 영화라고 부르며 ‘고급 키네마 팬’들이 기대를 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397분짜리 영화를 하루에 다 상영한 건 아니고, ‘시네 로망’이라고 해서 각 부를 서로 다른 날 상영했을 거라 짐작한다. 

나는 이 영화를 몇 년 전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에서 열린 무성영화제에서 봤었다. 영국의 피아니스트 닐 브랜드가 연주를 해주었다. 너무 아름답고 우아했다. 극장에서 다시 사람들과 함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추천했다.

4. 작년에 <인포머(The Informer)>(아서 로비손, 1926)라는 영국 무성영화를 봤다. 국내에는 상영된 적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주연배우가 주드 로를 닮았다(웃음). 배우가 잘 생겼고, 플롯도 정교하고, 캐릭터 설정도 재미있는 영화라서 인상에 남았다.

최근 작품 중에는 <더 스퀘어>(루벤 외스틀룬드, 2017)가 기억에 남는다. 미술관 큐레이터가 주인공인데 내 직업과도 비슷한 면이 있어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5. 소식을 듣고 나도 기뻤다. 예쁜 공간이면 좋겠다. 딱 봤을 때 ‘아 너무 이쁘다’란 말이 나올 수 있는 곳. 요즘 다들 인스타그램을 많이 하는데, 사진이 잘 나오는 곳이면 좋겠다. 

그리고 아날로그 필름 상영에 적합한 곳이면 좋겠다. 요즘은 다들 디지털 상영을 하지만 서울아트시네마는 아무래도 옛날 영화를 많이 상영할 거다. 16mm, 35mm, 기타 다른 포맷도 다양하게 상영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아날로그 필름의 물질적 특성이 제대로 살아날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가 되길 바란다.

6. 일단 너무 죄송하다(웃음). 사실 나는 90분짜리 영화를 좋아하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긴 영화를 추천하게 됐다. 원래 옛날에는 무성영화를 상영할 때 음악 연주가 항상 같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음악도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걱정도 되지만 더 특별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나는 영화평론가도, 영화 만드는 사람도 아니고 아카이브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필름의 성격과 속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옛날에는 한 편의 영화를 여러 버전으로 만들어 세계 곳곳에서 상영했었다. 1927년의 이 땅에 살았던 우리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도 <레미제라블>을 포함해 여러 영화들을 봤을 것이다. 그때 그분들이 느꼈던 감정, 이야기, 시간이 모두 필름에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레미제라블>은 세 곳의 아카이브가 함께 힘을 합쳐 복원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필름을 거쳐간 여러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이야기와 시간까지 필름에 스며들어 있다. 여러분도 이 영화를 볼 때 지루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 분들의 이야기와 시간이 스며든 영화 필름의 존재를 의식하며 보면 더 흥미로울 것 같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같은 질문들 말이다. 

 

◆오승욱(영화감독)

선택작 : <들국화는 피었는데>(이만희, 1974), <반금련>(김기영, 1981)

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벌써 13회다. 친구들 영화제를 처음 준비했을 때 영화제 회의를 할 때마다 항상 추웠던 기억이 있다. 영하 10도의 추운 날에 박찬욱 감독, 김성욱 프로그래머와 인사동에 모여 이야기하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내가 환갑이 되어도 이 축하 인사를 할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 

2. 재작년 정도까지만 해도 시네마테크가 어떤 곳인지 물으면 도서관 같은 곳이라고 대답했었다. 그런대 작년부터 이 생각에 대해 의문이 좀 든다. 사실 이제는 잘 모르겠다. 시대가 바뀐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서 이제 더 이상 도서관 같은 곳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여기에 대해서는 더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잘 모르겠다는 게 나의 가장 솔직한 답이다.

3.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난 후의 한국 영화는 모두 다 저주 받았다. ‘저주’의 개념이 좀 애매모호하지만 저주를 ‘탄압’이라고 생각해 보자. 탄압이나 억압에 의해서 감독, 제작자, 배우가 의도한 바가 원래의 50% 이하로 실현되면 그건 저주받은 영화다. 한국 영화에서는 저주와 탄압의 개념이 비슷하게 느껴진다. 1960~80년대 중반까지 거의 모든 한국 영화는 탄압받고 억압받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중 <들국화는 피었는데>는 감독이 미운털이 박힌 상태에서 ‘저 좀 받아주세요, 개과천선 할게요. 정부가 원하는 대로 찍어볼게요’라고 하며 백기를 들고 투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괘씸죄에 플러스알파까지 겹쳐 더욱 억압받은 영화다. 그래서 감독이 뭘 찍으려고 했는지 정도만 흔적으로 남았다. 물론 그 당시의 영화가 거의 그랬지만 이 영화는 특히 애달프다. 감독이 ‘알았어요, 말 잘 들을게요’의 마음으로 만들었는데 얄짤 없었다. 웃으면서 말했지만 정말 무서운 일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저주는 촬영을 하러 나갈 때마다 교통사고가 나고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지진이 발생하고, 겨우 완성했는데 상영 중인 극장이 무너지는 것이다(웃음).

4. 내가 영화를 못 찍고 준비하는 동안 시네마테크는 학교였다. 그리고 놀이터이기도 했고. 그 모든 순간들이 기억난다. 나에게 굉장히 많은 가르침을 준 수많은 영화가 있다. 한 감독이 만든 열 편이 넘는 영화를 2주 안에 보는 건 은총이기도 하고, 드문 배움의 기회이기도 하다. 

가장 좋았던 기억이 세 개 정도 있다. 하나는 하루에 1, 2, 3회차로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를 순서대로 봤다. 너무 좋았다. 마지막 <석양의 무법자>에서 이스트우드가 판초 우의를 입는 장면을 보며 이 장면이 <황야의 무법자>로 돌아가는 도돌이표라고 느꼈을 때 기분이 좋았다.

어느 해에는 12월 31일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상영했고 영화가 한밤중에 끝났다. 집에 돌아가는 길이 어두웠지만 정말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작년 12월 31일에는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이라는 소년갱 영화를 본 게 아주 즐거운 경험이었다. 갱영화를 봐야 한해를 마무리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마지막이 <무뢰한>과 비슷해서 ‘와’하면서 봤다. 아주 즐거웠다. 

5. 나는 굉장히 과거에 연연하는 인간이고 진취적이지 못해서 그런지 옛날 도원극장 같으면 좋겠다. 제2개봉관, 동시상영관 같은 공간. 화장실 가면 깡패도 있고, 영화 좀 보려고 하면 껌팔이 소년이 와서 계속 달라붙는 바람에 영화 다 놓치고… 그런 게 좀 필요한 것 같다.

6. 저주보다는 억압에 방점을 찍고 싶다. 2018년에도 여전히 우리가 알게 모르게 자행되는 수많은 억압에 대해 고민하면 좋겠다. 억압의 결은 굉장히 많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무 자르듯 생각할 수 없다. 표현의 자유를 방해하는 ‘어떤 것’들을 고민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이경미(영화감독)

선택작 : <유리 감옥(Tras el cristal)>(아구스티 빌라롱가, 1986), <위대한 레보스키(The Big Lebowski)>(코엔 형제, 1998)

1. 제13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개막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2. 음… 시네마테크는 우리가 보통 보기 힘든 다양한 영화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TV에서도 방영하기 힘든 영화들, 오래된 영화들. 그리고 다양한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나에게 시네마테크는 내가 영화를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곳이다. 외로울 때 친구가 되어주는 곳이다. 지금도 가끔씩 머릿속에서 재밌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 혼자서 가끔 찾는 곳이다.

3. 사실 이 영화를 추천한 이유는 나와 친한 친구가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 친구가 해외 영화제에서 <유리 감옥>을 본 다음 매우 충격적이었고, 관객이 중간에 많이 나갔지만 굉장한 작품이라고 얘기해주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개봉이 어려울 것 같은데 너가 좋아할 것 같다고 추천해주었다. 이번 기회에 스크린에서 관객들과 함께 보고 싶어서 추천했다.

4. 영화 공부를 하던 시절 내 마음 속에 들어온 감독은 구로사와 아키라였다. 특히 일본 고전 영화 감독들의 작품전을 즐겨 봤다. 당시 <란>을 보고 나왔더니 박찬욱 감독도 있고 변영주 감독도 있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로비에서 커피를 마시며 영화의 감동을 나눴던 기억이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5. 시네마테크는 여러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공간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이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이고, 다양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우리가 쉽게 접하지 않는 문화들 중에도 이렇게 재밌는 것이 많다는 걸, 문화를 찾아가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면 좋겠다. 여러 영화를 보는 재미와 더불어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도 즐겁게 느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다양한 기획이나 전시를 병행하면 좋겠다.

물론 건축적으로도 예쁘면 좋겠다. 나도 해외를 가면 극장을 꼭 찾는다. 이 나라, 이 도시의 극장은 어떻게 꾸며져 있고, 어떤 영화를 상영하고, 어떤 사람이 오는지 구경하러 간다. 그 모습에 따라서 영화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나 시선을 가늠하게 된다. 시네마테크가 지어진다면 여러 세대를 아우르면서 영화를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영화만 보는 게 아니라 ‘야, 우리 시네마테크 놀러갈래?’라고 말할 수 있는, 하루 종일 뭔가를 해도 지루하지 않는 곳이길 바란다.

6. 미리 꼭 말씀드려야 할 것은, 이 영화는 굉장히 충격적인 영화일 것이다. 어떤 분들은 끝까지 보기 힘들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극장에서 만날 기회는 매우 드물 것 같다. 만약 끝까지 보는 분들이 있다면 우리가 나눌 얘기는 많을 것이다. 단순히 어떤 충격적인 효과만을 위해 폭력이나 섹슈얼리티를 작동시키는 게 아니라 그걸 통해 우리가 무엇을 느낄 수 있는지 이야기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이해영(영화감독)

선택작 : <아이언 자이언트(The Iron Giant)>(브래드 버드, 1999)

1. 열세번 째 친구들 영화제를 정말 축하한다. 13년이면 사람으로 치면 사춘기에 접어든 시기다. 이 시기를 잘 이겨내서 더욱 튼실하고 건강한 영화제로 성장하기를 응원한다.

2. 극장들은 많이 생기고 사람들도 극장에 많이 가지만 영화가 영화답게 존중받고 귀하게 취급되는 곳은 시네마테크라고 생각한다. 관객들이 두 시간 짜리 영화를 ‘소비’하는 게 아니라 좋은 영화와 만나고, 가슴에 담고, 추억이 되는 곳. 그리고 친구처럼 옆에 오래 둘 수 있는 영화의 기억을 만드는 곳이 시네마테크다.

나에게 시네마테크는 영화를 처음 사랑했을 때의 초심과 뜨거운 마음을 다시 상기하게 해주는 곳이다. 영화감독으로라기보다는 영화의 팬으로서, 영화를 좋아했던 청년으로 찾아가는 곳이다.

3. 원래 이 영화를 좋아하는 팬도 많은 걸로 알고 있지만 개봉했을 때는 흥행에 실패했고, 워너의 흑역사로 기록될 정도로 참담한 스코어를 기록했다. 나중에 <인크레더블>로 유명해진 브래드 버드의 초기작으로서 당시 아무런 대접도 받지 못하고 사라졌지만 갈수록 더 많이 회자되는 작품이다.

사실 아주 단순하고 뻔한 스토리의 애니메이션이다. 그런데 이 단순하고 우직한, 한 번의 기교도 없이 쭉 직진만 하는 이야기가 클리셰의 정공법이 지닌 힘으로 묵직하게 다가온다. 

이 작품을 극장 스크린에서 본 관객은 적을 것 같다. 사실 나도 극장에서는 본 적이 없다. 저주받은 영화라고 하면 ‘저주받은 걸작’, 소위 아트 영화를 떠올리기 쉬울 텐데 좀 더 쉽고 단순한 가족 영화 같은 애니메이션을 함께 보고 싶었다. 이 작품에 걸린 저주를 같이 풀어보면 어떨까.

4. 최근 영화 촬영이 끝난 뒤 뉴욕에 있는 시네마테크에서 테라야마 슈지의 옛날 영화를 봤다. 극장에서는 볼 기회가 거의 없는, 비디오로 만든 영화를 극장에서 봤는데 정말 새로웠다. 동네 마실 나온 어르신들 사이에서 함께 봤는데 이렇게 오래된 영화를 동시대 관객들과 호흡하며 본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물론 영화 자체도 파격적이고 독특했지만 이런 영화를 다시 스크린에서 본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발생한다는 걸 새삼 느꼈다. 시네마테크의 힘을 느낀 경험이었다.

5. 일단 예쁘면 좋겠다. 외관과 내부가 다 예쁘면 좋겠다.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란 개념에서 확장해 전체적으로 라이브러리 같은 곳이면 좋겠다. 관련 도서나 자료를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영화인들이 기증도 할 수 있고, 영화에 나왔던 소품 같은 것도 볼 수 있는 곳이면 어떨까. 열린 도서관 같은 넓은 공간에 휴식처도 있고, 상영관도 있는 공간이면 얼마나 좋을까. 외국의 시네마테크를 가보면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과 함께 영화를 읽으러 온 사람, 놀러나온 사람도 있다. 영화인들과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6. <아이언 자이언트>는 굉장히 순진하고 아주 단순한 이야기의 애니메이션이다. 순진하고 우직한 클리셰의 힘이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면 다른 많은 영화들과 문학, 만화, 음악, 캐릭터가 떠오를 것이다. 본인의 기억 속 어떤 지점들과 딱 맞아서 서로 연결이 되는, 뭔가 눌리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마실 나오듯이 놀러와서 보면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성일(영화평론가)

선택작 : <토파즈(Topaz)>(알프레드 히치콕, 1969), <럼블 피쉬(Rumble Fish)>(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1983)

1. 벌써 친구들 영화제가 13회다. 많은 영화의 친구들이 이 영화제를 거쳐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도 여러 차례 친구들 영화제를 찾았고, 이번에 다시 만나 기쁘다. 이렇게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시네마테크에서 만나는 자리가 항상 즐겁고 반갑고, 여러분들에게 고맙다. 이 우정이 앞으로도 계속됐으면 정말 좋겠다.

2. 시네마테크가 뭔지 모르는 분들은 이제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한다. 다만 구태여 정의를 내리자면 이곳은 과거의 영화가 현재의 영화가 되고, 현재의 영화가 미래의 영화가 되길 기다리는 장소다. 어떤 의미에서 시네마테크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주는 다리 같은 곳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에게 시네마테크란 그런 의미에서 영화에 대한 나의 사랑을 확인하는 곳, 우정을 확인하는 곳, 영화와 함께 보냈던 삶을 기억하고 그 시간을 되찾는 곳이라 말할 수 있다.

3. 저주받은 걸작이란 말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다들 다른 정의를 내릴 것이다. 나는 저주받은 영화란 백지수표를 받아들고 맨 먼저 알프레드 히치콕의 <토파즈>를 떠올렸다. 많은 비평가들, 혹은 시네필들, 전문적인 히치콕 연구자들에게도 <토파즈>는 히치콕의 실패작, 혹은 ‘망작’으로 불리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그리고 이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첫 10분을 보고 즉각 이 영화에 매혹되었다. 이 영화는 내가 본 히치콕 영화와도 달랐고, 그 무언가 다른 매혹의 힘이 있었다. 그 매혹의 힘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었고, 그걸 통해 히치콕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그걸 통해 내 사랑과 우정을 여러분과 확인하고 싶다.

4. 이 질문을 받자마자 가장 먼저 떠올린 건 파리 시네마테크에서 임권택 감독의 회고전을 할 때였다. 그때 임권택 감독님과 그 장소에 있었다.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를 보고 파리의 시네필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보낼 때 뭔가 승리했다는 기분을 받았다. 서울의 시네마테크에서도 그 누군가의 영화가 상영될 때, 그래서 서울의 시네필들이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낼 때 그 감독이, 그 감독을 지지했던 비평가가 승리했다는 기분을 느끼는 장소가 되면 정말 좋겠다.

5. 내가 건축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건축 구조에 대해서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운영에 대해서는 시네마테크를 책임질 분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바라는 건 단 한 가지다. 시네마테크의 문턱이 더 낮아지면 좋겠다. 시네마테크에 아주 나이 어린 시네필, 아주 나이 많은 시네필, 말 그대로 과거와 미래가 한자리에 함께 앉아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

6. 아무 준비도 하지 말고, 그리고 어떤 기대도 하지 말고 오길 바란다. 완전히 제로 상태에서 영화를 보는 것, 어떤 편견도 없이 어떤 기대도 없이 영화를 볼 때에만 비로소 그 영화와 정말 만나는 첫 시작이 될 것이다. 그렇게 그날 여러분과 만나고 싶다. 

 

◆허문영(영화평론가)

선택작 : <위대한 바들리스(Bardelys the Magnificent)>(킹 비더, 1926), <엔젤(Angel)>(에른스트 루비치, 1937)

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13년 전에 처음 시작할 때는 이렇게 큰 축제가 될 거라 예상을 못 했다. 그런데 어느새 친구들 영화제는 한국 전체를 통틀어 시네마테크의 가장 큰 축제가 되었다. 올해도 많은 관객과 좋은 영화들이 행복하게 만나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

2. 나라마다, 지역마다 다른 기능을 갖고 있겠지만 나에게 시네마테크란 영화를 즐기는 공간인 동시에 영화를 생각하는 공간이다. 나아가 시네마테크는 ‘함께’ 영화를 생각하는 공간이다. 혼자서 영화를 열심히 보고 연구하는 게 아니라 함께 한다는 것. 그게 시네마테크의 중요한 역할인 것 같다. 나도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알게 됐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른 분들도 좋은 경험을 하길 바란다.

3. <위대한 바들리스>는 킹 비더가 1926년에 만든 무성영화다. 이 영화의 프린트는 오랫동안 소실되었다가 21세기에 한 개인 소장가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나마 세 번째 권이 없는 불완전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이후 복원가들이 남아있는 자료와 스냅샷들을 토대로 불완전한 형태로나마 관객들이 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래서 21세기 관객들과 비로소 만나게 된 작품이다. 

이 영화를 3년 전에 처음 보고 거의 무력한 행복감에 빠졌다. 너무 아름답고, 너무 즐겁고, 너무 편안한 영화다. 훌륭한 예술인지 따지기 이전에 이 정도의 행복한 충만함을 준 영화가 매우 드물기 때문에 꼭 이 영화를 관객들과 보고 싶었다.

4. 엄청나게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2002년 여름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개최했던 “장 르누아르 회고전”이 기억에 남는다. 그때 비로소 비디오, DVD로만 봤던 장 르누아르의 영화를 극장에서 봤다. 그리고 ‘르누아르의 영화는 꼭 극장에서 봐야 한다, 르누아르의 영화는 나이가 좀 들어서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웃음). 사실상 르누아르와의 첫 만남이었고, 르누아르를 이해하는 건 내가 영화를 보는 방식에도 아주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영화의 관능성이 영화의 소재나 개별적 표현이 아니라 흐름에 있고 분위기에 있다는 걸 알게 해주었다. 그래서 장 르누아르의 회고전을 처음 만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5. 전문가들이 많은 의견을 낼 텐데,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말하자면 시네마테크는 그냥 영화를 보고 가는 상영관이 아니라 일종의 사랑방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네마테크는 함께 영화를 보고 함께 영화를 생각하는 공간이라 믿기 때문에 그런 공간이 꼭 필요하다. 단순히 훌륭한 상영시설 뿐 아니라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공동체로서의 기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6. 다른 영화도 모두 마찬가지겠지만 영화는 가능한 정보 없이 보는게 좋다. 선입견 없이, 가장 멀쩡한 상태로, 빈 백지의 상태로 영화를 볼 때 가장 좋은 관람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여러분도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 그런 방식으로 영화를 만나면 좋겠다.

 

인터뷰 진행 하수정 홍보팀장

인터뷰 정리 하수정 홍보팀장, 김보년 프로그램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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