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페데리코 펠리니의 <그리고 배는 항해한다>


1914년 7월, 호화로운 여객선이 ‘에드메아 테투아’라는 위대한 오페라 여가수의 고향인 이리모섬 앞바다를 향해 항해한다. 그녀의 장례식을 치르고자 함이다. 영화 <그리고 배는 항해한다>(1983)는 배가 출항을 준비하는 모습을 담은 무성의 흑백이미지로 시작한다. 이는 영화 속에 나오는 1910년대의 카메라로 찍은 것 같은 초기영화의 이미지다. 영화는 뱃고동 소리, 초기영화이미지를 벗어나는 줌의 사용, 피아노 연주, 대사의 발화, 오페라 합창, 컬러로의 전환을 통해 점진적으로 현대적인 영화로 변한다. 한편 이 영화는 세트공간에서 촬영되었다. 그림으로 그려진 지평선, 비닐의 출렁임으로 표현된 바닷물, 그리고 모형으로 된 배는 공간의 허구성을 그대로 드러내며, 영화의 마지막에는 이 세트 촬영장의 외관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영화 만들기와 영화미학의 발전사에 대한 자기반영적 성찰로 보인다.


호화 여객선에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타고 있다. 오스트리아 대공, 유럽의 귀족들, 음악가들(비엔나 오페라 단원들), 세르비아인들, 선박노동자들, 그리고 나레이터인 기자가 있다. 이들 계층 간의 차이는 배 내부공간의 구획과 구조를 통해 드러난다. 가령 기관실 시퀀스에서 기관실 내부의 노동자들과 저 높은 곳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는 오페라 가수들 간의 차이는 그 공간적 거리감만큼이나 커 보인다. 반면 귀족 및 음악가들과 세르비아 피난민들 간의 차이는 마치 상류층 사교계의 살롱 같은 인상을 주는 레스토랑과 갑판을 가르는 창문과 커튼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들 간의 계층적 분리성은 음악과 춤이라는 수단을 통해 서서히 희석되어 나간다. 이를테면 기관실에서 오페라 가수들이 서로 경쟁하듯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그 노래 소리는 기관실의 기계 소리, 노동자들의 박수 및 환호 소리와 뒤섞이면서 일종의 하모니를 이루게 된다. 또한 갑판에서 세르비아인들이 음악과 춤의 향연을 벌일 때, 위에서 내려다보던 관객이었던 오페라 가수들도 결국 하나둘씩 갑판으로 내려가 다 같이 어우러져 춤을 추게 된다. 화합의 축제이자 오페라가 펼쳐지는 순간이다. 이때 한 귀족의 딸은 세르비아 남자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이 영화는 1차 대전 직전을 역사적 배경으로 한다. 영화 마지막 부분의 사건은 1차 대전의 발발을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펠리니는 이러한 역사적 순간조차 하나의 오페라로 표현한다. ‘음악, 열정, 정치, 전쟁, 계층 간 차이와 소통’ 등의 다채로운 요소들을 코미디와 펠리니적인 축제성으로 엮어낸 이 영화는 비가와도 같이 우울하게 영화에 작별을 고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박영석)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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