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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Review] 죄절된 부르주아의 만찬 - 루이스 부뉴엘의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



루이스 부뉴엘의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1972)은 부르주아의 계급적 허위의식을 냉소적으로 풍자한다. 영화는 6명의 부르주아들이 그들만의 의식인‘만찬’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다룬다. 놀랍게도 이 부르주아들은 티타임까지 포함하여 총 8번의 좌절을 겪는다. 그들은 시간을 착각하거나 때로는 시의적절치 못한 성적욕망으로 약속을 위반한다. 그런가 하면 갈망하던 만찬이 시작되는 순간에는 식사에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에 의해서 만찬이 중단되기도 하는 등 만찬을 성사시키고자 하는 그들의 욕망은 수없이 고배를 마신다. 게다가 영화에는 중심 내러티브와 상관없는 꿈 이야기가 세 차례나 삽입되고 부르주아가 꾸는 꿈이 세 차례 덧붙어있다. 6명의 부르주아가 하릴없이 들판을 걸어가는 극적맥락과 긴밀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시퀀스가 또한 세 차례 등장한다. 무질서하게 배치된 이 영화의 형식은 사실 부뉴엘만의 방식으로 체계화되어 있다. 그것은 부뉴엘의 정신적 기반이 된 초현실주의와 바흐친이 말했던 모더니즘 그로테스크와 연관성이 깊다. 


무엇보다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식음’과 ‘꿈’이다. 만찬은 부르주아들만의 계급적 의식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이 만찬은 반드시 집단성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계급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데, 이는 카니발의 집단적인 성격에 기인한다. 더불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부르주아들은 실제 부르주아가 아니라 부르주아의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광대에 불과하다는 점도 눈여겨 볼 지점이다. 주인공들이 각기 고유한 성격을 가진 캐릭터라기보다는 계급적으로 뭉뚱그려지는 부르주아 집단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군인의 집에서 만찬도중에 갑작스럽게 무대로 배경이 급변하자 연극을 선보이는 부르주아들의 모습을 본 세네샬(장-피에르 카셀)의 꿈에서도 간접적으로 표현된다. 카니발의 주된 특징인 집단성과 상연이 부뉴엘 영화에서 지속되고 있으며, 이 상연의 모티프가 변형된 형식으로서 기존의 것을 전복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카니발레스크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에서 내러티브의 진행을 동기화 하는 것은 만찬의 좌절뿐만이 아니라, 꿈이나 정처 없이 거니는 부르주아의 이미지까지 포함된다. 만찬의 좌절 이후에는 일종의 규칙처럼 꿈이 삽입되고, 그 꿈을 마무리 짓는 것은 떠도는 부르주아의 모습이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다시 부르주아들이 만찬을 성사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등장하게 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이 ‘죽음’의 이미지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만찬의 실패와 꿈속의 부르주아들의 죽음은 다시 만찬이 시작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따라서 주요 내러티브와 꿈은 촘촘한 직물조직처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마지막 시퀀스에서 다시 하릴없이 걷는 부르주아의 모습은 그들이 걸어가는 끝없는 길처럼 만찬을 성사시키기 위해 움직이는 그들의 끝없는 욕망과, 종료되기 때문에 결코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암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김고운 | 에디터)

1.14(토) 19:30 
1.19(목) 19:00 상영 후 백현진의 시네토크
1.27(금) 1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