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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전쟁의 잔혹함과 인간 심연의 고통 -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




<지옥의 묵시록>에 관해 논한다는 것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말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한 개인의 경험과 그 센세이션 중심에 있는 감흥을 있는 그대로 아무도 모르는 사람에게 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영화의 중심인물인 커츠 대령이 한말이기도 하고 <지옥의 묵시록>을 본 사람들의 대부분의 반응이다. 


프란시스 F. 코폴라가 3천만 달러가 넘는 거금을 들여 만든 이 영화는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 Heart of Darkness’을 바탕으로 상황을 베트남전으로 각색해 만들어 졌다. 영화는 캄보디아 밀림으로 잠적해 미쳤다는 소문이 도는 미스터리한 인물 커츠 대령(말론 블란도)을 찾아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은 윌라드 대위(마틴 쉰)의 여정과 전쟁의 광기어린 현장을 묘사한다.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코폴라 감독은 영화가 베트남전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베트남전 그 자체라고 단언했다. 그 만큼 이 영화는 전쟁의 잔혹함, 도덕적 딜레마, 인간 심연의 고통, 극한 상황에서 들어나는 인간 본연의 모습들을 사실적으로 다룬다.


영화 전체에서 당연히 이러한 점들을 찾을 수 있지만, 영화 속의 작은 에피소드들이 더 충격적인 감흥을 불러오기도 한다. 윌라드 배가 베트남 민간 선박을 검문하는 신에서 배의 선원들이 보여주는 각기 다른 행동은 전쟁의 공포, 공포의 대처법, 전쟁과 도덕적 딜레마의 괴리를 단편적이지만 실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면서 영화는 서서히 우리를 커츠 대령에게로 인도한다. 코폴라 감독은 350만 달러, 그 당시로는 전무후무한 어마어마한 거액으로 말론 블란도를 설득시켜 커츠 대령에 캐스팅했다. 그렇지 않아도 큰 예산문제로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비난을 받았던 차에 한 배우에게 고작 한 달 작업의 대가로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준다고 질타를 받았다.


커츠 대령은 사진과 목소리로만 등장하다가 영화 중반 이상이 지나야 모습을 보인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면도칼 위를 걷는 달팽이에 관한 얘기를 하는 커츠 대령의 정신이 나간듯하고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 목소리는 극 전반부의 분위기를 주도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커츠 대령의 무게감 있는 목소리가 극의 분위기를 압도한다. 무겁고 거친, 그렇지만 신뢰가고 상대를 압도하는 목소리는 너무나도 뛰어났던 한 군인의 변화된 영혼과 정신을 훌륭하게 전달해준다. 영화의 원작소설 ‘암흑의 핵심’에서도 커츠 대령의 목소리는 중요하다. 영화에선 윌라드이지만 소설에선 말로우로 등장하는 커츠를 쫓는 이 인물은 커츠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그와 말을 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커츠의 목소리를 상상하고 마침내 커츠를 만났을 때도 그의 목소리를 잊지 못한다. 콘래드는 몇 페이지에 걸쳐 커츠 대령의 목소리에 관해 집착적으로 서술했다.


블란도가 영화에서 T.S. 엘리엇의 “텅 빈 사람들 The Hollow Men”을 낭독 할 때, 카메라가 블란도를 비추고 있지 않아도 충분히 그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 블란도의 머리를 빡빡 깎은 모습과 불어난 몸집에 섬세하지만 거친 목소리는 그의 몸속 안팎에서 커츠 대령이 느껴지게 만든다. 너무나 비싸서 다른 배우를 알아보라는 주변사람들을 무시하고 거금을 들여서라도 블란도를 캐스팅한 코폴라 감독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커츠 대령이 영화 속에서 마지막으로 내뱉는 말 “공포, 공포 The horror, the horror"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귓가에 맴돈다. 아카데미 촬영상과 음향상을 탄만큼 <지옥의 묵시록>은 시각적으로나 음향적으로 관객의 뇌리에 깊을 인상을 주고, 영화의 전반적인 스토리와 인물변화는 철학적인 질문들로 큰 잔향을 남긴다. 커츠가 말로는 표현하지 못한다 했던 센세이션의 중심에 가까이 다다르고 싶다면 조샙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  T.S. 엘리엇 “텅 빈 사람들”을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배준영: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1월 21일(금) 15:00
Cine-Talk
2월 5일(토) 15:00 <지옥의 묵시록> 상영후 김지운 감독 시네토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