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상영은 인간의 노동이 투입되는 ‘노동의 산물’이다!

 - 프로그래머 김숙현 씨를 만나다

 

'극장 직원 인터뷰'의 세 번째 주인공은 프로그래머 김숙현 씨다. 해외에서 필름을 수급하는 일을 맡고 있는 그녀와의 인터뷰를 통해, 저 먼 땅에 있는 필름들이 어떻게 이곳까지 당도하는지를 머릿속에 그려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관객들과의 동지애를 확신하는 말은 영화를 둘러싼 사람들의 우정에 ‘특별한 구석’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영화에 애증을 느낀다고 말했지만 아프리카 특별전을 꿈꾸며 함박웃음을 짓는 그녀를 보니 아직 증보다는 ‘애’가 훨씬 더 큰 듯 했다.

 

 

 

 

 

극장에서 맡은 업무에 대해 소개를 해주신다면.

일단 나와 김보년 씨, 그리고 김성욱 프로그래머 디렉터 셋이서 프로그램 팀이다. 같이 의논을 해서 프로그램의 일 년치 큰 틀이 짜여지면, 구체적으로 어떤 영화를 틀지 회의를 통해서 결정이 된다. 특히 나 같은 경우에는 해외 배급사와 접촉을 해서 영화를 수급해오는 일을 맡고 있다. 영화의 저작권자가 누구인지, 프린트를 누가 가지고 있는지 파악한 뒤 그 쪽에 연락을 넣어서 우리가 어느 기간 동안 무슨 영화를 몇 번 틀려고 하는데 가능한지, 얼마인지 등의 협상을 한다. 결정되면 프린트를 들여오고, 통과를 하는 과정을 거친다. 김보년 씨가 주로 이미 수입이 된 영화 또는 한국영화들을 들여오기 위해 국내 배급사랑 협상을 한다면, 나는 해외 쪽을 맡고 있다. 가끔 리플렛을 한영 번역을 해서 만드는 경우에 번역하는 작업도 한다.

 

외국어 능력이 꼭 필요할 것 같다.

영어를 썩 잘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사람이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뭔가를 하게 되지 않나. 이 표현을 써야하는데 내가 뭐라 말할지 모르겠으면 그 표현을 열심히 찾는다. 비즈니스 영어는 그렇게 다채로운 표현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사실은 물어보는 거나 답하는 거나 비슷비슷하니까. 나도 내가 영어를 이렇게 고도로 활용하면서 밥을 먹게 될 줄은 몰랐다. 비영어권 국가도 다 영어로 소통한다. 내가 컨텍트를 하는 사람들은 영화를 해외에 팔거나 상영하는 해외부서에 속해있기 때문에 그 회사에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만나기 때문이다. 일본 쪽하고도 이야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오게 되었는지.

우리 극장에서 10년 동안 관객이었다. 나는 2004년 정도부터 여기를 극장을 왔다고 생각했는데, 왜냐하면 ‘버스터 키튼 전’을 2004년에 했기 때문이다. 그 때 버스터 키튼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런데 당시를 생각해보면 그 전부터 영화관을 다니고 있었다. <차이니즈 부키의 죽음>이 2002년 서울독립영화제 때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했는데 나는 분명 그 영화를 봤기 때문에 아트시네마가 개관한 2002년부터 극장을 다녔던 것이다. 2005년부터인가는 번역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 때 부업으로 영화제 상영 번역일을 하고 있었는데, (아트시네마에서) 자원 활동을 하고 싶어서 번역 후원회원을 뽑을 때 지원을 했는데, 기대도 안 한 추급을 조금 주시더라. 어, 번역비도 있고 영화도 볼 수 있네? 해서 신나게 번역일을 했다. 그러다 2009년과 2010년에 영진위 사태로 극장이 난리 났을 때 나는 프레시안에서 기자를 하고 있었다. 내가 알던 곳, 좋아하던 곳에서 일이 터지니까 그 때 관련 기사를 분기탱천해서 열심히 썼다. 내가 알고 있는 곳이니까 기사가 많이 써지더라. 기자를 그만두었던 차에 극장에서 불러주셔서 이곳에 왔다. 2011년 9월부터 일을 하기 시작했다. 좀 더 있으면 만 2년이다. 극장에서 오래 일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오랫동안 관객이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러면 일을 하면서 가장 난감한 경우는 무엇인가. 혹은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상황.

여러 가지가 있다. 기껏 잘 수급을 해서 프린트를 가져왔는데 프린트 상태가 정말 엉망이거나… 그럴 땐 죽고 싶다. (웃음) 저번에는 프린트를 들여왔는데, 새빨갛게 변색이 되었다. 이번 상영작 중에도 변색이 된 작품이 있다. 그런데 그 프린트는 정말 도저히 못 볼 정도였다. 그 때 다행히 여유가 조금 있어서 필름을 찾았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미친 듯이 찾아서, 다행히 재빠르게 필름을 다시 들여올 수 있었다. 또, 지난주처럼 사람이 굉장히 많이 와 있는데 전산장애 때문에 난리가 날 때. 추운 날씨에 밖에서 관객들이 모두 덜덜 떨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진행에 문제가 생기면…. 마주치고 싶지 않은 상황이지만, 사실 극장이라면 일어날 수도 있는 일들이다. 영화를 들여오고도 그 영화를 제대로 상영할 수 없을 때 제일 슬프다. 게다가 그게 굉장히 고생해서 수급을 해 온 영화이면 뒤로 넘어간다.

 

프로그래머 일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와 사람-영화인 또는 관객-이 있는지.

극장에서 상영했던 영화 중에서는…. 내가 10년 전쯤에는 “내가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을까?”하며 거의 포기했던 영화들을 우리 극장에서 모두 볼 수 있게 됐다. 내가 20대 때는 “가위를 쥔 자들의 손목을 부러뜨려라”라는 구호가 나돌 정도로 검열이 워낙 심해서 영화가 조금 야하다 싶으면 잘려 나갔다. 폭력이든 섹스가 되었든 일단 영화가 잘리면 거기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비디오로 안 좋은 화질로 보던 영화들을 내 평생 극장에서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보고 있지 않나. 불과 10년, 15년 만에 모든 영화들을 스크린에서, 35mm 필름으로 보는 게 일상처럼 되어버린 거다. 그래서 우리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은 다 특별한데, 정작 극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너무 일이 바빠서 영화를 잘 보지 못한다. 또 우리 극장은 일반적인 극장처럼 서비스 종사자들과 ‘왕’인 고객님, 이런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관객들도 내 극장이라고 생각하는 동지와 동지의 관계라고 생각한다.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라고 확신을 하는 게, 평소에도 극장에 자주 오시는 분들이 ‘수고한다’며 자꾸 뭘 사주신다. 작년엔 10주년이라고 무슨 행사 때마다 케이크를 주시고 가는 바람에 평생 먹을 케이크 보다 더 많이 먹었다. 뿐만 아니라 지난주에 전산사고가 났을 때도 힘들게 기다리는 와중에도 스태프들에게 “추운데 고생이 많다”고 위로를 해주시는 거다. 이런 극장이 어디 있겠나. 나뿐만 아니라 극장에 오시는 관객 분들도 ‘여기는 내 극장’이라는 생각을 하신다. 어느 관객이 딱히 기억나기 보다는 그런 관객 분들이 많다. 좋은 영화들을 볼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을 함께 지켜나간다는 동지 의식이랄까.

 

 

 

 

일을 하면서 영화에 대한 마음가짐이나 태도 같은 게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애증? (웃음) 프로그램 일을 하면서 영화를 일로 만나는 부분이 있고, 동시에 나는 또 우리 극장의 관객이기도 하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인데,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면 그로 인해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쾌감과 동시에 끔찍하고 지긋지긋한 짜증이 있다. 정말 좋아하는 영화인데 일정이 틀어지거나 그러면, “아, 이 영화는 제목도 보기 싫다.” 싶기도. (웃음) 그런데 그건 순간인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는 한다. 그래서 특별한 영화들이 많다. 남들은 모르는 그 영화와 나만의 추억. 힘든 것도 지나면 추억이 되니까. 그런데 프로그램 팀에서 일을 하면서 느끼는 건, 영화 한 편이 상영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동이 투입되는가이다. 그냥 관객일 때는 잘 모르다가 극장에서 일하기 시작하니까 (관련된) 모든 일들이 신경 쓰인다. 그래서 영화가 1시간 반 동안의 환상적인 경험일 뿐만 아니라, 그걸 만들어 내기 위해 인간의 노동이 투입되는 ‘노동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특별한 것 같다.

 

일에 대해서 ‘꿈’꾸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많다. 이 감독 특별전 하고 싶다, 이런 게 굉장히 많다. 예를 들어 작년 부산에서 해버려서 엄청나게 질투를 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전. 그리고 마틴 스콜세지 전작전도 언젠가는 하고 싶다. 마틴 스콜세지는 지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초기작들을 극장에서 보기 힘든 면이 있다. 스콜세지의 데뷔작이나 <특근>, 초반의 코미디 영화들을 좋아한다. <비열한 거리>나 <분노의 주먹>은 상영한 적이 있지만, 스콜세지의 귀여운 소품을 상영한 적은 많지 않다. 아, <용서받지 못한 자>를 극장에서 보고 싶다. 옛날에 개봉했을 때 보지 못했다. 전 세계적으로 80, 90년대 영화들이 재조명 받는 시기인데, 그 때의 영화들을 극장에서 다시 보면 어떤 느낌일까 싶다. 또 아프리카 영화들이 한국에서 개봉된 예가 없진 않지만, 사람들이 잘 모른다. 예전에 전주영화제 디지털 삼인 삼색에서 아프리카 출신 감독들 세 명을 초청했을 때 언젠가는 아프리카 특별전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또 우리 극장에서 존 포드나 세르지오 레오네를 자주 틀다보니 ‘남성적 이미지가 강하다’는 오해가 있기도 하다. 여성주의적인, 여성 관객의 입장에서 새로이 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해보고 싶은 개인적인 바람도 가지고 있다.

 

진행: 배동미, 지유진 / 관객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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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oimyeon 2013.02.12 13: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도 스콜세지 영화 중 <특근>을 제일 좋아라 한다죠. 그 첫 시퀀스부터 나오는 카메라의 엄청난 무빙을 극장 스크린으로 볼 수 있다면 그것만치 행운도 없을듯..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