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무라 쇼헤이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영화는 광기의 여행’이라 말한 적이 있다. 그런 광기에 가장 어울리는 작품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신들의 깊은 욕망>(1968)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그의 혼신이 담긴 괴작이자 최고의 작품이며 전환점에 놓인 작품이기도 하다. 무대는 일본 열도 남단의 오키나와 근처의 가공의 섬. 일본이 가진 낡은 습속이 이곳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무엇보다 낡은 샤머니즘이 여전히 있어서 무녀가 몰아지경의 상태에서 신의 소리를 들어 그것을 사람들에게 고지하면 주민들은 그 말에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이런 외딴 곳에도 산업화의 바람이 불어온다. 섬에는 비행장을 만들고 관광객을 들이는 계획이 진행된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위대함은 본토에서 떨어진 작은 섬마을 공동체의 성스러운 의식들을 지극히 느리게, 하지만 숨 막힐 정도로 공포스럽게 그려낸다는 점에 있다. 특히나 영화 말미에 나오는 장엄한 제의적 죽음의 장면이 압도적이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오키나와에 대한 관심이 이곳 주민들이 ‘호모 루덴스’에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비롯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들은 모던한 일본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이다. 하지만 당시 이마무라 쇼헤이가 이상적인 일본 민주주의를 하나의 환영에 불과한 것으로 바라봤던 것을 떠올려보면 이들이야말로 더 현실적인 사람들이었고 모던한 일본을 비판할 수 있는 원형의 사람들이었다. 그는 마을의 정신적인 연대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유지되는지, 그러기 위해서 낡은 신앙이 어떻게 이용되는지, 그리고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가 그것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배제하고 말살하는지 보여준다. 이런 몰살의 의식을 고려하면 영화에 나오는 상어와 돼지의 조우는 꽤 우화적인 설정이라 할 수 있다. 배에 실린 돼지들의 농담처럼 평안한 모습과 이어지는 상어의 습격은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지극히 무감한 카메라의 응시로 표현된다. 아주 취약한 죽음이 벌어지는 것과 이에 대한 카메라의 무감한 응시는 희생자를 구제할 길은 없다는 것과 그들의 운명을 상기시킨다. 돼지가 가라앉고 푸른 배경 위에 붉은 오점이 남는다. 앙트안 드 베크가 지적하듯이 이 시퀀스에는 인간의 감정도, 상황의 스펙터클도 없다. 카메라는 이 고요한 응시를 영화 내내 유지하는데, 그것이야말로 이마무라 쇼헤이의 위대함이다. 인간은 여기서 피를 흘리는 작은 돼지이다.

<신들의 깊은 욕망>은 일본영화가 이제 막 변혁의 시기로 치닫던 때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1968년은 여전히 영화의 혁명을 믿을 수 있었던 시기였다. 오시마 나기사는 쇼치쿠를 뛰쳐나가 독립제작사인 ‘창조사’에서 <일본 춘가고>, <교사형>, <돌아온 주정뱅이>등을 만들었고, 이마무라 쇼헤이는 <돼지와 군함>, <일본 곤충기>, <붉은 살의>, <인류학 입문>을 거쳐 <신들의 깊은 욕망>에 이르러서는 닛카츠를 떠나야만 했다. 영화가 사회와 대치하고 국가라는 환상과 대항하던 때였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이 영화 이후에 근 십년간 영화작업을 제대로 못했지만 촬영소의 붕괴와 영화사의 몰락 이후 갈 곳 없어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영화학교를 개설하기도 했다. 1975년에 개관한 ‘요코하마 방송영화 전문학원’(이 학교는 1986년에 요코하마에서 가와사키로 이전해 일본영화학교로 개칭했고 2011년 4월, 일본영화대학의 모체가 되었다)은 현역 감독, 극작가, 카메라맨, 녹음기사 등이 실제로 영화를 만들며 일의 방식을 배우는 학교였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광기의 여행’은 일본영화의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글/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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