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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소식

왜 관객들은 시네마테크 지키기에 나섰나

[인터뷰] 시네마테크 지키기 운동을 하고 있는 강민영씨


이 글을 쓰기 전에 먼저 솔직하게 고백할 것이 있다. 나는 지난 8년 동안 영화사이트를 운영했다. 하지만 지난해 1월,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한국독립영화나 예술영화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지극히 평범한 영화 관객이었단 소리다. 즐겁고 재밌는 영화를 주로 봤기에 크게 다른 부분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었다.

누군가 나에게 "영화를 폭넓게 봐야한다"고 충고하면 "스스로가 즐거워지는 영화만 보면 된다"고 응수했을 정도다. 이렇게까지 무덤덤한 관객이었던 '나'조차도 지금은 한국독립영화와 예술영화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하지만 나를 이렇게 만든 시발점이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추진한 부당한 공모 때문에 문을 닫게 된 인디스페이스와 미디액트 사건 때문이라는 점이 조금 우스울 뿐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상식'이란 단어를 많이 쓰고 듣는다. 이 단어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 일반적 견문과 함께 이해력, 판단력, 사리 분별 따위가 포함된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 만약 상식적인 선에서 어떤 일을 처리했다면 지금과 같이 수많은 독립영화인들과 평범한 영화관객들이 반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식조차도 없는 행동을 버젓이 한 이들이,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해 부철 주야 노력해야 될 영진위라는 사실이다.

인디스페이스, 미디액트도 모자라 시네마테크까지?


사정이 이렇다보니 편안하게 영화를 관람해야 될 관객들이 오히려 영진위의 '상식'을 벗어난 공모에 반발하여 '시네마테크 지키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전영화와 예술영화의 안정적인 상영을 위해 지난 2002년 시작된 '시네마테크 사업'은 사업 초기부터 쭉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이하 한시협)가 운영해왔다. 그런데 영진위가 지난 10일, 서울 종로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새 운영자를 공모하고 나선 것이다. 현재 한시협은 공모 불참을 결정한 상태고, 공모 마감일인 18일까지 응모한 업체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조금이라도 상식적인 선에서 공모제가 진행됐고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었다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인디스페이스와 미디액트 공모가 잡음 없이 상식적인 선에서 이루어졌다면 독립영화인들뿐만 아니라 관객들까지 나서서 반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재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문방위)에서 인디스페이스와 미디액트 그리고 시네마테크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을 보면 어떠한 경우에도 현 영진위는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아트시네마 지키기 위한 관객들의 활동은 지금도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현재 서울아트시네마 공식카페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활동이 이어지고 있는 상태다.

 

그렇다면 왜 일반관객들까지 이렇게 서울아트시네마를 지키기 위해 나선 것일까. 현재 시네마테크 지키기 운동을 하고 있는 강민영씨와 19일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이 인터뷰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시네마테크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정말 기초적인 질문부터 시작하였다.

 

시네마테크 살리기, 관객들이 직접 나섰다




- 시네마테크의 유래와 목적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려주십시오.

 

"시네마테크는 2002년 1월 전국 15개의 시네마테크 단체들(강릉시네마테크, 광주시네마테크, 대구시네마테크, 문화학교서울, 서울아트시네마, 퀴어아카이브, 시네마테크 대전, 시네마테크 부산, 시네필 전주, 청주시네오딧세이, 영화사 진진, 제주 씨네아일랜드,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이 사단법인을 받아 출범한 단체입니다. 시네마테크는 영화의 문화적 가치를 인식하고 영화문화의 다양성을 보장할 토대를 확장하기 위해 비영리 상영관으로 출범했습니다. 그중 서울아트시네마는 서울 유일의 비영리 시네마테크 전용관으로 교육과 문화적 목적으로 영화를 상영하고 있습니다. 2002년 5월부터 지금까지 소격동 아트선재센터를 거쳐 현재 낙원상가 4층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관객들이 직접 나서서 서울아트시네마 살리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처음 이 운동이 제안되었고 시작 되었는지 이이기 해주십시오. 여태껏 나온 언론 보도를 보면 원래 시네마테크 사업 자체가 2002년 민간사업으로 시작되었고, 영진위에서 보조 해준 예산은 전체 30%에 불과한 4억5000만원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체 예산의 일부에 불과한 30% 예산을 보조해준 영진위가 시네마테크를 공모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인 선에서 이해되지 않는데요. 왜 시네마테크 공모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인지요.

 

"2009년 시작된 관객서명운동과 2010년 2월 시작된 관객모금운동 모두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것입니다. 인터넷카페 서울아트시네마를 통해 관객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했고 그것에 대한 답으로 시네마테크를 지키기 위한 운영비 모금운동을 하자는 결론이 나온 겁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저희도 상식적인 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형국입니다.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는 1999년 문화학교 서울 때부터 민간단체로 운영되었고, 영진위는 30% 위탁후원을 해주고 있었는데, 지난해에 돌연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서 참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영진위는 일종의 사업파트너라고 할 수 있는데, 사업파트너가 사업운영주체의 의견과 전혀 상관없이 공모를 진행한다고 했습니다. 관객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이에 관객들은 영진위가 서울아트시네마를 흔드는 것이 위기라 생각해서 즉시 서명과 모금 등 행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시네마테크 살리기에 16일 동안 3천만원 모여

 

- 위의 질문과 연계되는 질문 같습니다. 왜 시네마테크가 현재와 같은 온전한 모습으로 존재해야 되며, 영진위에서 시도하고 있는 공모제가 되어서 안 되는지 이유를 말해주세요.

 

"사실 우리 관객들은 (영진위가)시네마테크가 온전한 모습으로 상영을 할 수 있게끔 도움을 주기는커녕, 서울아트시네마 자체를 억압하려는 듯 행동하는 것을 참을 수 없습니다. 일단 서울아트시네마는 2002년부터 운영되어오긴 했지만 8년이 지난 지금까지 소격동에서 낙원동으로 집을 옮겨 다니며 셋방살이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관객들의 최대 바람은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생겨서 정부 혹은 기업의 후원으로 말 그대로 '온전한' 상영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진위의 공모제 주장은 예술과 문화의 논리로 받아들여야하는 시네마테크의 프로그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냥 강행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현재 독립영화전용관 프로그램만 봐도 사업자들이 지난 20년간의 독립영화 체제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실행을 하면서 결국 시작부터 흔들리고 있습니다. 일단 다른 이유를 제치고서라도 영진위가 '공모제' 자체를 주장하는 건 많은 분들이 '상식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듯이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공모제 이야기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것들입니다."

 

- 영화에 대한 큰 애정이 없다면 이렇게 자발적으로 나서서 시네마테크 지키기 운동을 전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현재 시네마테크 지키기 운동 모금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1월 30일부터 19일 현재까지 16일차 모금을 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모인 금액은 약 3천만 원 정도입니다(1년치 CMS후원으로 환산하면 5600만 원정도). 관객들뿐만 아니라 배우, 감독, 영화단체들도 도움을 주고 있으며 지금까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시네마테크를 모르던 분들도 한 푼 두 푼 모아 모금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모금운동 참여는 직접 서울아트시네마에 와서 작성하고 후원하는 방법도 있으며, 인터넷을 통해 후원회원에 가입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현재 관객모금운동을 진행하는 강민영이나 장지혜에게 연락을 하셔서 대리 신청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극장으로 직접 오셔서 하는 것입니다."

 

멀티플렉스에서 할 수 없는 것들, 여기 있다

 

- 시네마테크는 관객들의 의사소통이 주가 되는 공간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런 의사소통을 통해 관객들이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얻지 못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시네마테크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시네마테크의 가장 큰 매력은 극장에서 결코 볼 수 없는 고전들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곳은 영화라는 일차적인 것을 떠나서 상식적인 감성이 있는 공간입니다. 멀티플렉스에 비하면 사람 사는 곳 같은 느낌이 듭니다. 영화의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 사이에는 무언의 영화에 대한 소통 혹은 영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의 영화체험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은 오랜 시간에 거쳐 만들어져 온 것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까지 멀티플렉스에서 영화를 보다가 우연히 시네마테크를 발견했고 단박에 이곳에 매료된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 강민영씨에게 시네마테크란 어떤 의미인가요.

 

"제게 시네마테크는 영화를 배워나가는 공간과 같습니다. 물론 이곳이 영화의 박물관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시네마테크를 통해 저는 전혀 새로운 영화를 만났으며, 현재 대학생 신분이지만 이곳에서 영화비평 관련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영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많은 관객들도 저와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어떤 것에도 타격을 받아서는 안 되는 장소이자 공간입니다."

/ 제상민 오마이뉴스 기자

[출처] 오마이뉴스 2010년 2월 20일 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27132&PAGE_CD=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