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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시네바캉스 서울

[오픈토크] "우리 시대의 불안과 공포: 이게 사는 건가?"

‘2012 시네바캉스 서울’ 영화제가 시작된 첫 주 주말이었던 지난 7월 29일 오후, 존 카펜터의 <괴물> 상영에 이어 변영주, 이해영 두 영화감독이 진행자로 나선 세 번째 오픈토크가 열렸다. 이번 토크의 주제는 ‘우리 시대의 불안과 공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고 초대손님으로는 공포영화에 대한 식견이 풍부한 허지웅 영화평론가와 <습지생태보고서>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만화가 최규석 작가가 함께했다. 그 날의 이야기를 일부 옮긴다.

 

 

변영주(영화감독): 오늘 이 자리는 구성이 재밌다. 공포영화 전문가 허지웅 평론가와 현재 공포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이해영 감독, 그리고 공포영화를 잘 안 보고, 안 좋아하는 최규석 작가와 제가 함께 하게 됐다. (웃음) 최규석 작가님은 <괴물>을 어떻게 보셨는지.

최규석(만화가): 재밌게 봤다. 외계인 얘기는 왜 나오며 괴물들의 목적은 대체 뭔지, 안 풀리는 떡밥들이 너무 많아서 헷갈리긴 했다.

허지웅(영화평론가): 공포영화는 늘 그 시대의 가장 무서운 것들을 끌어온다. 존 카펜터의 <괴물>(1981) 이전에 하워드 혹스의 <괴물>(1951)이 한 편 더 있다. 이 두 영화는 둘 다 존 캠벨의 「거기 누구냐?」는 중편소설이 원작이다. 하워드 혹스의 영화가 다루는 것이 외부로부터 온 우리와 다른 것, 당시로서는 공산주의, 즉 레드 콤플렉스에 대한 메타포였다면, 존 카펜터의 영화는 우리 사이에 언젠가부터 같이 존재해왔지만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어떤 다른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피아를 식별할 수 없다는 것에서 오는 공포라고 할 수 있다.

이해영(영화감독):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그냥 좋아하는 게 아니라 존경한다. 초반에 괴물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와 긴장감을 구현하는 데에 있어서 교과서적인 연출을 보여준다.

변영주: 이 영화에서 신기했던 건, 보통의 신체강탈자가 굉장히 공격적인 반면 이 영화에서의 변이된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시치미를 떼거나, 자신들도 전혀 모르고 있다.

허지웅: 캠벨의 원작 소설에서 인물은 외계인에게 자기 몸을 뺏기고 나면, 자신이 외계인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인간일지, 그렇다면 내가 스스로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이해영: 최규석 작가님은 공포영화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하셨다. 이런 식의 신체강탈에 관한 이야기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최규석: 어렸을 때는 필립 K. 딕 소설 처럼, 과거 S.F.소설들에서 자기 정체성의 고민에 대한 이야기에 많이 공감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현실이 아닌 요소에 대해선 흥미를 느끼지는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실 영화를 보면서 놀래지 않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공포영화를 볼 때 느끼는 감정의 기복보다 훨씬 더 담담하게 본다.

이해영: 워낙 작가님의 만화가 현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이런 종류의 영화들은 작가님의 작품 성향과는 정반대에 있는 것일 수 있겠다.

최규석: 오히려 침입으로 인한 공포 같은 것 보다, 굉장히 작은 실수로 인해서 편하게 살고 있던 자신의 인생이 꼬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런 것이 제겐 가장 큰 공포인 것 같다.

허지웅: 개인적으로 끔찍한 장면이 아니라, 어떤 상황이나 대사에서 공포를 느낄 때가 많다. <신체강탈자의 침입>(1956)에서 주인공이 마지막에 ‘그들이 여기에 있다’고 끊임없이 외치는 장면이 있다. 갑자기 화면을 향해 달려오면서 관객을 바라보며 소리 지르기 시작하는데, 너무 소름끼쳤다. 약간 초현실적인 느낌이었다.

 

 

변영주: 저는 타임슬립이 무섭다. 내가 가고 싶은 시대로 가면 상관없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는 공포다.

이해영: 요즘 유독 타임슬립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지금 복고라는 코드가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이 시대에 소외 받거나 결핍되었다고 느끼는 것을 과거의 낭만이나 추억으로 보상받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는 것 같다.

허지웅: 원래 사람들이 불행하면 과거를 끄집어낸다. 반면 행복하면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우리가 닿을 수 없는 공간, 우주 같은 곳에 가보자는 프런티어 정신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요즘 한국 사회는 굉장히 불행한 것 같다.

이해영: 타임슬립이라는 코드는 굉장히 슬픈 것이다. 현재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허지웅: 70년대 후반 이전까지는 영화에서 괴물이 카리스마를 가진 독자적이고, 개별적인 존재였다. 그런데 70년대 후반 갑자기 좀비라는, 군중으로서의 괴물, 무리로서의 괴물이 나타났다. 그게 한 때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여러 텍스트 속에서 변형되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부분이 의미심장하다. 사실 어느 사회든 괴물은 소수이기 때문에 지탄을 받게 된다. 그런데 만약에 괴물이, 좀비가 절대다수가 되고 나 혼자 사람으로 남게 된다면,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때 누가 괴물일까. 이번 상영작 중 하나인 <지상 최후의 사나이>라는 영화는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최규석: 카리스마적인 괴물이라고 한다면 위에서 군림하는 권력 혹은 외부의 적일 수 있는데, 이후에 누가 괴물인지 알 수 없게 되는 상황은 그만큼 민중들 사이에서의 신뢰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에 우리가 뭔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라는 불신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허지웅: <괴물>에서 피아식별이 안 되는 것에서 오는 공포도 그렇고, 그런 것들을 계속해서 더 많이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사실 우리는 주변에 적, 또는 적은 아니더라도 나와 생각이 너무 많이 다른 사람들과 뒤섞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이 느슨한 계율에 의해서, 이를테면 같은 정당이라는 이름으로 묶여버리고 그러다 이제 와서 어떤 식의 커밍아웃에 의해 굉장히 큰 분쟁을 만들어내게 된다.

최규석: 그런 것 보다는 좀 더 근본적인 형태의 공포인 것 같다. 어떤 지역사회에서 사람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을 때가 아닌, 도시에 나와서 따로따로 살게 되면서 갖는 타인에 대한 근본적인 공포가 생겨난 것이다. 예전에는 우리는 같은 사람이라는 식의, 집단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존재했었는데, 그런 신뢰 자체가 깨져버린 상황이 아닐까.

 

 

허지웅: 그런데 그런 신뢰라는 것이 존재한 적이 있었을까.

변영주: 그런 신뢰라는 것은 없었다고 생각된다. 영화로 보면 <마더>가 굉장히 상징적으로 느껴진다. 공동체, 관계, 신뢰, 혈연이라는 것들이 폭력적인 것이고, 원시적이고 괴물 같은 것, 무서운 것을 야기한다는 것을 보여줬던 것 같다.

허지웅: 갈수록 공동체의 가치에 대한 신념을 현실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야기 속에서 찾고 있다고 생각된다. 사실 <다크 나이트> 3부작 같은 경우도 내내 공동체에 대한 우려에서 출발해, 매번 어떤 신념이 깨어졌을 때 다른 신념으로 대체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래서 좀비영화 같은 경우 급진적인 대안으로서의 공포물을 제시한 것이 아닐까 싶다.

 

허지웅: 이 영화의 특수효과는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날로그 특수효과를 사용했다. 얼마 전에 나온 <괴물>의 프리퀄 영화에서는 괴물을 CG로 처리했는데, 정말 너무 안 무서웠다.

이해영: 영화에서 시각효과의 날이 무뎌지기 시작한 건 영화인들이 CG가 만능이라고 믿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시각효과는 실제로 어떤 물건을 만들어 놓고 찍은 것이기 때문에 가상의 그래픽이 절대 대체할 수 없다.

최혁규: 특수효과 보다도 디자인이 정말 훌륭한 것 같다.

허지웅: 특수효과와 디자인을 모두 롭 보틴이 담당했다. 상대적으로 이름은 덜 알려져 있지만, <로보캅>이나 <세븐>, <파이트 클럽> 등의 영화를 했었다. 훌륭한 장인이다.

최규석: 특히 개가 갈라지는 장면은 정말 인상 깊었다. (웃음) 보통 괴물이라고 하면, 원래 존재하는 생물의 디자인을 변형하거나 결합하는 형태로 만들게 되는데, 이 영화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던 맥락과 전혀 다른 형태가 나온다. 창조적이다.

 

관객1: 이런 장르의 영화들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 않다. 혹시 추천하는 공포영화가 있나.

허지웅: 가장 좋은 건, 영화의 원작들을 찾아보면서 비교해보는 방식이다. 만약 오늘 존 카펜터의 <괴물>을 보셨다면, 하워드 혹스의 이전 작품을 찾아보시고, 두 영화의 원작 소설을 같이 찾아본다면 정말 재밌다. <신체강탈자의 침입>의 경우, 50년대 돈 시겔 감독과 70년대 필립 카우프만 감독의 버전이 있고, 최근에는 다니엘 크레이그와 니콜 키드먼이 출연한 <인베이젼>이 있다. 원작 소설인 잭 피니의 『바디 스내쳐』도 번역이 되어 나와 있다.

 

관객2: 최근 공포 영화의 경향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변영주: 미야베 미유키의 신작 소설에서 주인공 여자아이는 원한을 가진 영혼이 누군가에게 들려져 있는 상태를 해결하는데, 그녀에게 어떤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녀가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 때문이다. 그 점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일본사회는 이제 공포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듣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는, 최근에 영미권 장르작가들의 단편을 모아 펴낸 책을 읽었는데, 종말을 묘사하는 방식이 특징적이다. 이전과 같은 거시적인 방식이 아니라 아주 내밀하고 사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정리: 장지혜(관객 에디터) 사진: 황초희(자원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