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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Feature

[관객에디터의 선택] 지극히 개인적인 우리들의 추천작

 

 

 

시네마테크의 친구들로 새롭게 합류한 올해의 관객에디터 7명이 이번 ‘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상영작 들 중 추천작을 꼽았다. 그들 각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추천작들이다. 이미 본 영화들도 있고 새롭게 극장에서 만나기를 기대하는 작품들이다.

 

 

 

송은경(관객에디터)

우디 앨런 <카이로의 붉은 장미>(1985)

마스무라 야스조 <세이사쿠의 아내>(1965)

 

극장에서 우디 앨런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를 보고 나오면 내가 마치 영화 속 주인공 세실리아(미아 패로우)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세실리아의 클로즈업으로 가득 찬 거대한 스크린을 직접 마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오른다. 또한 이미 본 영화라 할지라도, 극장에서의 관람이라면 영화 속 내용과 영화 밖의 현실이 묘하게 중첩되어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좋은 영화는 물론 집에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극장에서 커다란 스크린으로 감상해야 영화가 주는 감각을 온전하게 누릴 수 있는 영화들이 있다. 내 경우엔 시네마스코프 비율로 찍힌 영화들이 그렇다. 그리고 서울아트시네마는 시네마스코프 영화를 정말 ‘제대로’ 감상하기 좋은, 서울 내 몇 안 되는 극장 중 하나이다. 마스무라 야스조의 <세이사쿠의 아내>는 그의 다른 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2.35:1의 화면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매우 아름다운 이미지들을 만들어낸다. 그 이미지들에 압도당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배동미(관객에디터)

알란 파커 <페임>(1980)

애드리안 라인 <플래시댄스>(1983)

 

2013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상영작 중 알란 파커의 <페임>과 애드리안 라인의 <플래시댄스>를 추천하고 싶다. 예술고등학교와 무용학교를 배경으로 한 두 영화를 비교하면서 봐도 재밌을 것 같다. <페임>의 경우 연기, 음악, 무용 등 다양한 예술 장르들이 펼쳐지는 반면 <플래시댄스>는 무용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두 영화 모두 아이린 카라의 노래가 흐르고, 3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적 차이를 두고 탄생한 만큼 80년대 특유의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두 영화 모두 개봉당시 국내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1983 11월자 동아일보에는 <플래시댄스> 히트로 디스코 음악도 인기라며, ‘몇 년 전만해도 디스코 음악에 염증을 느끼던 대중이 영화의 히트로 음악에 대한 기호도 달라졌다.’고 당시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1 19일 토요일에는 가수 이자람의 <페임>의 상영후 시네토크와 2 2일 토요일에는 이명세 감독의 <플래시댄스> 시네토크도 준비되어 있다.

 

 

지유진(관객에디터)

마스무라 야스조 <세이사쿠의 아내>(1965)

알란 파커 <페임>(1980)

 

마스무라 야스조의 세계에 한 번 발을 들이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결코 무심히 지나쳐버릴 수 없다. 그만큼 강렬하다. 매 컷마다의 완벽한 화면 구도, 시야를 꽉 메우는 육체, 인물들 간의 절절한 욕망 등이 뒤섞여 영화관 안의 공기를 데워줄 것이다. 야스조 감독의 전작 <아내는 고백한다> <만지>에서도 열연했던 와카오 아야코가 이 작품에서 다시 한 번 정점을 찍는다. 그녀의 가느다란 얼굴선에서 독기가 뿜어져 나올 때엔 무의식적으로 숨을 멈추고 지켜보게 된다.

“난 예술학교가 좋아. 왕따도 없고, 모두 개성이 넘치거든” 이 말이 맞든 아니든 간에, <페임>은 각자의 가장 천진한 시절을 돌이켜보도록 만든다. 식탁에서 박자를 맞추기 시작해 모두가 거리로 쏟아져 나가는 장면과 함께,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졸업식 장면은 예술학교 학생들이 한 번쯤 꿈꿔보는 유토피아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정확히 1980년도에 개봉한 이 영화는 80년대를 관통하여 펼쳐질 댄스 팝 세계의 전조를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박민석(관객에디터)

가이 매딘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2003)

우디 앨런 <카이로의 붉은 장미>(1985)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의 묘미는 누군가가 선택한 영화를 극장에서 본다는 것 자체에 있다. 영화제에 참여하는 감독, 평론가, 혹은 관객들 중 다수는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스크린으로 보기 위해서 그 영화를 선택했다. 여기서 방점은 ‘스크린’에 찍힌다. 그 영화를 ‘스크린’으로 봐야 하는 각자의 이유들이 존재할 것이고, 영화제 기간 동안 마련된 시네토크를 통해 그 이유를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선택한 수많은 영화들 중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 할 두 편의 영화가 있다.

첫 번째 추천작은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이다. 캐나다 감독 가이 매딘이 2003년에 연출한 이 영화는 8mm로 찍힌 무성영화다. 더 좋은 해상도로 영화를 보기 위해 70mm 규격의 아이맥스 상영관을 찾는 현재에 8mm 영화를 보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는 선명한 화질로 보는 것보다 필름의 거친 질감을 경험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영화이다. 파편화된 동작들, 이따금 뒤섞이는 현재와 미래, 그로테스크한 이야기에 더해 악몽 같은 비전을 완성시키는 것이 바로 8mm 필름의 거친 입자이기 때문이다. 다른 추천작은 우디 앨런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 이 영화에 대한 소개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대신하려 한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에 대한 영화를 극장에서 보면 어떤 기분일까?

 

최혁규(관객에디터)

가이 매딘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2003)

토니 갓리프 <라초 드롬>(1993)

 

가이 매딘의 작품을 스크린으로 보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물론 몇몇 영화제에서 그의 영화를 소개한 적이 있기 때문에 마니아층은 생기긴 했으나,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영화를 지속적으로 소개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조금만 찾아봐도 알 수 있듯이 <김리 병원 이야기>, <세계의 심장>, <드라큘라의 춤>, <나의 위니펙> 같은 작품들은 그 유명세도 매우 독특해서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다. 혹시 그의 작품이 기존의 내러티브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다소 실험적인 영화라 그럴까? 유성영화 시대에 무성영화를 만들고 있어서일까? 컬트적인 감성을 가진 이미지와 특유의 리듬감이 거북해서일까? 전작들에서 그러했듯, 가이 매딘은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에서 발레, 연극, 인형극 등에 대한 그의 관심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이 영화에 보기 전에 지레 겁먹을 필요가 전혀 없다. 오히려 단단히 각오할수록 영화를 온전히 즐기기 더 힘들 것이다. 강박적으로 해석하려 하면 이 작품은 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스크린 위로 펼쳐지는 흑백 영상들의 특유의 속도감을 그대로 따라가며 영화에 자신을 맡겨라! 그러면 이 영화가 주는 매혹적이고 섬세한 영상을, 그리고 영화라는 매체의 물성을 흠뻑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토니 갓리프는 <추방된 사람들>이라는 영화로 국내 관객들에게 더 유명할 것이다. 프랑스에서 작업하고 있는 알제리 출신의 감독으로 그는 집시 부모에게서 태어나 집시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자신의 뿌리와 현재에 대한 탐구를 고스란히 그의 작업에 담아낸다. 이런 그가 본격적으로 집시의 운명에 대해 다룬 영화가 바로 <라초 드롬>이다. 이 영화는 천 년 전 알 수 없는 이유로 북인도를 떠난 집시들이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조망한다. 집시들의 음악과 화려한 춤을 카메라에 담아내고 있는 작품은 관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기에 충분하다. ‘라초 드롬( latcho drom: safe journey)’을 우리말로 옮기자면 ‘안전한 여행’ 혹은 ‘무사한 여행’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텐데, 이 영화는 방랑할 수밖에 없는 집시들의 운명의 안녕을 기원한다. 영화 내내 우리를 사로잡는 집시들의 노래와 춤은, 항상 떠돌아야만 하는 그들의 운명이 무사하길 바라는 의식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라초 드롬>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제의 행위이다.

 

 

 

김경민(관객에디터)

레오 맥커리 <내일을 위한 길>(1937)

장선우 <우묵배미의 사랑>(1990)

 

못내 그리던 영화의 상영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가 감상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던 순간. 별 기대 없이 들어 간 극장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며 잊을 수 없는 영화 한 편을 새기게 된 순간. 혹은 고대하던 영화에 그만큼의 감동을 느끼며 만족스럽게 엔딩 크레딧을 보는 순간. 이 시간들은 우리의 기억에 어떤 식으로 변형되어 남겨질까. 모든 영화는 나름의 기억을 남기겠지만 유독 그 이후가 궁금한 영화 두 편을 꼽아보았다.

첫 번째 영화는 시네마테크의 선택작이기도 한 레오 맥커리의 <내일을 위한 길>이다. 쓸쓸한 사연을 담담하고 정직하게 그려내는 이 작품은, 자칫 악인으로 보일법한 인물들의 사연마저 끌어안는다. 특히 눈부셨던 영화의 댄스홀 장면을 함께 기억할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두 번째 영화는 윤성호 감독의 추천작 장선우의 <우묵배미의 사랑>이다. 김태용 감독은 2008년 친구들 영화제에서 이 작품을 추천하며 “영화가 사람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보다 아름다운 추천의 말이 또 있을까. 여관에서 사랑하는 이의 양말을 빠는 공례(최명길)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사랑은 육체로 표현되는 사랑과는 또 다른 감정을 전해주리라 믿는다.

 

 

 

장지혜(관객에디터)

장 피에르 멜빌 <그림자 군단>(69)

보이체크 하스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64)


<그림자 군단>은 멜빌 특유의 단호함이 가장 묵직하게 다가왔던 영화였다. 인물들은 어떤 타협이나 망설임 없이 자신들의 방식과 규칙을 고수한다. 감금과 고립이 반복되는 ‘출구 없음’의 상황임에도, 염세주의적인 시선 보다는 인물들의 완강함, 더불어 멜빌의 단호한 미학적 태도에 매혹된다.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는 제목도, 감독도 모두 낯설지만 ‘폴란드의 가장 위대한 컬트영화’라고 알려져 있는 작품. 원작은 18세기 폴란드의 얀 포토츠키의 소설이며, 원고 소실로 오랜 시간 동안 잊혔다가 초현실주의자들 등에 의해 ‘판타지 문학의 걸작’으로 재평가 된 작품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하나의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있고, 그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그리고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이어지는 원작의 액자식 구성이 영화로 옮겨왔을 때의 결과물이 궁금해진다. 영화야말로 여러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동시에 발생하고, 연결되면서 빚어내는 매혹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