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처럼 짜릿한 키스신도 찐한 베드신도 없지만 <마이 페어 레이디>(1964)는 달콤하고 귀여운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 영화다. 여자를 인생에 들여서는 안 된다는 자기중심적이고 괴팍한 음성학 교수 헨리 히긴스(렉스 해리슨)가 품위 있게 말하는 꽃집 점원이 되겠다며 악센트를 고쳐달라고 찾아온 일라이자 두리틀(오드리 햅번)을 여왕님의 눈도 속일정도의 ‘숙녀’로 만든다는 이야기이다. 둘은 매일 다투며 미운 정이 쌓이고, 미운 정이 고운 정 된다는 말처럼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에게 빠진다. 흥을 돋우는 영화 속 노래들과 눈을 즐겁게 하는 영화미술뿐 아니라, 히긴스 교수를 연기한 해리슨의 톡톡 튀는 대사처리와 영화 초반부 일라이자의 알아들을 수 없는 악센트는 영화에 감칠맛을 더한다. 영화는 단순 재미에서 그치지 않고 신분 차이와 겉모습에만 치중하는 사회를 비판하는 철학적 요소와 여자들을 생각하는 남자의 시각 등을 엿 보인다. 


<마이 페어 레이디>는 많은 이에게 오드리 햅번의 영화로 기억된다. 도저히 들어 줄 수 없는 이상한 악센트를 말할 때도 빛나는 그녀의 외모와 보는 관객들까지도 분개하게 만드는 히긴스에게 화를 낼 때의 그녀의 연기력은 ‘과연 햅번이다‘ 라는 찬사를 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2개 부분에서 노미네이트되고 8개의 상을 수상할 때, 오드리 햅번은 수상의 영광도 노미네이트되는 영예도 얻지 못했다. 대신에 당시 유명 뮤지컬 배우 줄리 앤드류스가 그녀의 스크린 데뷔작 <메리 포핀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줬다.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 오리지널 캐스트로 여주인공을 연기한 줄리 앤드류스 대신에 제작사는 미모와 인기, 연기력을 모두 갖춘 오드리 햅번을 영화에 캐스팅했다. 오드리 햅번이 거절했다면 엘리자베스 테일러에게 역할제의를 할 예정이었다고 하니, 영화를 볼 때 앤드류스나 테일러가 연기한 일라이자는 어땠을까 상상해보게 된다. 햅번이 오스카의 영광을 누리지 못 한데에는 그녀가 직접 노래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한몫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문 리버’를 부르던 오드리 햅번을 떠올리며 그녀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듣기위해 <마이 페어 레이디>를 본다면 큰 오산이다. 당시 제작사는 그녀가 음역대가 좁다는 이유로 <왕과 나>(1956),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에서 여주인공 목소리를 더빙한 마니 닉슨에게 햅번을 대신해 노래를 더빙하게 했다. ‘조금만 기다려 Just You Wait’와 각 노래의 도입부, 후반부들의 약간만이 햅번의 목소리다. 영화를 보면서 언제 더빙된 가수의 목소리가 시작되는지 귀 기울여 들어보는 것도 영화를 보는 또 다른 묘미이다. 반면 다른 배우들이 미리 노래를 녹음을 하고 립싱크를 할 때, 히긴스 교수역의 해리슨은 자기 입 모양이 매번 노래할 때마다 달라서 립싱크를 하지 못하겠다며 넥타이 아래에 휴대용 마이크를 달고 노래를 하며 자기 목소리로 전 곡을 소화했다. 그리하여 해리슨만이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노래와 입 모양이 딱딱 떨어진다.  


영화 속 화려한 의상들은 재미난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특히 경마장 장면에서 귀족들이 차려입은 흑백의 의상들, 날이 갈수록 우아해지고 여성스러워지는 일라이자의 옷들은 눈을 즐겁게 하는 동시에 조금은 과장된 듯한 1910년대 영국의 복식을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의상 뿐 만이 아니다. 히긴스 교수의 집에 있는 이상한 기계와 도구들 또한 흥미로운 구경거리이다. 그의 녹음기, 악센트의 높낮이를 보여주는 지진계 같은 기계하며, H 발음을 할 때 불이 꺼졌다 켜지는 회전거울장치는 물론, 고급스러운 장식장과 책장들은 히긴스 교수의 사회적 금전적 지위를 보여준다. 또, ‘악센트만 고급스럽다면 귀족사회에 들어 갈 수 있다’라는 이야기의 전제를 확고히 시켜주는 소품들 이기도하다.  
<마이 페어 레이디>로 아카데미 감독상까지 수상한 조지 쿠거의 재기 넘치는 연출력과 다양한 볼거리들은 뮤지컬 영화라는 ‘쇼’적인 측면을 잘 살려냈고 배우들의 연기력, 잘 써진 위트 넘치는 대사들은 키스신이나 베드신 하나 없이도 이 영화를 훌륭한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 영화로 만든다.(배준영: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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