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자크 리베트”

- 이용철 평론가 시네토크


지난 7월 2일(토)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 상영 후 이용철 평론가의 시네토크가 있었다. 다양한 키워드와 함께 리베트의 필모그래피를 짚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날 이용철 평론가가 들려준 이야기의 일부를 정리해 보았다.



이번 “자크 리베트 회고전”에서 시네토크를 제안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가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와 리베트의 유작 <작은 산 주변에서>였다. 리베트의 영화 중 가장 즐겁게 본 작품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영화평론가 조너선 로젠봄은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를 평하며 ‘시네마 오브 플레저 cinema of pleasure’라는 표현을 썼다. ‘쾌락’이라고까지 번역하긴 좀 그렇지만, 어쨌든 그만큼 즐거운 영화라는 말일 것이다. 리베트의 작품 중에는 무겁거나 심각한 것도 있지만 나는 그런 영화보다는 ‘가볍게’ 본 영화를 선택했다.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는 엔딩을 정확하게 기억하기 힘든 영화 중 한 편이다. 어떤 때는 호숫가에서 두 사람이 배를 타는 장면을 엔딩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어떤 때는 공원에서 셀린느가 줄리를 따라가는 장면으로 기억한다. 진짜 엔딩인 고양이 장면으로 기억할 때도 있다. 분명 영화를 봤고, 또 좋아하는 영화인데도 매번 혼란을 느낀다. 볼 때마다 새로운 영화가 바로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 이다.



1. 자크 리베트가 다른 누벨바그 감독들에 비해 덜 알려진 이유


오늘은 크게 세 가지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처음 이야기할 건 자크 리베트가 누벨바그의 다른 감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이유이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자크 리베트라는 이름이 비교적 많이 알려진 편이다. 그런데 외국에서는 거의 그림자에 감춰진 누벨바그 감독 정도로 알고 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리베트의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얼마 전 “라브 디아즈 특별전”에서 10시간짜리 영화도 상영한 적이 있는데, 아시다시피 리베트의 <아웃 원>은 상영시간이 13시간이다. 게다가 라브 디아즈와 달리 리베트는 이 영화를 필름으로 찍었다.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어떤 영화를 100시간 동안 촬영하고 2~3 시간의 결과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종종 들린다. 그런데 필름으로 영화를 만들던 시대에 이렇게 과감한 영화를 찍었던 감독은 별로 없다. 또한 오늘 본 영화도 그렇지만 내러티브의 복잡함이 만만하지 않다. 그렇게 어려운 영화를 찍다 보니 상영관도 잘 잡을 수 없었다. 그나마 짧게 찍었던 영화인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가 190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리베트의 영화는 대중적인 접근성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당연히 자크 리베트의 인지도도 떨어졌다.

또 다른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리베트가 만들었던 영화의 특성 때문이다. 다른 누벨바그 감독들은 그 감독의 이름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예를 들어 클로드 샤브롤은 ‘스릴러’, 에릭 로메르는 ‘구애’, 이런 식이다. 한 명의 감독이 뚜렷한 주제나 스타일을 갖고 있다. 그런데 리베트의 경우에는 한 줄의 설명으로 그의 영화를 설명하기 어렵다. 필모그래피의 스펙트럼도 넓고, 개별 영화도 쉽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리베트는 자신만의 선명한 이미지를 갖지 못했고 그게 ‘감점’ 요인이 됐다.

그리고 이건 장점인지 단점인지 모르겠는데, 리베트의 영화를 이야기하려면 기본적인 교양이 좀 필요하다. 이를테면 작품 내에서 직접 거론하는 이름이 정말 많다. 루이지 피란델로, 드니 디드로 등의 작품을 각색하거나 인용을 한다. 안 그래도 접근하기 힘든 영화인데 이런 식의 교양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대중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오늘 시네토크를 위해 자료를 좀 찾아봤는데, 리베트에 대해 독립적으로 나온 책이 하나도 없었다.

이런 점들 때문에 리베트와 그의 영화는 많이 알려지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 영화를 보신 분들은 분명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많은 분들이 리베트와 친해지길 바란다.


2. 자크 리베트를 설명하는 키워드들


- 누벨바그

자크 리베트를 설명하는 세 가지 키워드를 하나씩 이야기해 보겠다. 첫 번째는 물론 ‘누벨바그’다. 리베트는 누벨바그 멤버 중 최고의 영화광이었고, 감독 데뷔 후에도 가장 늦게까지 시네마테크를 찾은 감독이라 알려져 있다. 일례로 리베트가 옹호했던 90년대 작품 중 폴 버호벤의 <쇼걸>이 있다. 이 영화는 이미 잊힌 영화가 된 것 같은데, 그 당시에도 이 영화를 다들 쓰레기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리베트는 이 영화를 옹호했다. 그만큼 열정적으로 영화를 보러 다닌 것이다.

누벨바그 감독 중 가장 먼저 영화를 찍으려 한 사람도 바로 리베트였다. 그의 장편 데뷔작이 된 <파리는 우리의 것>은 사실 이미 50년대 중반에 제작에 들어갔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돈이 부족해 영화를 계속 찍을 수 없었고, 결국 샤브롤의 도움을 받아 영화를 완성했지만 그때는 이미 60년대였다. 즉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가 개봉한 뒤였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리베트가 ‘1번’이어야 했다. 어떻게 보면 출발부터 그는 그림자에 묻혀 있었던 셈이다. 참고로 고다르는 리베트의 이런 점을 인정했다. 영화에 대한 기술을 잘 아는 사람은 리베트였다고 말했고, “만약 리베트가 나보다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면 나보다 훨씬 유명해졌을 것이다.”라고도 말했다.

- 연극

리베트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가 바로 ‘연극적 성격’이다. 물론 <아웃 원>이나 <지상의 사랑> 같은 작품들은 연극 무대를 배경으로 하거나 연극 자체를 다루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리베트의 영화가 ‘연극적’이라는 오해를 사고는 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리베트는 연극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나 연극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것이지, 연극 무대 자체를 영화로 옮긴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오해가 리베트와 그의 영화가 누벨바그에 반反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고 인식하게 만드는 문제를 일으켰다. 아시다시피 누벨바그 감독들은 프랑스 영화의 문학적 전통과 단절하려 했다. 그런데 리베트의 초기작 <수녀>는 디드로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였고, 그 뒤로도 연극을 소재로 많이 삼다 보니 리베트의 영화가 누벨바그와는 다르다는 오해를 샀다. 그리고 그런 오해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영화를 계속 보여주어야 그런 오해가 사라질 텐데 방금 말했듯 리베트는 그러지 못했다. <아웃 원>이 공개 당시 딱 한 번 상영됐던 것이 단적인 예이다.

하지만 나는 그 연극적인 성격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싶다. 리베트는 ‘세계’라는 개념을 좋아했다. 특히 그 세계에 들어가고 나오면서 게임을 벌이는 걸 좋아했다. 그런 테마가 리베트의 경우에는 어떤 이야기를 무대에 올린다는 이미지에 가까웠던 것 같다.

또 어떤 면에서 보면 연극은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리베트는 실제로 이걸 아주 좋아했다. 리베트는 다른 누벨바그 감독들과 다르게 자크 베케르나 장 르누아르와 같은 선배 감독들의 현장에서 조감독 경력을 쌓았다. 르누아르는 ‘영화를 보는 가장 큰 즐거움은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었는데, 리베트도 이 말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그냥 영화를 보는 것도 좋지만 영화 속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는 걸 아주 좋아한 것이다. 그런 점이 도드라지다 보니 리베트의 영화를 연극적인 영화라 오해하는 일이 생긴다.

- 실험 영화

또 하나의 오해가 있다. 리베트를 ‘실험적인’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 평가하는 것이다. 참고로 한국의 경우는 20세기 초의 영화를 이야기할 때 소련이나 독일을 많이 이야기한다. 그러다 보니 1920년대 초반의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인상주의 영화 운동에 상대적으로 적게 주목한다. 하지만 아벨 강스나 마르셀 레르비에의 영화를 보면 피카소의 그림을 영화화했다는 착각이 들 만큼 기이한 영화들이 많다. 그런 움직임은 전쟁을 통과하면서 사라졌지만, 리베트는 프랑스 영화사의 이 흐름을 의식하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사실 리베트가 ‘실험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아니지만, 영화사를 연구하는 사람들 중에는 리베트를 아방가르드 운동의 후예로 인식하기도 한다.

하지만 좀 억울하기는 하다. 리베트는 실험을 위한 실험을 하려고 한 건 아니었다. 단지 리베트는 자신이 한 번 만든 영화와 똑같은 영화를 만들지 않으려는, 앞으로 나아가려는 자세가 있었다. 그런 자세가 결과적으로 리베트의 영화를 실험적인 영화로 만든 게 아닌가 생각한다. 영화학자 데이빗 톰슨 같은 경우는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가 <시민 케인> 이후 만들어진 가장 혁신적인 영화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누벨바그와 연극, 실험 영화를 키워드 삼아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 키워드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도끼에 손대지 마라> 같은 경우가 특히 그렇다. 즉 한 마디로 설명하기 힘든 감독이 바로 자크 리베트이다.


3.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


이제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에 대해 몇 가지 키워드를 제시하며 이야기해 보겠다. 이 영화를 만들기 전에 리베트가 만든 영화가 바로 <아웃 원>이다. 이 작품이 워낙 길다 보니 배급용 프린트를 별도로 못 만들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아웃 원>의 프린트는 세상에 딱 한 벌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배급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리베트가 그걸 많이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아웃 원>을 4시간으로 재편집한 <아웃 원: 유령>이란 버전을 따로 만들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리베트는 피로감을 좀 느낀 것 같다. 13시간짜리 영화를 만드는 과정 자체도 그렇고, 그렇게 힘들게 만든 영화가 관객과 많이 못 만났기 때문이다.

그 뒤 리베트는 셀린느 역을 맡은 줄리엣 베르토와 ‘상업적’인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당연히, 제작비를 마련하는 게 쉽지 않다 보니 그 작품이 준비하는 도중에 엎어졌다. 그런데 리베트가 그 과정에서 줄리엣 베르토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여자 주인공이 두 명 정도 나오는 작은 영화를 만들면 어떨까?” 그리고 줄리엣 베르토는 이 말을 듣고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줄리 역을 맡은 도미니크 라브리에를 떠올렸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함께 각본을 썼고, 이 각본이 바로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였다. 참고로 이 영화는 리베트가 만든 영화 중 거의 유일한 상업적 성공작이라 볼 수 있다.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 영화를 본 관객은 누구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렸을 것이다. 고양이나 두 인물의 행동 패턴 같은 것들을 보면 그렇다. 실제 이 영화의 제목인 ‘배 타러 가다’부터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따온 것이다. 이 소설의 제일 첫 페이지를 보면 작가인 루이스 캐롤이 쓴 시가 나온다. 이 시에는 ‘세 아이와 함께 보트를 타러 갔다.’는 구절이 있다. 그리고 앨리스의 이야기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즉 영화의 제목 자체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따온 것이다. 그리고 첫 장면에서 셀린느가 뭘 떨어뜨리고 줄리가 따라가는 건 누가 봐도 앨리스와 토끼를 떠올리게 한다. 그 외에 한정된 공간 속에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도 앨리스가 이야기 내내 벌이는 패턴이다.

형식적인 측면, 특히 시간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오르게 한다. 리베트의 영화는 유한한 시간 속에서 벌이는 게임 같은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한정된 시간을 살아가는데 리베트는 이걸 마치 게임처럼 다룬다. 이를테면 그의 영화에는 정확한 시간이 나오지 않는다. ‘9월의 마지막’, ‘12월의 초’, ‘1980년의 어느 날’ - 이렇게 모호한 시간을 제시한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인데, 재미있는 건 그 시간을 뒤섞는다는 것이다. 특히 과거와 현재를 만나게 한다. 극 중에서 죽을 뻔한 위기에 처한 소년이 사실은 줄리가 어릴 때 옆집에 살았던 소년의 이야기라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리베트는 이 영화에서 시간을 섞거나 반복한다.

- 매직

다음 키워드는 ‘매직’이다. 마술이라고 말하면 어감이 살지 않는다(웃음). 이 영화에도 매직이 나온다. 소품으로 마술책이 직접 나오기도 하고 셀린느의 직업이 다름 아닌 마술사이기도 하다. 참고로 <지상의 사랑>이나 <작은 산 주변에서> 같은 영화도 마술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한다. 왜 그럴까. 리베트의 중요한 세계관 중 하나가 ‘미스테리’다. 리베트에게는 현실과 미스테리를 연결하는 방법 중 하나가 매직이다. 현실에서는 미스테리를 풀 수 없지만 매직을 통하면 현실과 미스테리를 연결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리베트의 영화에는 매직이 자주 등장한다. 만약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에 매직이 없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 보자. 아마 그 매력이 많이 사라졌을 것이다.

매직과 관련해 조르주 멜리에스의 이야기도 조금 하고 싶다. 아시다시피 멜리에스는 <달나라 여행>을 만든 감독인데, 원래는 마술사였다. 그러다 보니 그의 영화에도 마술의 트릭을 사용한 장면이 많다. 그런데 영화의 역사에서 리얼리즘이 중요하게 평가받으면서 멜리에스가 추구했던 ‘매직’의 측면이 많이 사라졌다. 심지어 마술적인 영화가 촌스러운 작품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하지만 리베트는 그 매직을 다시 영화 안에 적극적으로 도입한 감독이다.

- 문 / 퍼즐과 추리

리베트의 <북쪽에 있는 다리>를 보면 퍼즐 맞추기에 대해 리베트가 보여주는 태도가 있다. 특히 현실과 초현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설정하고, 그 사이에 있는 문을 열기 위해 퍼즐을 푼다는 테마가 많이 나온다.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에도 어설프지만 추리의 과정이 나온다.

- 악당

리베트의 영화에는 ‘악당’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여기서 악당은 선악의 개념과는 다르다. 악당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들은 악을 저지르기보다는 미스테리를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보통의 악당은 나쁜 짓을 해서 주인공을 괴롭힌다. 그런데 리베트의 악당은 주인공이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을 반복하며 미스테리를 강화한다. 또한 다른 영화에서는 악당이 나중에 처벌을 받는데 리베트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이들은 미스테리를 제공하는 역할만 맡고, 주인공들을 움직이게 하는 역할을 맡는다.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에서 관객은 누가 소녀를 죽였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대신 주인공들이 소녀를 구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만 보여준다.

- <뱀파이어 Les Vampire>

루이 푀이야드의 <뱀파이어>를 떠올려 보자. 셀린느와 줄리가 책을 훔치는 장면이 있다. 이때 두 사람이 입고 있는 머리를 덮는 검은 타이즈는 <뱀파이어>의 주인공 루시도라가 입었던 의상이다. 그리고 자막도 흥미롭다. 영화에 몇 번씩 반복되는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이란 자막은 <뱀파이어>에 나왔던 자막이다.

리베트의 영화에서 자막이 맡은 역할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시간의 경과를 알려주고 또 하나는 이야기의 흐름을 알려준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왜 필요한지 알 수 없는 자막이다. 보통은 명확한 시점을 이야기하거나 인과 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자막을 사용한다. 하지만 리베트는 오히려 관객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 자막을 사용한다. 자막으로 시간을 헷갈리게 만드는 식이다. 그 이유는 나도 정확히 모르겠다.

- 여성들

이 영화가 당시 인기를 누렸던 건 1968년의 페미니즘 운동과도 관련이 있다.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는 지금이나 당시나 페미니즘, 혹은 퀴어 시네마로 읽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줄리와 셀린느의 관계를 동성애로 보는 해석이 많았다.

페미니즘은 1970년대 영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재미있는 건 할리우드와 유럽이 이를 다르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할리우드에서는 남자들이 페미니즘을 굉장히 피곤하게 생각했다. ‘여자들이 설친다. 그러니 우리들은 갈 곳이 없다.’는 식이었다. 70년대 할리우드에서 남자 두 명이 사람이 없는 곳으로 떠나는 로드무비가 엄청나게 많이 만들어진 건 사실 페미니즘 운동과도 연관이 있다.

반면 리베트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페미니즘을 자기 영화에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를 퀴어 영화로 해석하는 의견에 동의하는 편은 아니다. 자크 리베트라는 감독 자체가 남자 주인공보다 여자 주인공을 좋아했다. 앞에서 리베트가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걸 좋아한다고 했는데, 특히 그는 여자 배우와의 작업을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스릴러 장르의 형식을 가져와 여성 배우가 그 안에서 반응하는 걸 훨씬 흥미롭게 생각했던 것 같다(리베트의 영화에 여성들이 등장하는 스릴러 영화가 많은 것도 이 이유 때문인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를 장르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쪽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퀴어 시네마로 읽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 대해서는 특히 <북쪽에 있는 다리>나 <4인조 La bande des quatre> 같은 작품을 참조하길 바란다.

- 공동체적인 영화

리베트는 공동체적 방식으로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의 시나리오를 쓴 사람은 이 영화에 나온 여성 배우들이다. 물론 헨리 제임스의 『다른 집 The Other House』 같은 장편 소설의 영향을 받았고, 전문 시나리오 작가도 참여하기는 했지만, 많은 부분의 이야기는 배우들이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

그리고 영화 제작에 즉흥적인 부분이 많았다. (이 노선을 끝까지 유지한 건 아니다. 후기에는 엄격하고 고전적인 제작 환경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많다.) 배우들과 공동으로 작업을 하고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드는 장면이 많았다.

- 창작으로서의 미스테리

이와 관련해 창작의 미스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영화를 만들 당시 리베트는 어떤 신을 찍으면서도 그 다음에 어떤 신을 찍을지 몰랐다. 왜냐하면 영화를 찍고 있는 현장에서도 시나리오가 아직 완성이 안 됐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그날그날 시나리오를 써왔고, 그러다 보니 제작 환경 자체가 ‘미스테리’였다. 즉 영화의 이야기뿐 아니라 창작 과정 자체가 미스테리였던 셈이다. 그런 맥락에서 사실 자크 리베트의 거의 모든 영화는 ‘미스테리 영화’라 생각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 본 것과 진실의 문제

리베트의 영화는 처음 몇 장면을 보고 전체 상을 파악할 수 없다. 이를테면 다른 영화에서는 악당을 처음에 정해놓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악당 같은 사람이 나오면 대부분 그 사람이 악당인 식이다. 하지만 리베트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우리가 보는 인물의 정체가 변하거나, 또는 그의 본질적인 모습이 서서히 드러난다. 그래서 관객들은 자신이 보는 것을 의심해야 한다. 쉽게 판단하면 실패한다.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도 그렇다. 처음에는 소피가 나쁜 여자처럼 보이지만 뒤로 갈수록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이야기를 따라가는 묘미가 있다.

지금까지 리베트의 영화와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에 대해 몇 가지 키워드를 제시하며 이야기했다. 만약 리베트의 영화를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세계로 확장된 무대에서 문을 열고 닫으며 벌이는 술래잡기 같은 게임’이라고 정리하고 싶다. 이 영화도 그렇고 리베트의 영화들이 대체로 이런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장이 길어서 좀 재미는 없는 것 같다(웃음).

정리 김보년 프로그램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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