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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 지키기 25회] "그래도 시네마테크와 함께 행복했노라고..."

나는 지금 벼랑 끝에 서 있다. 침몰하는 배 위에 있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나는, 사람들과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느꼈던 나는 어느 날 극장 속으로 숨어버렸다. 극장 안에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싶었다. <카이로의 자줏빛 장미>의 미아 패로우처럼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서 영원히 살고 싶었다.

영화를 통해서 세상과 만났고 세상과 소통했다. 순수하게 좋은 영화를 많이 보면 좋은 영화 감독이나 좋은 영화평론가가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지난 12년간 수천 편의 영화와 함께 나는 행복했다. 나는 그 행복감이 영원히 지속될 줄 알았다. 그런데 나는 어느 날 스크린은 벽으로 되어 있어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현실로 돌아와야만 했다.

현실로 돌아와보니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나를 떠나고 있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2008년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영화에 열렬한 사랑을 고백했지만 정작 어머니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시네마테크에 가는 문제로 어머니와 많이 다퉜다. 어머니는 프랑스 유학 시절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버스터 키튼의 영화를 보셨을 정도로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가 오로지 영화만 보고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다.어머니는 나에게 스크린에는 벽이 있다고 늘 말씀하려고 하셨던 것 같다. 나는 당시에 그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를 미워했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나에게 '누구보다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셨다. 전에 어머니는 그런 말을 하신 적이 없었다. 나는 그제서야 어머니의 사랑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현실에서 <오데트>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늘 내가 <현기증>의 스코티와 닮아있다고 느껴왔다. 내가 어머니를 잃었듯이 스코티는 '매들린'을 쫓다가 쥬디를 잃었다. 현실에서 영화 속에서 꾸었던 자줏빛 꿈들은 잿빛으로 변해버린지 오래다. 사람들에게 나는 점점 잊혀지고 있다. 나는 뱀파이어가 되어 가고 있다. 나에게 남은건 회한뿐이다. 영화는 어머니를 결코 되돌릴 수 없다. 영화는 어느 새 나에게 삶 자체이자 '운명'이 되어버렸다.

영화와 함께 나는 삶과 죽음, 사랑, 집착, 질투, 분노, 절망, 슬픔, 행복, 불안, 두려움, 믿음, 욕망, 쾌락 등 온갖 것들을 경험하며 지내왔다. 시간과 함께 나의 시야는 점점 흐려지고 나의 기억도 점점 희미해질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케인의 '로즈버드'를 기억한다. <게임의 규칙>에서의 르누아르의 절망을 기억한다. <현기증>에서의 스코티의 "Why me?"라는 절규를, 관객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순백의 게르트루드를, <러스티 맨>에서 마지막 로데오 경기에 나가기 직전의 로버트 미첨의 눈빛을, <동경이야기>의 증기선의 마지막 쇼트를, <비정성시>의 식탁을, 히로시마와 느베르를, <이탈리아 여행>에서의 기적을, <소매치기>에서 미셸의 마지막 내레이션을, 총에 맞은 미셸 쁘와까르의 휘청거림을, <오데트>에서 눈물을 흘리는 잉거의 클로즈업을, 이산 에드워즈의 마지막 뒷모습을, 알렉산더의 불타는 집을, <리오 브라보>의 통쾌함을, 말 없는 이스트우드를, 조안 폰테인에게서 온 편지를, 델핀의 외로움을, <타부>에서의 마지막 슬로우 모션을, 아름다운 일출을 여전히 나는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들조차 모두 사라지는 마지막 순간이 오면, 나는 이렇게 말하리라. "그래도 시네마테크와 함께 행복했노라고..." (한상훈, 34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