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아 카잔의 아메리카 [1]

엘리아 카잔은 2003년 9월 28일 사망했다. 1975년작인 <라스트 타이쿤>으로 사실상 영화계를 은퇴했던 경력을 고려한다면 카잔의 후기의 삶이 비교적 조용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았다. 97년에 카잔은 860페이지에 달하는 '나의 삶'이라는 자서전을 출간해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20세기를 마감하는 사건이 있었다. 1999년 3월의 아카데미 수상식, 여기서 카잔은 '평생공헌상'을 수상했다. 곧바로 수상을 반대하는 의견이 나왔다. 카잔이 50년대에 동료들을 밀고했던 것이 문제였다. 1951년 반역행위조사위원회(House 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에서 증언을 거부해 16년 동안이나 할리우드에서 추방됐던 <악의 힘>의 아브라함 폴란스키가 분명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인들이 카잔에게 기립박수를 보내서는 안된다고 요구했다. 이 거북한 자리에 엘리아 카잔을 맞이하는 축하의 스피치는 마틴 스콜세지와 로버트 드니로에게 돌아갔다.

로버트 드니로는 카잔의 <라스트 타이쿤>에 출연했고, 스콜세지는 카잔의 <워터프런트>가 자신의 영화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었다. 스콜세지에게 카잔은 위대한 동해안의 작가, 즉 뉴욕파 영화의 아버지였다. 물론 뉴욕파 영화의 초석을 만든 이는 또 있었다. 줄스 다신과 아브라함 폴란스키의 영화들을 빼놓을 수 없다. 아브라함 폴란스키의 <악의 힘>은 급진적인 할리우드 영화로 너무 일찍 도착한 뉴욕파 영화였다. 스콜세지에게는 카잔과 아브라함 폴란스키라는 두 아버지가 있었던 셈인데, 공교롭게 이 둘은 50년대에 할리우드에 불어닥친 '빨갱이 사냥' 때 대조적인 행동을 보였다. 폴란스키는 공산주의자 색출에 저항했고 '할리우드 텐'을 낳았던 1947년의 HUAC 심문에 불응했다. 카잔은 1951년에 시작한 2차 공산주의자 색출 때에 밀고자가 됐다. 폴란스키와 카잔은 그렇게 50년대에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고, 20세기가 끝나가는 1999년에 다시 한번 충돌했던 것이다.

아카데미는 그렇다면 무엇에 경의를 표했던 것일까? 그간의 영화 발전에의 공로로 카잔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과 카잔이 맥카시즘의 시기에 동료들을 고발한 비도덕적인 행위, 둘 다에 경의를 표할 수는 없다. 그런 점으로 카잔을 둘러싸고 비판과 동조가 당시에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당시 카잔을 둘러싼 논란은 크게 네 가지 모습을 보였다.
먼저 찰톤 헤스톤과 아서 슐레징거와 같은 보수주의자들의 입장이 있었다. 그들은 공산주의자들과 싸우는데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주장했다. 카잔은 더 나쁜 스탈린주의 소련을 폭로하기 위해 덜 나쁜 반역행위조사위원회(House 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와 협력했고, 그것은 정당한 행위였다는 것이다. 스코트 맥코넬Scott McConnell은 ‘악당과 희생자가 뒤바꼈다. 공산주의자들이 [오히려 카잔에게] 사과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시상식이 있던 날 밤 카잔을 비판하는 시위에 반대하는 시위를 조직했다. 그들은 침묵하지 않았던, 즉 공산당원들을 밀고한 카잔에게 경의를 표했다.

두 번째 견해는 정치와 예술을 좀더 분리시켜보는 입장이다. <Los Angles Times>의 영화 비평가인 케네스 튜런은 아카데미상의 유일한 기준이 단지 작품일 뿐이라 말했다. 로저 에버트 또한 ‘Sun-Times Film Critic’에서 좀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카잔의 작품에 존경을 보내는 것으로 아카데미가 카잔에게 상을 수여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라 말했다. 물론, 카잔에게 열광적인 박수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침묵의 박수'를 보내는 것도 정당하다는 중간적인 입장을 보였다.

세 번째 견해는 아카데미가 카잔에게 상을 수여하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일부 사람들은 아카데미 시상식장 바깥에서 시위를 조직했고, 아카데미 시상식때에도 박수를 치지 않으면서 경멸을 표현하기도 했다. 시상식장에서 웨렌 비티, 헬렌 헌트 등은 카잔에게 기립박수로 경의를 표했지만, 에드 해리스와 닉 녹테는 냉담하게 카잔의 수상식을 쳐다보았다. 시상식장 바깥에서는 블랙리스트였던 작가들을 포함해 수백명의 항의자들이 ‘카잔: 밀고자Kazan: Snitch’라는 푯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빌리지 보이스'의 비평가인 짐 호버만은 '카잔의 경력은 화려하지만, 상은 위선적이다’라고 주장했다. 아브라함 폴란스키는 '그를 누군가 죽이기를 기원하면서 시상식을 구경할 것'이라 빈정거렸다. <워터프런트>에서 배우로 출연했던 로드 스타이거는 ‘내 생각에 예술이나 다른 것에서도 나이와 능력이 범죄를 용서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카잔이 많은 사람들에게 지옥을 선사했으며, 그가 밀고한 사람들이 공산주의자건 아니건간에 그러한 행위가 초래한 불행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으며, 만약 그 사람들이 박해받지 않았다면 얼마나 많은 위대한 영화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는가를 지적했다. 마찬가지로 카잔이 HUAC에서 거명했던 사람들 중의 하나인 포비 브랜드 ‘많은 것을 용서할 수는 있지만, 내가 카잔을 용서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네 번째 견해는 보다 신중하다. 미국의 좌파 잡지 <내이션The Nation>의 빅터 나바스키는 당시 오스카 시상식이 있던 날 밤에 행사의 중심에 있어야만 했던 것은 HUAC도 카잔도, 할리우드도 아닌 '맥카시즘에 저항했던 익명의 작가들, 감독들 그리고 배우들'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만약 아카데미가 올바른 일을 하려 했다면 수백명의 블랙리스트들에게 상을 수여해야 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아카데미가 이제는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던 엘리아 카잔을 수상식의 무대에 세운 것은 그를 내세워 자신들의 문제를 숨기려 했었다고 볼 수 있다. 즉, 할리우드는 1940년대 말에서 5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그들이 정치와 결탁해 저지른 어두운 과오를 엘리아 카잔을 내세워 면제부를 받으려 했던 것이다. 할리우드와 카잔, 혹은 아메리카와 카잔이 맺은 관계는 그런 점에서 미국영화사에서 흥미로운 사례를 남겼다.(김성욱)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