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아 크리스틴

1957. 크리스틴은 디트로이트의 한 공장에서 태어났다. 그때는 혼자가 아니었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똑같은 모습을 한 쌍둥이들과 함께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크리스틴은 오래지 않아 제 혼자 말썽 부리며 악한 본성을 드러냈다.


이런 크리스틴이 어울릴 곳은 없다. 자동차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일반적인 자동차의 삶(?)을 살지는 못한다. 또 의식은 있지만 인간과의 진심 어린 관계도 불가하다. 자동차 무리도, 인간 사이도 맞지 않는 그녀는 존 카펜터 감독의 다른 괴물들과도 결정적으로 다르다. 카펜터의 괴물들은 대부분 슬픈 사연 혹은 납득이 가는 이유로 인해 파괴를 자행한다. <안개>(1980) 속 유령들은 생전에 그들을 기만하고 매장한 섬을 공격한다. <프린스 오브 다크니스>(1987) 속 사탄은 사탄이라는 정체성에서 이미 악할 의무를 띠고 탄생한다. 그러나 크리스틴의 분 노뒤에는 아무런 사연도, 의무도 없다. 자동차라는 무생물이 악하다는 설정 역시 낯설다. 그녀는 악의 근원부터 다른 괴물들과 상이하다.


그런데 이런 상이성은 비단 근원의 차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크리스틴은 악의 목적에서도 카펜터의 괴물들과 괴리가 있다. 카펜터의 괴물들은 유령이든, (괴물 같은) 인간이든, 외계인이든 대부분 특정 장소의 점령을 목표로 한다. 그들은 상대를 하나둘 쓰러뜨리고 동족의 숫자를 늘리며 지구에 침투한다. <괴물>에서는 외계 괴물이 생물을 흡수하고 복제하며 인간들 사이를 파고든다. <저주 받은 도시>(1995)에서 쌍쌍이 짝지어 태어난 초능력자들은 자신들이 자라난 마을을 지배하려 한다. 반면에 크리스틴은 애초에 확장이 불가능하다. 그녀는 기계 본체의 무생물이다. 자기 몸뚱이 하나는 재생하더라도 동족의 개체 수를 늘릴 수도,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수도 없다. 심지어는 죽을 수도 없다. 이런 크리스틴은 홀로 태어나, 평생 혼자 살 운명에 처해있다.




 

카펜터의 사생아, <크리스틴>

흥미로운 것은 영화 <크리스틴> 자체도 카펜터의 사생아와 같다는 것이다. 비교적 흥행했고, 평단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탄탄한 베이스마저 있었다. 하지만 카펜터는 여러 인터뷰에 걸쳐 <크리스틴>에 대한 입장을 밝혀왔다. 이 영화의 연출이 <괴물>의 흥행 실패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만일 <괴물>이 흥행했다면 제 커리어는 달랐겠죠. 그때 했던 선택들을 하지 않아도 됐겠죠. 하지만 당시에 저는 일거리가 필요했어요. 물론 그렇다고 그 영화들을 싫어하는 건 아녜요. <크리스틴>, <스타맨>(1984), <빅 트러블>(1986) 모두 애정을 들여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괴물>이 흥행했다면) 제 커리어는 분명히 달랐을 거예요.”(A.V.Club Interview, John Carpenter, By Sam Adams, Apr. 11, 2011.)

 

인터뷰를 떠나 카펜터의 필모그래피만 봐도 <크리스틴><스타맨>, <빅 트러블>과 함께 방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카펜터의 많은 영화들은 거미줄처럼 서로 이어져 있다. 그는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한 후, 끊임없이 후속 작을 연출/기획/제작하며 그 세계들을 확장해왔다. <뉴욕 탈출>(1981)에 이은 <LA 탈출>(1996), <슬레이어>(1998)에 이은 <슬레이어 2>(2002), 8번째 시리즈까지 나온 <할로윈>. 그리고 직접적인 연작은 아니더라도 작품들 간에 유사성을 부여하거나 묵시록 3부작(Apocalypse Trilogy)’과 같은 분류로 묶어왔다. 반면에 <크리스틴>은 단 한 편으로 완결되었고, 확장될 기약도 없는 작품이다.

 

알아서 큰 자식, 크리스틴


온전한 카펜터의 자식으로 크지 못한 불쌍한 괴물 크리스틴. 작가에게 버림받은 이 영화는 그 작품성까지 의심될 수 있다. ‘작가라 불리는 대단한 아버지가 외면한 창피한 자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가 버린 작품이라고 해서 작품성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그리고 나아가, 되레 작가의 예외적인 면모가 담긴 것이 바로 이런 작품들일 수 있다. 실제로 <크리스틴>이 그렇다. 자동차 크리스틴은 악의 근원이나 목적 등에서 카펜터의 괴물들 사이의 공식을 파괴한다. 동시에 영화 <크리스틴>은 카펜터식 스릴러와 미국 하위문화가 혼합된 독특한 결과물이다. 영화는 이렇게 자신을 낳은 카펜터의 범위 내에만 머무르지 않고 확장된다.

 

이호정 | 관객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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