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중계 - 마누엘 올리베이라 회고전]



  친구의 손을 잡고 올리베이라를 보러 오자

이용철, 유운성, 김성욱 비평좌담 - <앙젤리카의 이상한사례>




지난 11 2일에 열린 11월의비평좌담주인공은 바로 마누엘 올리베이라 감독이었다.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 보고 바로 이어진 평론가의 대화에서 올리베이라 감독의 형식적, 내용적 특징에 대한 논의는 물론 올리베이라에 얽힌 개인적인 기억까지 들을 있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마누엘 올리베이라 회고전을 맞아 비평좌담을 마련했다. 많은 작품 가운데 비교적 최근 작품인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 선택한 것은 작품이 올리베이라 영화의 과거와 현재를 거론하기에 적합해 보였기 때문이다. 먼저 올리베이라 감독의 영화를 어떻게 접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보겠다.

 

이용철(영화평론가)│’동시대 작가라고 하면 보통 영화제라든지 개봉관을 통해 만나는데 올리베이라 감독은 워낙 옛날부터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동시대라고 해도 이상하게 느껴지는 점이 있다. 특히 처음에는 소위고전 영화 접하듯이 올리베이라 감독의 영화들을 보았다. 외국의 비디오가게에서 <아브라함 계곡> VHS 구해서 보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뒤에야 감독의 나이를 알게 됐다. 이후 90년대부터 한국에서도 올리베이라 감독을 소개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항상 나이를 먼저 이야기했다. 나이도 많고, 만든 영화도 이미 많았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보기도 전에 주눅이 들었던 같다.

후로는 주로 영화 마켓을 통해 신작들을 챙겨 보았다. 그런데 마켓이란 곳이 상당히 냉정한 곳이라서 그곳에서 올리베이라는무명 가까운 감독이었다. 물론 영화제에서는 인기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켓 시사실을 가면 관객이 이상 있지 않았다. 그래서 올리베이라의 영화를 떠올리면 우울한 기억이 먼저 찾아온다. 그리고는목적 없이단지 올리베이라의 영화를 본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열심히 챙겨 봤다. 그러다 보니 오늘 무슨 이야기를 있을지 사실 모르겠다(웃음).

 

김성욱포르투갈에서 DVD 박스세트를 내기 전까지는 올리베이라 감독의 작품을 실제 접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워낙 시간 동안 영화를 만들었다 보니 작품의 전체적인 일관성을 짚어보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통상적으로 가지 시기로 나누기는 하지만, 감독이 어떤 유형의 작가인지 정의하기 매우 어렵다. 빅토르 에리세는 그를불확실성의 작가 말했다.

 

유운성(영화평론가)나도 예전에는 올리베이라 감독의 작품을 많이 보지 못했다. 확실히 기이한 경력의 감독인 맞다. 일단 나이가 예순이 때까지 장편을 찍었다. 그런데 일흔 이후부터 매년 편씩 찍었다. 82세인 90년대부터 2007년까지 매년 편씩 영화를 만든 것이다. 이런 감독은 올리베이라가 유일하다. 건강법이 궁금할 정도이다(웃음).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80살을 넘긴 가진 인터뷰에서 올리베이라 감독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리고 올리베이라 감독을 이해할 하나 어려운 점은 활동의 황금기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보통 어떤 감독이 30 넘게 활동했으면 중요한 대표작 같은 꼽을 있다. 그런데 올리베이라는 70년대부터 지금까지 어떤 특정 시기를황금기 구분하기 어렵다.

먼저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접근하는 것이 좋을 같다. 하나는 올리베이라 감독이 과연 포르투갈적인 감독인지 묻는 것이고 하나는 올리베이라의 영화가 얼마나시네마틱 것인지 묻는 것이다. 생각에 올리베이라의 영화를 때는 영화만이 있는 어떤시네마틱 순간을 찾기보다는 영화의 원래 기능 자체, 무언가를 기록하는 영화 고유의 기능을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영화 이전의 예술 장르들, 연극이나 문학, 음악이나 회화들을 종합적으로기록한다는 의미에서의 영화 말이다.

먼저 번째 질문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페르난도 페소아의 중에포르투갈적 것에 대한 재밌는 정의가 나온다. 이를 올리베이라의 영화에도 똑같이 적용해 있을 같다.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포르투갈적이란 정의할 없다. 포르투갈적이란 빨리 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포르투갈적이란 정체성이 없기 때문에 다른 것들을 빨리 수용한다. 이것이 포르투갈적인 것의 장점이다. 포르투갈인은 매일 혁명을 일으킨다. 자고 일어나면 달라지기 때문에 때마다 혁명을 하기 때문이다.”   그는 포르투갈적인 것의 어떤 특징을 정의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이질적인 것을 한꺼번에 받아들여 다른 것으로 변경시키는 능력 자체에 주목한다. 올리베이라의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 다음 포르투갈의 현실적인 모습을 찾으려 노력하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대신 다양하고 이질적인 요소들이 어떻게 영화 안에서 만나는지 보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올리베이라의 영화를포르투갈적이라고 하긴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번째 질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올리베이라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시네마틱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모두 끌어들여 통합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이다. 올리베이라의 장편 데뷔작 <아니키 보보> 나오는 리얼리즘적 스타일에, <봄의 제전>적인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혼합, 그리고 70년대 영화들의 연극적, 문학적 방식. 그리고 여기에 90년대 이후의 영화까지 하나의 경향으로 일관되게 설명하기가 힘들다. 포르투갈 고유의 문화를 찾기보다는 넓은 관점에서 유럽의 교양을 살펴보는 필요할 것이고, ‘영화적인 집중하기보다는 비영화적(연극, 음악, 문학, 회화 ) 것들이 영화 안에서 어떻게 공존하는지 살펴보는 중요하다.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에서 유대교적인 것과 카톨릭적인 것이 섞여 있음을 확인할 있듯이, 이질적인 것들이 어떻게 화해하는지 질문하는 것이 올리베이라 감독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주제이다.


 

김성욱오타르 이오셀리아니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그가 일흔이 넘은 나이에 올리베이라 감독을 만났을 이오셀리아니를 보고여전히 걸작을 만들기에 충분한 나이 했다고 한다(웃음).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 이미 1954년에 감독이 만드려고 시도했었던 작품이다. 젊은 여인의 죽음을 카메라로 촬영하면서 겪은 경험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너무 어둡다는 등의 이유로 제작 지원을 받지 못했다가 2010년에야 만들어졌다. 그래서 그런지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이상하게 공존한다.

동시에 영화는 시간뿐만 아니라 서로 상이한 가지 것들 사이에 위치한다. 이를테면 유대인 이삭의 종교적인 맹신과 과학적인 학문 사이. 그리고 주인공은 영혼의 사진을 찍는 동시에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다큐멘터리적으로 찍는다. 그가 방에서 여인의 사진에 매혹되는 것과 열린 창문의 바깥 저편의 소작인들의 노동을 보는 것이 동시에 벌어지고, 영화는 아이디어 사이를 회전한다. 이삭이 촬영한 사진을 걸어놓고 바라볼 때의 트래킹 쇼트가 특별한데, 이는 영화의 유비로 영화에서는 죽은 앙젤리카의 사진(환영)이나 소작인의 노동(현실) 차이 없이 서로 불순하게 섞인다. 그러나 이삭이 여인과 소작인들을 촬영한 것은 그들이 공통적으로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에게 영화란 사라질, 또는 사라진 대상을 포착하는 것이다.

 

이용철개인적으로는이질적이라기보다 스펙트럼이 넓다는 의미에서다양하다고 표현하는 맞다고 본다. 올리베이라의 영화는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그렇게 난해하다고 보지 않는다. 그런데 올리베이라가 영화 안에 너무 많은 끌고 들어오다 보니 관객들에게 이해하기 힘든 인상을 주는 같다. 그런 면에서 <아브라함 계곡>이나 <불확실성의 원리> 같은 영화가 올리베이라의 특성을 보편적으로 보여주는 같다. 포르투갈의 몇몇 감독과 올리베이라의 작품에 죽음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은 흥미롭다. 특히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 감독이 죽음의 문제를 정리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올리베이라의 영화에서 죽음을 맞는 인물들은 억울함을 갖고 있었다. 상대방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지 못한 , 어떤 갖고 세상을 떠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에서 생각이 바뀌었다. 영화에서는 오히려 죽은 사람들이 어떤 영원성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편지> <프란시스카> 다시 생각해 보면 오히려 죽은 자만이 진실과 함께 영원할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유운성 영화는 올리베이라의 실제 경험에서 시작한 걸로 알려져 있는데, 인터뷰를 보면 실제로 죽은 사람이 웃는 아니라고 한다. 포커스를 맞출 이미지가 겹쳐졌다 어긋나는 것이 마치 사람의 영혼이 속에서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때 질문을 있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과연 무엇에 매혹당한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올리베이라의 영화에서 사람들은 무언가에 매혹당하고 사랑에 빠지지만 대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럼 영화의 주인공은 무엇에 끌린 것일까. 죽은 앙젤리카에 매혹당한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앙젤리카의 이미지에 매혹당한 것도 아니다(후자는 트뤼포적 주인공에 해당할 것이다). 둘을 함께 접할 매혹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당혹스러워 한다. 그런 점에서 주인공 이삭은 매우 올리베이라적인 인물이다. 이런 특징은 삼각관계를 그린 멜로드라마에서도 나타난다. 일단 주인공은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 그런데 엄밀히 따져 보면 특정 인물에게 끌리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서 발생하는 긴장을 사랑하는 것이다. 영화 대사에도 나오지만사람을 사랑하는 아니라 욕망을 사랑한다. 이를테면사랑을 사랑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걸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착각하고, 항상 실패한다. <과거와 현재> 같은 영화가 그런 점을 특히 보여준다.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 돌아오면, 그런 측면에서 올리베이라가 영화를 이미 1950년대에 찍으려 이유를 짐작할 있다.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 해피엔딩인지는 없다. 올리베이라의 영화에서 성공을 거두는 인물은 매혹의 대상을 갖고 있지 않거나 매혹의 정체를 일찌감치 파악한 사람이다. <불확정성의 원리> 여주인공이 드물지만 그런 인물이다.

 

김성욱회고전이 시작하는 주다. 올리베이라 영화를 보게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용철 안에 24편을 어떻게 보냐고 걱정하는 누군가의 글을 인터넷에서 봤다. 그렇게 고민하는 것이 몰락의 지름길이다(웃음). 물론 조바심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보다는 조금 여유를 갖고 특정 시기에 집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올리베이라 감독의 영화적 정점은 90년대였다고 생각한다. <지배의 공허한 영광>에서 <불안>까지 이르는 작품들이 정수라고 생각한다. 작품 작품에 집중해서 파고드는 것을 권한다.

 

유운성올리베이라는 지금 동시대 영화에서 가장 첨예한 이슈를 건드리는 감독이자 살아 있는 감독 가장 위대한 감독 명이다. 지난 15 동안 한국에서 영화제를 통해 가장 중요한 감독은 포르투갈 감독들이었다. 이번 상영작이 너무 많아서 고르겠다 싶으면 짧은 영화보다 영화를 보는 나을 있다. <불운의 사랑>, <프란시스카>, <아브라함 계곡> 같은 영화 말이다. 또는 올리베이라 감독이  문학과 맺는 관계가 특히 크기 때문에 그런 작품들을 모아서 보는 것도 다른 방법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다른 감독이 아닌 올리베이라 영화를 보자고 권하는 여러분이 세상에 있는 가장 선행이라는 것이다. 친구의 손을 잡고 오길 바란다(웃음).

 

김성욱7시간짜리 <새틴 슬리퍼 The Satin Slipper>(1985) 이번에는 상영하지 못했는데, 영화는 이번 영화제의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다음에 긍정적으로 고려해 보도록 하겠다(웃음).

 

정리김지훈 인턴

사진곽혜원 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