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문화학교서울이 주최해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린 '에릭 로메르 회고전'

시네필의 전당, 영화박물관, 영화도서관이라 불리는 시네마테크.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와 말을 나누고 픈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고 즐기며, 배움을 얻고 있다. 손쉽게 다운받아 홀로도 영화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지만 극장에서 영화의 원판인 필름을 많은 이들과 함께 체험한다는 것은 비단 영화문화를 향유하고픈 욕심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많은 시네필을 설레게 하고 경이로운 순간을 맛보게 했으며, 여전히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뜨게 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시네마테크. 어떻게 만들어져 지금에 이르렀을까? 길게는 20년, 짧게는 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시네마테크의 활동을 연대기별로 살펴본다. <편집자>


민간 영역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되어 서울 유일의 시네마테크 전용관으로 자리잡고 있는 서울아트시네마의 전신은 지금으로부터 근 20년 전인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비디오테크부터 출발해 영화사 100주년을 기념하며 전국시네마테크연합이 창립되었고, 2002년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사단법인 인가를 받고 발족한 이후 서울아트시네마는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공간을 대관해서 수많은 회고전과 특별전을 진행해왔다. 그렇게 서울아트시네마는 2002년 서울 유일의 시네마테크 전용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나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안정적인 공간 확보의 어려움을 매번 겪고 있다. 2004년 재임대 계약을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서울아트시네마는 존폐위기를 맞았고 2005년도에 결국 안국동 시기를 마감했다.

 

그리고 현재 위치하고 있는 낙원 허리우드극장으로 옮겨오면서 서울아트시네마는 다시 전용관을 마련했다. 하지만 재정적 어려움으로 기획된 여러 회고전을 진행하지 못했던 적도 적지 않다. 하여 2006년 1월엔 시네마테크 지원을 결의해주었던 다수의 영화감독들이 주축이 되어 처음으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라는 것을 기획하게 되었고 그게 어느덧 2010년 5주년를 맞았다. 하지만 영화인, 관객 할 것 없이 시네필들의 물질적, 정신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현 시네마테크는 여전히 공간을 찾아 헤매야 하는 실정이다. 시네마테크 부산의 경우 창립 때인 1999년부터 전용관으로서 역할을 다해왔지만, 서울은 아직도 안정적인 전용관 마련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에 2010년 국내 내로라하는 감독, 배우 등 영화인들이 주축이 되어 현재는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까지 발족했다.

 

영화의 도서관, 시네필의 성지라 불리며 쓰러지지 않고 버텨온 현재의 시네마테크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역사가 녹아들어 있는 곳이다. 숱한 위기의 순간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이곳을 보존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애를 썼고 그 중심에는 영화문화를 마음껏 향유하고 싶은, 이곳에서 위안과 배움을 얻는 관객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화애호가들에게 깊은 인상으로 아니 가족처럼 다가오는 시네마테크가 영원히 꺼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굳건히 서길 바라며, 그간 시네마테크가 걸어온 길, 그 역사적 순간들을 연대기별로 되돌아본다. 시네마테크의 진화는 계속되어야하기에.  


ㆍ1991. 5 


문화학교 서울, 서울 사당동에서 '새로운 영화읽기의 제안'이라는 모토 하에 비디오테크로 출범

√ 다양한 국가와 장르의 영화들을 소개하고 시네마테크 구축과 영화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 생산

√2000년까지 180여 회의 영화제와 '시네마테크'라는 이름의 토론 프로그램 진행 및 30여 권의 자료집 발간

 

ㆍㆍ1995

√ 영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영화 백년사를 정리한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발간

‘전국시네마테크연합’ 결성


ㆍㆍㆍ1999

3월 ‘아시아 감독 3인전- 차이밍량, 이시이 소고, 홍상수’ 개최 (문화학교 서울, 아트선재 공동주최)

 
ㆍㆍㆍㆍ2000

11월 ‘오슨 웰즈 회고전’ (서울 시네마테크 주최)

12월 ‘루이스 부뉴엘 회고전’ (문화학교 서울 주최)

 



ㆍㆍㆍㆍㆍ2001

1월 ‘오즈 야스지로 회고전’ (서울 시네마테크 주최)

7월 ‘에릭 로메르 회고전’ (문화학교 서울 주최)

8월 ‘영화사 강의’ 진행 (서울 시네마테크 주최)

 
ㆍㆍㆍㆍㆍㆍ2002

1월 25일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발족

4월 11일 사단법인 인가(문화관광부)

5월

√ 서울 유일의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 개관(소격동 아트선재센터) & 개관기념 영화제 개최 (오손 웰즈 <시민 케인>, 베르히만 <외침과 속삼임>, 트뤼포 <400번의 구타> 등 상영)

6월

√ 제2회 포르투갈 영화제 (올리베이라 <언어와 유토피아>, 마누엘라 비에가스 <찬미> 등 상영)

√ 라틴 아메리카 영화제 (오스카 블랑카르떼 <미네르바의 여행>, 살바도르 아귀레 <방황> 등 상영)

 

ㆍㆍㆍㆍㆍㆍㆍ2003

2월 문화학교 서울 ‘영화사 강좌’ 개설

6월 10일 심포지엄 ‘시네마테크는 지금’ 개최

(예술영화의 수입 및 배급과 관련한 문제, 영상자료원의 필름 보관, 시네마테크 활동의 현황 및 대안, 지역 네트워크 활성화 등의 문제 논의. <시티즌 랑글루아 Citizen Langlois>(에드가르도 코자린스키) 상영)

 

ㆍㆍㆍㆍㆍㆍㆍㆍ2004

2월 최양일 회고전 (최양일 감독 방한, 감독과의 특별대담 진행)

2004년 처음 개최된 '구로사와 기요시 회고전'에 맞춰 방한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3월

√ 구로사와 기요시 회고전 (구로사와 기요시 방한, 감독과의 특별 대담 및 강연회 진행)

√ 프랑스 아방가르드: 장 앱스탱, 장 비고, 장 콕토 회고전 개최, 무성영화 라이브 연주 상영

5월 ‘기억의 영화들’ 서울아트시네마 개관2주년 기념 영화제: ‘시네필의 향연’ 개최

(장 르누아르의 <시골에서의 하루>, 하워드 혹스와 빈센트 미넬리, 고다르와 클레르 드니의 90년대 작품 상영)

6월 “시네마테크는 지금” 심포지엄 개최

(아트선재센터로부터 2005년 2월 건물임대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게 됨)

8월 26일

√ 한국독립영화협회와 영화인회의를 포함한 12개 단체에서 서울아트시네마 폐관 위기와 관련하여 ‘서울아트시네마는 중단 없이 운영되어야 한다’는 성명서 발표

9월 새로운 영화의 첫 번째 만남, ‘CINE-Rendezvous’

(할 하틀리 <인생전서>, 오타르 이오셀리아니 <안녕 나의 집>, 브루노 뒤몽 <휴머니티>, 고레에다 히로카즈 <환상의 빛> 상영)

낙원상가 건물로 이주하 처음 열린 재개관 영화제'시네필의 향연'

12월 ‘시네마테크를 말한다-일본 커뮤니티 시네마의 사례’ 토로회 개최

(극장 이전을 포함한 한국 시네마테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논의. 일본 문화청 문화부장 데라와키 켄의 강연)

 




ㆍㆍㆍㆍㆍㆍㆍㆍㆍ2005

1월 시네클럽 ‘카페 뤼미에르’ 출발

(5회에 걸쳐 ‘일본 영화의 역사와 미학’에 대한 강연 진행 및 영화 나카히라 코우 <미친 과실>, 이마무라 쇼헤이 <일본 곤충기>, 신도 가네토 <벌거벗은 섬> 등 상영)

소격동 시절을 마감하는 마지막 회고전 '라이너 베르어 파스빈더 회고전'

3월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회고전’

(3년 간 800여 편을 상영했던 서울아트시네마의 안국동 시기 막 내림)

4월 4일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 낙원상가((구)허리우드 극장)로 이전

√ 재개관 특별영화제 ‘시네필의 향연’ 개최

(G.W. 파브스트 <판도라의 상자>, 로베르 브레송 <불로뉴 숲의 여인들>, 하워드 혹스 <리오 브라보>, 알프레드 히치콕 <싸이코> 등 상영)

5월 한국영화 정기 프로그램 ‘한국영화, 과거 속의 미래’ 시작 (연간 6회)

7월 시네마테크 문화학교 서울, 해방 60주년, 광주혁명 25주년 기념 ‘영화와 혁명 특별전’

(60-70년대 일본 언더그라운드 영화들과 68혁명기의 프랑스 영화, 광주혁명을 다룬 영화 상영 & ‘영화와 혁명’이라는 주제로 일본과 한국의 영화평론가와 액티비스트들(히라사와 고, 조영각, 김성욱, 김곡)이 참가하여 심포지엄 개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대만 뉴웨이브 영화제'에 참석한 허우 샤오시엔과 차이밍 량 감독

9월 ‘대만 뉴웨이브 영화제-허오 샤오시엔, 에드워드 양, 차이밍 량’

(방한한 허오 샤오시엔, 차이밍 량의 마스터 클래스 및 대만 뉴웨이브 심포지엄 개최)

12월 쇼치쿠 110주년 기념, ‘일본영화: 계승과 혁신’ 영화제

(시네마테크 문화학교 서울과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공동 주최, 오즈 야스지로의 초기 무성영화부터 시미즈 히로시, 기노시타 케이스케, ‘쇼치쿠 누벨바그 3인(오시마 나기사, 요시다 기주, 시노다 마사히로)’ 등 상영 및 강연)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2006

1월 ‘제1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개최

(감독, 평론가, 배우 등 영화인들이 소개하고 싶은 영화를 상영하자는 의미에서 기획된 프로그램으로 박찬욱, 김지운, 류승완, 오승욱 감독 등이 시네마테크 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와 시네마테크의 중요성을 피력함)




2월 ‘스크린쿼터 축소’와 관련한 성명서 발표

3월 ‘독립영화: 김종관의 영화작동법’ 시작

6월 흥미로운 테마의 독립영화 최신작을 선정, 상영하는 ‘금요단편극장’ 시작

7월 개관 기념 영화제 ‘시네필의 향연’을 대중적으로 확대하여 ‘제1회 시네바캉스 서울’ 개최

(감독들의 연출 특강,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네키드’, 음악과 함께하는 ‘필름콘서트’ 등도 진행)

9월

√ 영화상영회에 관심있는 지역일꾼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상영교육 실시

√ 청소년 대상의 교육프로그램 ‘영화관 속 작은 학교’ 실시

√ 예정했던 ‘미조구치 겐지 회고전’이 재정적인 문제로 취소

10월

√ 시네마테크의 문화적인 소명 및 재정적인 어려움 등을 논의하기 위한 ‘시네마테크 관객 토론회 ‘시네마테크를 영화의 집으로!’ 진행

√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 계획 추진과 관련한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와 함께하는 영화문화 활성화를 위한 정책 토론회’ 진행

11월 시네마테크 부산과 함께 추진했던 ‘마르셀 카르네 회고전’ 재정적인 문제로 취소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2007

2007년 서울아트시네마를 다시 방문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과 봉준호 감독

1월

√ 시네마테크 전용관 설립을 위한 ‘제2회 시네마테크와 친구들 영화제’ 개최

(김기영 및 빌리와일더 특별전을 포함 23편의 영화 상영. 구로사와 기요시 방한,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학교’ 진행)

√ ‘서울아트시네마의 5년의 기억’-사진전 개최

√ 서울아트시네마 후원 기금마련을 위한 미술전 개최(갤러리 아트싸이드)

4월 씨네21, 아름다운 재단,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공동주최로 ‘아름다운 영화 상영회’ 시작

6월 ‘오슨 웰즈 특별전’

(오슨 웰즈 아카이브 디렉터 질리언 그레이버 방한, 특별 강연 및 관객과의 대화 진행)

7월 ‘제2회 시네바캉스 서울’ 개최

(미이케 다카시 특별전, 한국 영화 속 서울 풍경과 역사를 회고하는 기획전 진행 및 자크 리베트의 <아웃 원> 상영)




10월 ‘애니충격감독열전 인 서울아트시네마’ 개최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2008

(위) 2008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기자회견 (아래) '창호 감독 특별전' 개막행사

1월 ‘제3회 시네마테크와 친구들 영화제-시네마테크의 새로운 영년’ 개최

(이두용 특별전 및 아벨 페라라 특별전 등 총 29편의 영화 상영)

2월 영진위에서 2008년 신규사업의 일환으로 ‘다양성영화 복합상영관 건립 발표

(80억; 2~3년에 걸친 총 사업비 250억)


7월

√ ‘제3회 시네바캉스 서울’ 개최

√ ‘필름 라이브러리’ 사업의 첫 시작으로 ‘세르지오 레오네 컬렉션’ 소개

√ ‘일본영화걸작 정기 무료 상영회’ 시작 (일본국제교류기금,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공동주최)

10월

√ 수포로 돌아간 복합상영관 건립

(연합뉴스에 「영진위 ‘다양성영화 전용관’ 내년 예산확보 실패」 라는 기사 보도. 영화진흥위원회 측은 ‘복합상영관 건립’ 사업의 본질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고, 단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좋은 편의를 제공하려는 목적에서 예산을 늘려 부가 기능들을 확충하고자 검토를 진행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해명함)

2008년에 열린 '촬영감독 유영길 특별전'의 개막 행사

 

12월

√ 다양성영화 복합상영관 건립사업 추진 불가 판정

(영진위 ‘다양성영화 복합상영관 건립사업’은 2008년 예산불용사유 등의 이유로 추진 불가하다고 발표하고 2008년에 불용된 120억 원의 예산은 다시 영화발전기금으로 환원됨)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2009




1월

√ ‘제4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개최

(시네마테크 라이브러리 및 아카이브 구축사업 전개, 시네마테크 네트워크 사업 강화, 시네마테크의 공간성 확보 방안 마련, 활동의 공공성 강화라는 2009년 서울아트시네마 사업 계획 발표)

√ ‘영화의 고전과 미래의 시네마테크’,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긴급 토론회-시네마테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의 포럼 진행

2월

2월 2일 영진위 2009년 3월부터 시네마테크 지원 사업을 공모로 전환한다고 한시협에 1차 통보

2월 11일 영진위로부터 2009년 2월로 시네마테크 사업이 종료되고 3월부터 공개 공모 절차를 통해 업무위탁사업자 선정을 추진할 예정임을 일방적으로 재통보

2월 27일 시네마테크 지원사업의 공모 전환에 대한 전문가 간담회 진행

3월

√ 시네마테크 지원사업 공모 전환 통보에 따른 ‘지원사업 공모 전환 반대 성명서’ 발표

√ 서울아트시네마 CMS 후원회원 1천 명 모집 캠페인

(‘시네마테크 필름 라이브러리 무료 상영회’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아카이브’ 영화 9편 상영)

시네마테크를 후원하기 위한 영화인들의 사진전

8월 제4회 시네바캉스 서울’ 개최

(‘B급 장르영화의 거장: 돈 시겔 특별전’을 비롯 ‘오타르 이오셀리아니 특별전’ 등 진행. 4회의 ‘영화사 강좌’와 시네토크, 하퍼스 바자의 사진전)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2010

1월 제5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진행 중

1월 15일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 발족





(정리: 우혜경_관객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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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씨네필 2010.01.26 1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저기 1999년 '아시아 감독 3인전'때부터 함께 하고 있었네요. 98년에 문화학교 서울에 다니기 시작했구요. '아시아 감독..'때 재미있는 일이 하나 있었는데요. 그때 영화제에 온건지 아트선재센터에 온건지 고현정이 왔었어요. 저는 당시 고현정의 팬이었기 때문에 고현정을 따라가서 사인을 받았거든요. 근데 그때 고현정이 정용진과 결혼해서 얼마 안되었을 때라 임신하고 있었는데 제가 "결혼 생활은 어떠세요?" 뭐 이런 질문을 했던 것 같은데 고현정이 "배도 보여드릴까요?"하고 재치있게 응수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근데 그 사인을 잃어버렸어요 ㅠ 연대기를 쭉 보고 있으니까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도 나고 뭔가 애틋하네요..
    99년부터 현재까지 거의 모든 회고전에 참여를 했지만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회고전 단 하나만 뽑자면 전 '칼 드레이어' 회고전을 뽑겠습니다. 그때 영화사를 수놓은 칼 드레이어의 주옥같은 걸작들을 보면서 더 이상 영화를 보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었죠. 드레이어의 영화로 시네마의 어떤 경지를 보았다는 생각에 포만감을 느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 이후로 칼 드레이어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감독 10인 안에 속하게 되었고 드레이어의 <오데트>는 개인적으로 영화사상 베스트 10 목록에도 올리게 되었어요. 드레이어의 유작인 <게르트루드>가 사실 더 대단한 작품이긴 하지만 신앙적인 이유로 <오데트>를 더 좋아합니다.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 <오데트>가 상영되는 것은 저에게 무척 반갑고 뜻깊은 일인 것 같아요. 그 영화를 제가 제일 좋아하는 홍상수 감독님이 추천하신 것도 기쁘구요. 개인적으로 이번 상영때 <오데트>가 꼭 매진이 되어서 이 영화의 진가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전에 상영할 때는 매진은 되지 않았거든요. 특히 믿음의 문제에 관심이 있는 크리스챤들에게 강력히 추천하는 바입니다. 결론: 시네마테크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합니다!

  2. 노는 건달 2010.01.28 0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윗 분도 쓰시기는 했는데 '아시아 감독 3인전'은 제 기억이 맞다면 1999년이 아니라 2000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책상에 그 때 관련 자료가 있는데 딴 방에 있어서... :)

    제가 선재에 영화보러 첨 간 것이 99년 가을 이었고 (독립영화, 관객을 만나다) 그 후에 00년에 아시아 감독 3인전 보러 갔었어요

    그 때 이시이 소고도 왔었던 것 같고 챠이밍량도 왔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