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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알렉산드르 도브젠코 특별전

<병기고>의 몽타주 : 인간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영화

<병기고>의 몽타주 : 인간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영화



1917년 10월 혁명으로 짜르의 전제정치와 제정러시아가 종말을 고하자 키예프에서는 우크라이나 민주세력의 대표기관인 중앙위원회가 결성되어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수립이 추진되었으며, 1918년 1월 22일에 우크라이나의 독립이 선포되었다. 그리고 신생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에는 저명한 역사가인 미하일로 흐루쉐브스키가 선출되었다. 하지만 1917년에서 1920년까지 우크라이나에서도 볼셰비키파와 여타 정파간의 내란이 진행되었고 결국 볼셰비키파가 승리했다. 그리하여 1921년에는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립되었고, 1922년 12월에 소련연방 창설조약에 서명하여 사실상 소련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다. _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국가정보 참조.

우크라이나의 내전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18년, 일군의 우크라니아 볼셰비키들이 키에프의 병기고에서 반혁명적 국수주의자들에 맞서다 패배했다. <병기고>는 이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사건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알렉산드르 도브젠코는 1919년부터 1920년까지 군인으로 복무했다). <병기고>는 여러모로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전함 포템킨>(1925)이 연상되는 작품이다. 두 영화의 제작 배경에는 실제 사건이 놓여 있으며, 크게 보아 두 개의 시공간으로 나뉘어 진행되는 점도 유사하다. 게다가 두 영화가 공히 실패로 끝난 사건을 끌고 왔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왜 실패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건에 참여한 인간이 혁명 정신의 고양에 끼친 영향, <병기고>와 <전함 포템킨>은 거기에 의미를 둔다.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도브젠코는 몽타주 기법을 십분 활용했다. 몽타주라니? 보통 도브젠코는 소련영화의 몽타주 기법과 거리를 둔 채 시적인 이미지를 창출해낸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더욱이 <병기고>는 도브젠코의 서정성을 대표하는 <즈베니고라>(1928)와 <대지>(1930) 사이에 만들어진 영화가 아닌가. 오해가 있을까봐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병기고>에서 몽타주가 돋보이는 부분은 노동자와 농민들의 저항이 격렬해지는 지점에서 시작된다(독일군의 침공을 그린 <병기고>의 전반부를 장식하는 건 도브젠코 특유의 이미지들이다). <병기고>의 도입부에서 도브젠코는 ‘혁명적인 서사시’임을 명확히 밝혔다. 이것은 혁명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즉, 아름다운 이미지로 정서적 접근을 하는 대신, <병기고>는 끓어오르는 피를 토해내기를 의도했다. 도브젠코는 그러한 영화의 성격에 몽타주 기법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후반으로 가면서 영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몽타주 스타일이 성난 병사들의 물결처럼 밀고 들어온다.

도브젠코의 몽타주는 정교하게 계산된 에이젠슈타인의 그것과 성격이 다르다. 도브젠코는 운동성과 방향성을 목적으로 몽타주를 이용하지 않는다. <병기고>는 얼핏 거칠게 이어 붙인 이미지들의 결과물처럼 보인다. 앞서 나온 이미지와 뒤따르는 이미지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막조차 별로 활용하지 않아 극의 연결을 파악하는 것도 힘들다. 예를 들면, 1차 대전과 주인공의 제대와 중앙위원회 진출을 잇는 이미지 사이에서 나는 매번 길을 잃는다.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그 사이에서 극의 흐름을 단번에 알아차린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도브젠코는 왜 이런 몽타주 스타일로 영화를 만든 것일까? 그는 그림과 만화를 그리다 영화감독이 된 사람이다. 그에게 이미지는 언제나 이야기에 앞서는 것이었다. 그는 영화를 빌려 인간의 상像을 그리기를 원한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삶과 인간에 대한 찬미다. 그의 카메라는 종종 하늘을 배경으로 인간을 포착하곤 한다. 하늘 앞에서 인간은 거대하고 존엄한 존재로 우뚝 선다. 사사로운 이야기 너머로 거대한 인간의 상을 그리는 것, 그것이 도브젠코의 영화다.



이러한 자세는 극중 전쟁과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을 규정한다. 독일의 침공을 그린 전반부는 전쟁을 비판하면서도 개별 독일 병사를 괴물로 그리지 않는다. 한 독일 병사가 적을 향한 총검을 거두자 장교가 그의 뒤로 다가가 권총을 겨눈다. 그리고 쏘아 죽인다. 마찬가지의 상황이 키에프의 병기고에서도 벌어진다. 귀족과 부르주아를 등에 업은 군인들이 노동자와 농민들로 이뤄진 볼셰비키 병사들을 한 명씩 총으로 쏘아 죽인다. <병기고>는 크게 보아 삶을 사랑하는 자와 죽음을 부르는 자에 관한 이야기다. 죽음을 초래하는 자라면 같은 우크라이나 민족이라도 독일 장교와 다를 바 없으며, 삶을 사랑한다면 게르만 병사라 하더라도 영화는 그를 버리지 않는다. 극중 ‘길에서 부르주아와 장교를 만나면 죽여도 되는가?’라는 질문이 두 번 반복된다. 영화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도브젠코의 눈에 귀족이나 부르주아, 장교는 죽음의 이름이다. 삶을 찬양하지 않는 자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음악가 피에르 불레즈의 말을 바꿔 인용하자면, 도브젠코는 영화의 목적이 영화를 표현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동료들은 물론 자신의 영화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그는 <병기고>에 접근했다. 현대영화가 두 세력 간의 충돌로 일어난 사건을 영화화하는 방식을 떠올려보라. <병기고>와 견줄 수 있는 영화는 거의 없다. 그의 영화에 아방가르드라는 이름이 붙는 건 그래서다. 그러나 도브젠코는 아방가르드의 자세로 영화를 만든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자세는 그것과 반대였다. 그에게 소중한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였으며,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이미지들이 격렬하면서 아름답게 전투를 벌이는 곳이 영화였다. 도브젠코의 영화를 보노라면 영화에서 얼굴과 몸을 기록하는 방식이 이미 그 시기에 완성되었음을 알게 된다. 굳게 다문 입과 표정은 수만 개의 대사가 다 표현하지 못할 진실을 전한다. <병기고>는 몽타주로 쓴 시다.

이용철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