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4-25일, 서울아트시네마 '후나하시 아츠시 특별초대전' 개최  
 
“탑을 볼 때 우리는 내려다보지 않는다. 항상 올려다본다. 늘 찬탄하면서 매혹되는 것이다.”
<야나카의 황혼빛>(2009)에 대한 감독의 변에 언급된 이 ‘올려다보는 시선’은 후나하시 아츠시라는 작가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 같다. 후나하시는 이러한 응시가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탑을 올려다보듯, 시네필은 영화 스크린을 올려다보고 찬탄하며 매혹된다. 영화에 대한 찬탄과 매혹은 그 자신이 ‘순수한 시네필’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후나하시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고교 시절 새뮤얼 풀러의 <마견>
(1982)을 보고 영화의 세계에 빠져들게 됐다는 후나하시가 좋아하는 감독의 목록에는 혹스와 풀러에서부터 레이, 키아로스타미, 오퓔스, 자무시, 벤더스, 오즈와 미조구치뿐만 아니라 저예산 서부극의 거장 버드 보티처와 볼리우드의 전설 구루 두트까지 망라되어 있다. 존 포드와 하워드 혹스, 프랑스 누벨바그, 빅토르 에리세의 영화를 가리지 않고 섭렵하는 한편, 히치콕 영화를 한 편 볼 때마다 집으로 달려가 하스미 시게히코가 번역한 트뤼포의 <히치콕과의 대화>를 집어삼킬 듯 읽곤 했노라는 영화광 소년은 이후 영화이론을 공부하면서 영화감독들에 대한 글을 썼고 결국 스스로 영화를 만들게 된다.

1997
년 장학금을 받고 뉴욕으로 건너가 SVA(School of Visual Arts)에서 영화 제작을 공부한 후나하시는 몇 편의 단편에 이어 2001년 첫 장편 <메아리>를 발표한다. 후나하시는 <메아리>에 대한 감독의 변에서 다음과 같이 영화적 포부를 밝히고 있다.
나는 영화적 체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우리는 한 시간 반 동안 어둠 속에 앉아 하얀 스크린에 오감을 집중하고 눈앞에 펼쳐지는 움직임과 소리 하나하나를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한 사람의 시네필로서 나는 이러한 체험에 사로잡혀, 영화사의 고전들을 파헤쳐 왔다. 내가 사랑하는 이 영화적 체험을 관객들이 경험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미국인 스태프 및 배우들과 함께 25천 달러라는 초저예산으로 찍은 <메아리>는 자신의 과거를 찾기 위해 뉴욕에서 버지니아로 떠난 젊은 여성의 여정을 유려한 16mm 흑백 화면에 담은 로드무비다. 길 위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며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메아리>의 주제와 형식은 다음 작품 <빅 리버>(2005)와 <야나카의 황혼빛>에서 좀 더 넓고 깊게 확장되고 변형된다.


오다기리 조를 주연으로 오피스기타노가 제작한 <빅 리버>는 미국 서부 사막에서 우연히 만난 국적이 다른 세 남녀의 동행을 그린 로드무비라는 점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그 유사성이 드러난다. 뉴욕을 거쳐 아이슬란드까지 가고 싶다며 미대륙을 횡단하고 있는 일본인 여행자 뎃페이, 아내를 찾기 위해 낯선 땅에 도착한 중년의 파키스탄인 알리, 할아버지와 함께 트레일러촌에 살면서 어딘가 다른 곳으로 떠나기를 꿈꾸는 미국인 새라. 낡은 차에 함께 몸을 실은 세 사람은 서로를 ‘친구’라고 부르지만, 이들의 관계는 그들이 가로지르는 황량한 사막만큼이나 건조하고 메마르다. 아내를 되찾고자 하는 알리의 노력과 뎃페이와 새라 사이의 미묘한 감정을 축으로 서서히 전개돼 가던 내러티브의 갈등은 알리를 테러리스트로 의심한 경찰의 과도한 검문 이후 폭발한다. 뿔뿔이 흩어져 어둡고 잔인한 밤을 고독 속에 보낸 뒤에야 세 사람은 마음을 열고 서로를 받아들이게 된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빅 리버’라는 제목은 미국에 대한 은유다. 작은 시냇물들이 함께 모여 ‘큰 강’이 만들어지듯, 온 세계에서 흘러든 사람들이 미국이라는 나라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리오 그란데’를 연상시키는 이 제목은 “서부극의 고전들처럼 심원하고도 단순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후나하시의 열망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사실 이 영화에서 내러티브나 인물보다 중요한 것은 ‘서부’라는 공간 그 자체다. (후나하시가 35mm 시네마스코프를 택한 것도 이 서부의 공간을 더욱 효과적으로 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영화의 중반 세피아 톤 화면으로 끼어드는 카우타운의 모습과 영화 후반부를 채운 모뉴먼트밸리의 광활한 풍광은 서부극에 대한 감독의 경의를 담고 있다. 서부극의 마을 세트 속에서 카우보이와 총잡이들이 스턴트 쇼를 벌이고 한편에서는 낡은 서부영화 필름이 깜빡거리며 영사되는 카우타운은, 지금은 실재하지 않는 이미 사라져 버린 서부의 세계다. 마치 유령과도 같은 이 공간 속에서 총잡이들의 결투와 오래된 영화를 조용히 응시하는 세 주인공은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 부유하며 기묘한 안식을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끝없는 하늘과 고요한 암반들로 둘러싸인 모뉴먼트밸리는 그 자체로 서부극의 상징이자, 주인공들이 순수한 태도로 서로를 마주하게 만들어 주는 화해의 공간이기도 하다.


후나하시가 일본에 돌아와 만든 <야나카의 황혼빛>은 도쿄의 작은 동네를 배경으로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교차되는 구성을 취하고 있어 표면적으로는 전작들과 매우 달라 보인다. 그러나 여행의 공간이 작아졌을 뿐, 무언가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서고 그 길 위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의미를 발견해 간다는 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공간이 좁아진 대신, 시간의 폭은 쇼와 시대를 거쳐 에도 시대까지 넓어졌다.
영화의 배경이 된 야나카는 도쿄의 오래된 시타마치(서민 동네)로, 혼고와 우에노 분지 사이에 끼어 있어 ‘谷中’(골짜기 가운데)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가파른 언덕과 오래된 사찰들, 고양이가 많은 동네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도쿄의 명소 중 한 곳이기도 하다. 2007년 10년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야나카에 자리 잡은 후나하시는, 곳곳에 묘지가 많은 이곳이 “마치 공중에 떠다니는 유령들로 가득한 신성한 장소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도쿄의 영화/연극 전문학교인 ENBU세미나에서 강의하던 후나하시는 수강생들의 졸업 작품 제작을 위한 공간으로 야나카를 택했다. 차안과 피안, 과거와 현재가 혼재하는 듯한 야나카 거리에서 학생들이 전통 공예 장인들과 만나는 과정을 시나리오 없이 촬영함으로써, 일종의 다큐-드라마를 만들려 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후나하시가 주목하게 된 것이 야나카 오층탑이다.

에도 시대 초기인 1644년 건립되어 18세기 후반 화재로 한 번 소실되었다가 재건된 이 오층탑은 오랫동안 야나카의 상징으로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1957년 7월 6일 새벽의 화재로 하룻밤 사이에 사라졌다. 이 화재의 모습을 기록한 8mm 필름이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된 후나하시는 다큐멘터리의 취재를 계속하면서 필름의 소재를 찾았다. 그러던 중 야나카의 한 사찰에서 필름이 발견되면서, 영화의 방향이 급격히 달라졌다. 오층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 필름을 찾으려 했던 후나하시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반영한 픽션을 야나카 주민들과의 인터뷰와 결합하는 한편, 에도 중기의 탑 재건 과정을 담은 고다 로한(1867~1947)1892년작 소설 <오층탑>의 내용을 시대극으로 극화한 것이다.
고다 로한은 <금색 야차>(이수일과 심순애가 등장하는 <장한몽>의 원작)로 유명한 오자키 고요(1867~1903)와 함께 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예술의 영원한 이상과 인간의 강한 의지를 작품에 즐겨 담았다. 고다 로한이 야나카에 살던 시절 발표한 <오층탑>은 고용주와 아내,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혼자서 탑을 만들고자 하는 젊은 목수의 집념을 낭만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후나하시는 소설을 영화로 옮기면서 현재와 과거의 부분을 특별히 구분하지 않고 지극히 자연스럽게 교차하며 연결시킨다. 이는 에도 시대의 젊은 목수 주베이의 무모한 고집이 무언가 확고한 의미를 찾기 위해 발버둥 치며 방황하는 현대의 청년 히사키의 열정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보여 준다. 이들은 명예나 돈이 아닌, 그저 올려다보며 감탄할 것을 갖고 싶은 열망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인물들의 유사성은, 배우들이 현대와 과거의 인물을 동시에 연기하는 것으로도 강조된다.)

그러나, 우리가 올려다보며 매혹될 탑은 지금은 불에 타 사라지고 없다. 영화 속에서 한 스님이 안타까워했듯, 현대인들이 올려다볼 것이라곤 고층 아파트뿐이다. 어쩌면 현대인은 올려다보는 시선마저도 잃었는지 모른다. 후나하시는 <야나카의 황혼빛>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이것의 본질에 대해 살피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러니 영화의 절반이 오층탑의 초석이 남아 있는 야나카 묘원을 비롯한 야나카 거리 곳곳의 모습과 그곳에서 고집스럽게 자기 할 일을 계속 이어가는 야나카 토박이들의 모습으로 채워져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특히 80세의 노령에다 시력을 잃었음에도 매일 500개가 넘는 묘석들을 쓸고 닦으며 하루를 보내는 조자이지(常在寺) 관리인 오가와 미요코와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매일 야나카 묘원을 오가며 오층탑 재건 운동을 벌이고 있는 향토 사학자 가토 가쓰히로는 젊은 두 주인공을 훨씬 뛰어넘는 영화의 중심인물이라 하겠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오층탑 화재를 둘러싼 진상을 추적해 가는 과정이다. 여주인공 가오리는 야나카 지역의 8mm 홈무비 필름들을 찾아다니던 중 오층탑이 노숙자의 방화에 의해 불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오층탑의 소실 원인이 노숙자의 방화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화재 모습을 담은 필름이 발견될 때까지 계속되는데, 가토 가쓰히로가 히사키에게 필름을 건네주는 순간에야 실제로 불을 붙인 사람은 동반자살을 기도한 남녀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실제 야나카 오층탑 방화 동반자살 사건은 쇼와사에서 꽤 유명한 사건으로, 도쿄의 양복점에서 일하던 재봉사와 조수인 여성이 불륜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분신자살을 기도한 것이라 한다. 야나카 주민들은 이들이 화장용 장작으로 너무도 비싼 값을 치렀다고 입을 모아 통탄했다고 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잃고 있는 것들 역시 너무도 비싼 값을 치러야만 되찾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by 김은아(자유기고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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