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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전/프랑수아 트뤼포 전작 회고전

[리뷰] 프랑수아 트뤼포의 '이웃집 여인'

사적 기록을 넘어서

 

원하기만 했다면 트뤼포는 <이웃집 여인>을 극도로 사적인 영화로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함께 살 수도 떨어져 살 수도 없는” 한 쌍의 남녀에 관한 이 비극적 이야기는 트뤼포의 과거의 사랑들을 토대로 했다. 특히 카트린 드뇌브와의 관계에서 얻은 아이디어가 많이 포함됐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웃집 여인>는 개인의 역사를 넘어서 영화적 감동을 선사한다. “이웃집 여자와 얽히지 말라” 에릭 로메르의 격언 시리즈의 한편이라고 해도 어울릴만한 이 영화는 이야기만 놓고 보면 전혀 복잡할 것이 없는 통속극이다. 8년 전 고통스럽게 헤어진 두 남녀 마틸드와 베르나르가 결혼 후 이웃사이로 만나 지리멸렬한 사랑을 되풀이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에 정서를 부여하고 그 정서를 통제하는 방식에 있어 트뤼포는 뛰어난 균형미와 연출력을 증명한다.

우선 극중 베로니크 실베르가 연기한 주브 부인을 내레이터로 내세운 선택이 탁월하다. 맨 처음과 맨 마지막에 덧붙여진 인터뷰에서 그녀는 마틸드와 베르나르의 상열지사를 어느 지방지에 난 기사마냥 전달하고, 그녀를 따라 관객은 6개월 전 사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어지는 영화는 하나의 거대한 플래시백처럼 흘러가는데 그 구조와 효과가 <선셋 대로>의 그것과도 비슷하다. 그녀의 중립적인 목소리는 이 영화가 파토스 속으로 침몰하는 것을 막아준다. 드라마는 충분히 격정적이나 그 여파에 스러지는 일은 없다. 그 중용을 통한 성취에 대해 세르주 다네는 다음과 말한 바 있다. “<이웃집 여인>이 그처럼 성공적이고 따라서 감동적인 영화인 것은, 정열과 사상을 드러내는 것을 싫어하고 중용과 절충을 중시하는 인물인 트뤼포가, 이번에는 그 절충 자체를 영화로 찍고, 그것을 자신의 영화의 소재이자 표현 형식으로까지 만들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두 연인의 오랜 애증의 역사를 암시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트뤼포는 은근하다. 과거를 환기시키는 것은 마틸다의 팔목에 난 흉터나 오래된 흑백사진들과 같은 직접적인 단서들이 아니다. 얽히고설킨 시간의 작용은 두 연인과 무관해 보이는 한 장면에 탁월하게 포착돼있다. 주브 부인에게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우체부가 그녀를 찾아 헤매는 장면이다. 서사적으로 전혀 쓸모없는 기이한 장면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이리 옮겼다 저리 옮겼다 하는 우체부의 모습은 수많은 어긋남으로 삐뚤빼뚤해진 사랑의 행로를 연상케 한다. 그 우체부의 운동을 주시하는 베르나르는 알 수 없는 불길함에 휩싸인다. 주브 부인이 받아든 편지 또한 어긋난 시간의 침전물이다. 이와 같은 섬세하고도 간접적인 연출법을 통해 트뤼포는 자신의 역사를 초월하는 영화적 순간에 도달한다.

트뤼포는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그것을 상연하는 데 열의가 높았던 감독이다. 평생 자신의 삶이 투영된 영화를 만들기도 했거니와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그가 마지막으로 몰두했던 작업도 자서전을 쓰는 일이었다. 그만큼 그에게는 사적 기록과 공적 기록을 어떻게 합치시켜나갈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이웃집 여인>은 그 노력이 원숙한 경지에 이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경 / 씨네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