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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리뷰] 유령에 매혹당한 자들 - 김태용 감독의 선택작 <유령과 뮤어 부인>

“아직도 어리거나 혹은 너무 나이 들어버린 어른들이 즐거워할 귀엽고 사랑스러운 고전영화입니다. 많이 보러 오세요.”


- <유령과 뮤어 부인> 김태용 감독 추천사 



[리뷰] <유령과 뮤어 부인>



유령에 매혹당한 자들

조셉 L. 멘키비츠의 <유령과 뮤어 부인>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불안정한’ 작품 가운데 하나다. 이것은 시네필들에 의해 자주 언급되는 고전도 아니고, 멘키비츠의 대표작을 꼽는 자리에서 누락되기 일쑤이고, 개봉 당시에 성공을 거두지도 못했으며, 감독 스스로도 그리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영화다(이 영화는 개봉 당시 유럽에서 더 따뜻한 반응을 얻었고, 음악을 담당했던 버나드 허만 - <시민 케인>과 <사이코>의 음악을 담당하기도 한 - 은 <유령과 뮤어 부인>의 음악이야말로 자신의 작업 가운데 가장 만족스러운 것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독일 영화비평가 고(故) 프리다 그라페(Frieda Grafe)가 영국영화연구소(British Film Institute)의 필름 클래식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쓴 소책자 『유령과 뮤어 부인』(1995)이 아니었다면, 멘키비츠의 이 네 번째 장편영화는 <이브의 모든 것>(1950) 같은 공인된 고전, <아가씨와 건달들>(1963)처럼 대중적 기억 속에 확고히 자리한 작품, 그리고 <클레오파트라>(1963) 같은 대작 사이의 그늘 어딘가에 여전히 머물고 있었을지 모른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19세기와 20세기의 전환기다. 남편과 사별한 지 1년이 지난 어느 날, 뮤어 부인은 함께 살던 시어머니와 시누이에게 이제부터 독립적으로 살아가겠노라고 통보한다. 이후 그녀는 해변가의 낡은 저택 한 채를 빌려 딸과 하녀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 저택에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뜬 - 하지만 자살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 - 원래의 집주인 그렉 선장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이처럼 명백히 공포 혹은 판타지 장르의 익숙한 설정을 빌려오고 있지만, 정작 영화는 뮤어 부인과 그렉 선장 간의 로맨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유령이라고 하는 특별한 (비)존재는 누군가 - 뮤어 부인과 우리(관객) - 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가시적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비가시적인 의혹의 대상일 뿐이다. 목소리가 반드시 존재를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영화적으로 활용한 몇몇 초기 유성영화 - 예컨대, 알프레드 히치콕의 <살인!>(1930)이나 프리츠 랑의 <마부제 박사의 유언>(1933) - 의 시청각적 트릭이 <유령과 뮤어 부>에서만큼 대담하게 암시적으로 활용된 사례는 거의 없을 것이다.  영화에서 그렉 선장은 뮤어 부인이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하게 되자 자신의 과거 모험담을 그녀에게 구술하고 이를 출판해 생계비를 얻도록 독려하는데, 이는 통상 남성 작가의 영감의 원천으로서의 여성적 뮤즈(muse)라는 설정을 코믹하게 뒤집은 것이다. 프리다 그라페가 지적한 대로, <유령과 뮤어 부인>은 그렉 선장의 유령이 어떻게든 사회로 진입하기를 열망하는 빅토리아조(朝) 여성의 남성적 몽상일 수도 있다는 해석을 배척하지 않는다(뮤어 부인이 들고 온 원고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출판사 편집장은 그녀(혹은 그렉 선장의 유령)의 거친 말투와 글의 남성적 톤에 매료되어 출판을 결심한다).


한편으로 이 영화는 유령적 (비)존재에 매혹된 자들의 얼굴에 대한 연구이기도 하다. 뮤어 부인 역을 맡은 진 티어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조차 어딘가 다른 곳을, 피안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다. 세계는 투명하고 비실체적이며 오히려 그 투명성 너머에 보다 실체적인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이로써 그녀의 얼굴은 거의 완벽한 방식으로 시네필적 얼굴의 이상(理想)이자 모델로 화한다. 낮에도 간직할 수 있는 밤의 몽상, 이성을 압도하는 열정의 대상, 우리의 욕망의 투사인 만큼이나 우리를 지켜보기도 하는 - <유령과 뮤어 부인>은 거의 전적으로 뮤어 부인의 눈에 비친 세계와 그렉 선장의 눈에 비친 세계라는 두 개의 시점 사이에서만 진동하는 영화다 - (비)존재로서의 영화에 몰입된 자들의 저 기체적 얼굴.


유운성 / 영화평론가


<유령과 뮤어 부인> 2/16(일) 13:30 상영 & 시네토크 with 김태용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