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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주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리뷰] <델마와 루이스> - 90년대가 되어서야 도래한 혁명


류승완 감독, 강혜정 제작자의 선택 - 델마와 루이스 Thelma & Louise


1991│130min│미국, 프랑스│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리들리 스콧 Ridley Scott

출연│수잔 서랜든, 지나 데이비스, 하비 케이틀

상영일정ㅣ 2/1 14:00(시네토크_류승완, 강혜정), 2/11 16:00


“명불허전! 20년을 거슬러 올라가 다시 만난 <델마와 루이스>. 우리는 아직도 여전하다…” (강혜정 PD)


90년대가 되어서야 도래한 혁명



1991년 미국에서 <델마와 루이스>가 공개됐을 때(한국에서는 1993년) ‘페미니즘’은 이 영화를 설명하기 위한 중요한 키워드로 열렬히 소비되었다. 유구한 버디 무비의 전통에서 거의 최초로 여성 버디가 등장하는 상업영화로 상찬됐으며 수잔 서랜든과 지나 데이비스는 전투적 페미니스트의 아이콘으로 추앙받았다. 혹자는 영화의 전면에 레즈비어니즘을 드러낸 상업영화로 남다른 가치를 인정했고 더 많은 이들이 이 레즈비어니즘을 필사적으로 ‘두 여성의 남다른 우정’으로 탈색시키려 하기도 했다. 지금도 이 영화는 “여성들이 꼽는 ‘내 인생을 바꾼 영화’” 리스트의 상위를 차지한다. 한편 개봉 당시 영화 속 하비 케이틀이 맡았던 캐릭터 ‘할’은 여성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남성 감독 리들리 스콧의 자기 변명적 캐릭터로 비판받기도 했다. 세상이 많이 변한 지금, 할은 오히려 전투적 페미니즘이 처했던 위기와 딜레마를 예언적으로 보여주는 인물로 보인다.


애초 잠시 일상에서의 일탈을 시도했던 루이스와 델마의 여행은, 델마가 강간을 당할 위기에 처하고 루이스가 그를 쏘아 죽임으로써 끝없는 도망의 여정이 된다. 상황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꼬여가고 둘은 의도치 않게 무시무시한 ‘무장 강도’가 되어 간다. 애초의 사건에서 이들이 곧장 경찰에게 가서 정당방위였음을 항변하지 않았던 것은 루이스의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이것은 영화의 말미에 밝혀지는 바 경험적 판단에 의거해서다. 70년대 미국 페미니즘 운동의 물결 이후 여성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고 페미니즘은 흑인 민권운동 및 동성애자 인권운동과 함께 가장 빠르게, 그리고 가장 격렬하게 세상을 바꾼 운동이기도 했다. 여기에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세상은 할처럼, 그리고 리들리 스콧 감독처럼 여성들의 권리를 지지하고 그녀들의 경험에 귀를 기울이려는 남자들이 늘어나며 변했다. 이 변화는 놀랍도록 폭발적이고 빠르기도 했지만 동시에 ‘충분히 빠르지는’ 못했다. 할은 최종 결정 권한이 없는 하급 형사에 불과할 뿐이며, 자기 해방을 시도했던 여성들은 여전히 어릴 적 경험에 의거한 판단 근거의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델마와 루이스>는 남성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로드-액션-갱-버디 무비를 온전히 여성 주인공들의 것으로 선취해 보여주었으며 불특정 다수의 여성 관객들을 탁 트인 하늘과 먼지바람이 이는 황량한 사막길로 안내했다. ‘남자들에 비하면 시시하고 시시콜콜한’ 것으로 폄하되곤 했던 여성들의 우정은 삶과 죽음까지도 동행하는 숭고한 것으로 격상되었다. 무례하고 멍청하며 폭력적인 극 중 남성들에 대한 복수는 통쾌한 대리 만족을 안겨 주었다. 대규모 물량이 투입된 롱숏의 현란한 화면 속 주인공의 자리를 온전히 두 여성이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체로 시각적 혁명이었고, 이 혁명은 90년대가 되어서야 도래했다.


20년이 훨씬 지난 후 다시 봐도 이 영화는 여전히 황홀하고 멋진 액션 영화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두 캐릭터가 변화하는 모습, 특히 델마가 극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은 이 영화의 입체성과 재미를 떠받치는 큰 기둥이다. 두 캐릭터 간 시너지는 여전히 박력 있고 매력적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의 위상은 이제 90년대와 많이 달라졌지만, <델마와 루이스>처럼 스크린 전체를, 그리고 전 세계 박스오피스 전체를 여성 주인공들이 호령하는 일은 앞으로 다시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아이러니의 영화다.


김숙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코디네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