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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브라질 중산층의 불안 - 클레베르 멘동사 필류의 <네이버링 사운즈>

브라질 중산층의 불안

-클레베르 멘동사 필류의 <네이버링 사운즈>




오랫동안 영화비평가,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던 클레버 멘돈사 필로는 2012년에 <네이버링 사운즈>를 발표하며 장편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네이버링 사운즈>가 로테르담영화제 등에서 수상하면서 멘돈사 필로는 현재 가장 주목해야 할 감독으로 부상했다. 브라질 북부의 대도시 헤시피에서 자란 그는, (아마도 그가 관계하는 것으로 보이는) ‘시네마스코피오’ 영화사를 통해 제작한 일련의 단편에 헤시피의 모습을 담아왔다. 마찬가지로 헤시피의 중산층 거리를 배경으로 한 <네이버링 사운즈>는 그의 초기 단편이 주제로 삼았던 ‘공포’의 연장선상에 놓인 작품이며, 2005년의 단편 <일레트로도메스티카>는 <네이버링 사운즈>의 초기 형태를 제공하기도 했다. 상류층 진입을 꿈꾸는 주부 비아, 삼촌의 부동산을 중개하는 주앙, 지역의 토지 대부분을 소유한 대지주이자 주앙의 삼촌인 프란치스코, 그리고 사설 경비원 클로도알두를 중심으로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이지만, 와이드스크린 비율로 찍힌 영화는 시선의 대부분을 거리 안으로 묶어둔다.



좁게 말해 <네이버링 사운즈>는 중산층의 좁쌀 같은 욕망과, 그 욕망을 침범하는 불안에 관한 영화다. 영화는 그들이 느끼는 불안을 소리로 표현하는데, 각 인물들은 폐쇄된 집 안에 기거할 때도 소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집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소리, 주변 개발로 인한 건설 소음, 엘리베이터와 문 등의 구조물에서 기인하는 소리, 혹은 바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소리는 끊임없이 인물의 감각기관과 무의식 주변을 맴돈다. 현장에서 채집된 소리라기보다 녹음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음향들은 영화 안으로 뛰어들고, 인물들은 바깥에서 침입해 자신을 공격하는 무엇처럼 소리를 느낀다. 무언가 명확하지 않는데 무언가 꺼림칙한 것, 그것이 초래하는 불안. 그래서 주민들은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동원해 주변을 막는다. 문과 창살, 잠금장치, 24시간 보안 카메라, 경비원으로 모자라 그들은 새롭게 등장한 남자 클로도알두와 그의 동료를 거리의 사설 경비원으로 고용한다. 그것으로 마음의 평화가 찾아올까. 극 중 그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사건이라고 해봐야 아주 사소한 것이며, 은밀한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한밤의 아이도 기실 힘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진다. 즉, 그들은 보호받는 게 아니라 마음의 감옥 속에 사는 것이다.



3부 - ‘경비견, 야간 경비, 보디가드’로 이루어진 <네이버링 사운즈>는 신경과민에 빠진 현대의 중산층에 관한 영화처럼 보이지만 영화의 야망은 훨씬 넓다. 헤시피의 현재 모습을 전시하던 영화는 어느 순간 과거의 흔적들을 슬쩍 삽입한다. 시골의 농장, 버려진 공장 설비, 폐허로 변한 극장, 그리고 고층 아파트로 개발될 예정인 주택들. 주앙은 여자 친구 소피아가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으로 데려가는데, 곧 철거될 집을 찾은 그녀는 어릴 때 꾸민 것들을 만지면서 과거에 작별을 고한다. 과거의 공간과 이별을 고하는 것은 그렇게 가능하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만약 야만스러운 기억이라면? 주앙의 꿈에서 짧은 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피의 샤워’는 폭력의 역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존재임을 드러낸다. 진짜 위협, 그러니까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두려움은 청산되지 않은 과거의 역사에서 비롯된다. 인종, 사회, 정치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단절과 묵인만 지속될 때, 과거라는 괴물이 복수를 위해 방문한다. 멘돈사 필로는 흑백 사진들을 오프닝 크레디트에 배치했는데, 영화의 엔드 크레디트가 모두 올라간 뒤에야 그 사진들은 의미를 득한다. 세기 전에 찍은, 페르남부쿠(헤시피의 옛 지명)에 자리했던 농장에서 일하던 하층민들의 삶을 기록한 흑백 사진들. 적어도 하나는 분명하다. 그들은 결코 대도시의 고급 아파트에서 살지 못했다는 사실 말이다.




이용철 / 영화평론가